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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아버지가 학살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는 도장골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사진제공: 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 위령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신경득 2011년 아버지가 학살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는 도장골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사진제공: 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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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충청도 북부)과 금강(충청도 중남부)의 물소리를 들으며 충청도 시인들은 어떤 이야기를 시로 익혀 놓았을까?'

신경득 전 경상대 국문학과 교수(197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 평론 당선,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 저자)가 충청도 시인들의 쓴 시어를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월간문학> 11월호에 쓴 "충청도 시인들의 서사 담론"을 통해서다.

시인들과 어울리며 나눴던 경험을 섞어 버무려 낸 평론은 구수한 된장국 냄새를 풍기며 오감을 자극한다. 신 전 교수는 먼저 박재륜 시인(충주 출생, 1910년-2001) 시를 소개한다.

"충청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 산다"
 
.....(생략)
여자란 하나의 기이한 섬
섬마다 아름다운 항구를 가졌다. (박재륜의 '섬' 중에서)

그는 박 시인의 시에 대해 "여운을 함축하며 이미지가 선명하게 부각된다"며 "서술 방법도 감각, 감성까지 말끔히 제거하였으나 오히려 감각적이고 감성적이다"고 평했다.

대전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는 박용래(논산 강경 출생, 1925-1980)에 대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만날 당시 '턱에 주먹을 괴고 문지방에 앉아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시인의 온몸이 바로 시라고 생각했다. 저 모습을 그대로 담아 동상을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추억했다.

그는 박용래 시인의 '월훈'의 전문을 소개하며 "시는 천지인 사상을 미학으로 삼고 시의 원형은 정읍사의 '하 노피곰 도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라고 밝혔다.

신 전 교수가 박원희 시인과 함께 단양군 가곡면 소재 한일시멘트 석산에 갔던 때에 대한 묘사는 날카롭고 섬세하다.
 
"천 미터나 되는 산들이 능선은 사라지고 평지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푸르던 숲은 간 곳 없고 그 끝은 폐석이 쌓여 폐허가 되어 있었다. 쇠가죽을 벗기듯 암반이 드러나도록 산을 벗겨 내는 일을 현장 노동자들은 토피 작업이라고 한다. 토피 작업이 끝나면 발파 작업을 위해 드릴로 암반을 뚫고 화약을 장전하고 뇌관을 설치한다. 뇌관 설치가 끝나면 사람들이 피하고 발파를 한다. 발파가 시작되면 크고 작은 돌덩이와 뽀얀 먼지가 절규와 함성을 내지르며 수십 수백 미터 창공으로 산화되어 불꽃이 되어야 한다."
 
이어 신 전 교수가 소개한 박원희의 '석산에서'를 접하면 시인의 깊이 있는 성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어떻게 죽을까 생각하다가
저 산처럼 죽자 했다.

구멍 뚫어 화약 한 움큼 집어넣고 펑펑 튄 후
저 산처럼 없어지기로 했다.

아무 데로나 돈 주는 곳이면 팔려 나가기로 했다.

어떻게 살까 생각하다가
저 산처럼 살자 했다.  (박원희,' 석산에서' 일부 발췌)
 
신 전 교수는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것"이라며 "시는 존명의 비극성을 머금고 있다"고 썼다.
 
백성들이 아프고 가련한데
어찌하여
기백(岐伯) 선생이여
좌측이 아프면 우측을 돌아보아야 하는가 
(박원희, '황제내경을 보다가 -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있던 날' 중에서)
 
신 교수는 "기백이 통합진보당 좌병을 치료하였다면 당연히 새누리당이나 청와대에 시침을 하였을 것"이라며 "하지만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실한 통합진보당을 완전히 잘라내 허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병통이 그대로 남게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거듭 "해와 달과 지구가 서로 밀고 끌면서 상극 상생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좌측 팔을 잘라내 버렸다. 그래서 (시인은) 눈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눈보라가 가득한 세상이라고 탄식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시인은 리얼리즘의 장점과 모더니즘의 전위 정신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며 "빛나는 우리 시사의 금자탑에 분명히 꽃술을 더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고 문병란 시인도 이 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결코 현실을 말하지 않지만 어느 것보다 현실적인 

그가 뽑은 또 다른 충청도 시인들은 김규성, 이종수, 송선미, 신준수다. 그는 "이들은 아포리즘(체험적 진리, 신조, 원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시의 미학으로 삼고 있다"며 "이들은 결코 현실을 말하지 않지만 오히려 현실적이고 파급적인 거대 담론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늙어서 제 곳간 채우기보다
붉게 속 익혀서
은근히 사랑과 깊은 단맛
줄 수 있겠느냐?   (김규성의 '늙은 호박' 중에서)
 
그는 "호박이 시적자아가 되어 아포리즘을 일깨워주고 있다"며 "가을날 흔히 볼 수 있는 늙은 호박을 시로 형상화한 사고 능력과 평이하고도 자유로운 표현 형식은 깊고도 숙성한 맛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종수의 시에 대해서는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우화시"라며 "('만만한 거 하나도 없다'를 보면) 눈곱만한 벌레가 오히려 인간보다 유적 본질을 총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준수의 '물방울 다이아'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물성애는 성적 욕구였지만 마르크스의 물신성은 화폐의 교환가치와 소유욕을 의미한다"며 "물방울 다이아를 통해 보석의 물신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네가 만약에 집을 그린다면
그리는 만큼 소곤대는 집일 거야
지우개는 필요 없어
아주 조그맣게 속삭이는 집이니까  (송선미, '소곤소곤 집 그리기' 중에서)
 
송선미 시인이 연필로 그린 집은 평당 수억 원을 오가는 그런 집이 아니라 "조상의 영혼이 내려와 텃밭을 가꾸고 신뢰가 넘치는 부부는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으로 자녀를 기르는"곳이다. 시인의 집에서는 "내년 봄 금강산 관광 갈 계획을 소곤소곤 상의하고" 있다.

신 전 교수는 말한다.

"남한강에는, 금강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쓰며 사는 시인이 살고 있다."

신 전 교수의 '충청도 시인들의 서사 담론' 전문과 소개한 충청도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 전문은 <월간문학> 11월호에 실려 있다. (관련 기사: 시력 잃은 퇴직 교수가 한국전 '민간인 학살' 파헤치는 까닭)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

신경득 지음, 살림터(2002)


태그:#신경득, #충청도, #시인, #월간문학,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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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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