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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1박 2일 답사를 마치고 제주공항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를 기다릴 때는 달랐다. 내가 타고 갈 육중한 비행기가 달릴 활주로, 4.3 당시 정뜨르비행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에는 희생자들의 유골이 뒤섞여 아직도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에 놀러 오가는 동안 수 십 번의 비행기를 탔지만 그 곳에 이렇게 아픈 사연이 깔려 하루 수백 번 시조새보다 더 무거운 비행기에 끊임없이 할퀴어지고 있다는 것(김수열님의 시에서)을 부끄럽게도 처음 알았다.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4.3을 아는가. 아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저 껍데기였다.

소설가 김석범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기억의 자살'을 강요당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며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70여년 세월동안 피울음을 삼켜 온 제주도민들을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행기는 계속해서 날아오르는데, '4.3 70주년 제주방문의 해'라는 덤덤하고 별 인상 없는 단어 위에 '제주 4.3 기억투쟁'을 새겨 본다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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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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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7일 역시나 따스한 제주에서 찾은 4.3평화공원은 너무나 추웠다. 위령제단에 참배를 하고 1만 4천여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패봉안소에 들어가 보니 말문이 막힌다. 총희생자 수는 당시 사건 전 인구 수에서 사건 후 인구 수를 뺀 2만 5천 명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한 행불자 표석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제주 곳곳에 아직도 묻혀 있거나 바닷물에 던져져 영원히 찾지 못하는 원혼들이다. 위령탑을 둘러싼 각 명비의 희생자 명단에는 같은 날 사망한 사람의 수가 수십, 수백 이어지고 9세, 7세, 3세 심지어 1세 아가들도 보인다. 아직도 제대로 된 이름을 새기지 못한 백비를 마주하는 마음은 부끄럽고 무겁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제주는 해방 후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뜨거웠고, 그 열망이 분단과 그로 인한 전쟁이 뻔히 보이던 남한만의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너도 나도 산에 오르게 했다. 그들 모두 독립된 나라, 통일된 나라를 위해 당당히 임했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런 주장이 빨갱이로 덧칠되어졌다.
 
 1947년 민주주의민족전선이 내세운 건국 5원칙. 당시 우리 손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열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947년 민주주의민족전선이 내세운 건국 5원칙. 당시 우리 손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열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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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 5칙 

1.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2. 지주와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3.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4.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5.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기념관은 그 전 과정을 아주 입체적으로 재현해 놓고 있다. 1948년 11월부터 있었던 초토화 작전은 해안으로부터 5킬로미터를 제외한 모든 곳의 주민을 폭도로 규정해 무차별 학살했던 것을 불타오르는 화면으로 나타냈다. 전 희생자의 80%가 이 때 생겼다. 강요배 화백의 그림 <제주도민의 5.10>은 들여다 볼수록 너무나 따스하고 평화롭다. 그에 비해 토벌대를 피해 숨어들었다 11명 모두 몰살당했던 다랑쉬동굴은 처참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라다.
 
 선흘 동백동산 안에 있는 도틀굴
 선흘 동백동산 안에 있는 도틀굴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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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리 동백동산의 도틀굴에 가보았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냥 바닥이 조금 파인 것 같은데,  과연 이런 곳에서 노인과 아이를 데리고 몇 날이고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당시 동굴은 숨겨주고 살려주는 고마운 장소였다. 예쁘고 빨간 동백꽃이 많이 피는 이런 동산에서 피의 학살이 있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고 믿기지도 않는다. 제주 동백꽃은 제주 4.3의 상징이 되었다. 死. 삶을 동시에 나타내는 동굴과 동백꽃.  
 
 북촌 너븐숭이에 있는 순이삼촌 문학비
 북촌 너븐숭이에 있는 순이삼촌 문학비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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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문학으로 고발한 현기영의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자 당시 제주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북촌리의 너븐숭이 4.3 기념관으로 향했다. <순이 삼촌>은 1949년 1월 17일(음력 섣달 열 여드레날은 마을 전체가 제사를 지낸다) 무장대에 의해 군인 2명이 사망하자 토벌대가 북촌초등학교에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300여명을 집단 학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 옆 옴팡밭이 주인이던 순이 삼촌(제주도에서는 먼 친척 아저씨, 아주머니 모두를 삼촌이라 부른다)은 시체더미에 깔려 살아 나왔지만 자식 둘을 그 밭에서 잃은 후 한 많고 신산스러운 삶을 살다 그 밭에서 목숨을 거둔다. 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애기무덤은 이 사건이 얼마나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아기들이 빨갱이란 말인가. 애기무덤 뒤로 <순이 삼촌> 문학비가 있다. 작가는 4.3을 알리는 것이 평생의 소명이었다고 한다. 나도 그의 작품들을 통해 4.3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고, 씨멸족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 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 거지"

현기영 <제주작가> 22호 73쪽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서우봉 해안의 일제 진지동굴 주변은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어갔다. 처음 보는 일제동굴은 충격적이다. 일부러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일본군은 엄청난 수의 제주도민을 동원, 강제노동을 시키며 해안절벽을 뚫어 동굴을 17기나 만들었다. 카미카제처럼 어뢰를 이용한 자살공격을 계획하기도 했다니 전쟁의 비정하고 참혹한 모습에 분노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럼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제주의 밤은 아리다. 

(②편 : 남동생을 잃고 살아남았지만... "폭도라 창피했다")

*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와 기억하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jejudarktour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혜주님은 서울KYC 소속으로 제주다크투어와 함께 한 '제주 4.3 평화기행'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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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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