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성기업 노조파괴 중단하라' 조끼를 입은 유성기업 노동자
 "유성기업 노조파괴 중단하라" 조끼를 입은 유성기업 노동자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한 노동자가 섰다. 그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중단하라'는 열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이날 경찰청 앞에 선 이는 이정훈이라는 이름의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 그는 경찰청 앞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잘못한 점 있으면 죗값을 모두 받겠다"며 "(경찰은) 차별하지 말고 제대로 수사에 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왜 그랬을까?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 이정훈씨는 2011년 처음 해고됐다. 당시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요구하며 동료들과 함께 파업에 돌입했지만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들을 고용해 일방적인 폭행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들이 던진 소화기와 돌에 맞은 동료들은 두개골이 함몰되고, 광대뼈가 조각났다. 

이씨는 2012년 함께 해고된 27명의 동료들과 1심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2013년 복직한 그를 다시 해고했다. 7년이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이씨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22일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노조원들이 유성기업 김아무개 상무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성기업 영등지회장 이정훈씨
 유성기업 영등지회장 이정훈씨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이후의 과정은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세간에 널리 퍼져나갔다. 지난 8년 동안 유성기업 사태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보수언론이 '노조원의 회사간부 폭행사건'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발맞춰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한 정치권도 유성기업 노조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한국노총 출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이 무법천지로 변했는데 과연 공권력이 작동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며 "집단폭행에 국민이 분노하고 실체적인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데 장관이나 경찰청장은 한마디의 언급이 없다"고 문재인 정권을 함께 꼬집어 비판했다.

당장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성기업 폭행사태에 대해) 전반적으로 현장 대응에서 미흡했던 점이나 기존 지침, 시스템 등에서 개선할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 합동 감사단을 편성했다"며 "지금 감사 중이기에 감사 결과를 보고 시스템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찰청은 감사단을 꾸려 '사건 당일 112신고 처리' 및 '현장에서의 초동대응 적절성 여부' 등을 따지며 유성기업 폭행사태 합동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년, 경찰들은 왜 나서지 않았나"
 
경찰청 앞에 선 유성기업 노동자들
 경찰청 앞에 선 유성기업 노동자들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경찰청 앞에 선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 이씨는 "지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사측에서는 온갖 폭력이 자행했다"면서 "노조파괴와 관련해 실형까지 산 유시영 회장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오늘 이 자리는 유성사건과 관련한 유시영 회장의 배임행위와 증거인멸에 대해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라면서 "노조에서 유시영 회장을 고소고발한지 한달 반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이어 "고소인 조사도 3주전에 했다. 그런데 경찰은 왜 아직 수사를 안하냐"고 꾸짖은 뒤 "11월 22일에 우발적 폭력에 대해 경찰들은 바로 수사를 진행해 우리 조합원들 오늘(4일) 오후 2시에 출석한다"고 일갈했다.

돌아보면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 이씨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8년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2011년 유성기업 노조 파업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월례방송에 나와 "연봉 7000만 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면서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유성기업 노조의 파업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물론 이 전 대통령이 말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연봉 7000만 원은 이후에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정권의 지지를 받은 사측의 태도는 매우 당당했다. 

정권의 비호를 받은 유성기업 사측은 창조컨설팅에 의뢰해 전문적인 노조파괴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유성기업 사측은 2001년 5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창조컨설팅에 컨설팅 명목으로 6억 6천만 원을 지급했다. 이후 유성기업 노동자 3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2016년 3월 사망한 한광호씨는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또 다른 징계를 앞두고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월 근로복지공단은 한씨의 죽음을 산업재해 사망으로 인정했다.

창조컨설팅 조언을 받아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노조파괴' 혐의로 지난 2017년 2월 법정구속, 징역 1년 2개월을 받았다.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도 지난 8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그러나 심 전 대표는 지난달 27일 '건강상의 이유'로 한 달간 구속집행정지 명령을 받아 일시 석방됐다. 그는 지금은 병원에 있다.

보도자료 보내온 유성기업 사측
 
2011년 용역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유성기업 노동자들
 2011년 용역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유성기업 노동자들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유성기업 폭행사건 이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일방적인 보도가 이어졌지만 최근엔 몇몇 언론에서 '지난 8년 동안 유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각계에서도 호응하고 있는데, 지난 3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 모인 44개 시민사회단체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 때문일까. 유성기업 사측은 <오마이뉴스>에 지난 3일 오후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8년간의 노조파괴라는 주장에 대한 회사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전달된 보도자료에는 "노사가 극력하게 대립했던 2011년 민형사 사건의 재판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나 수많은 고소고발에도 2012년 이후 발생한 사건으로 회사가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면서 "8년 동안 사측의 폭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

사측은 이어 "(22일 폭행사건이) 우발적 폭력이라는 (노조의 주장은) 거짓이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 및 계획된 집단 테러였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노동조합 탄압으로 고통 받다 정신질환을 얻은 유성기업 노동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근로복지공단이 유성기업 조합원 박아무개씨의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유성기업 사측의 상고를 대법원이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한 것인데, 대법원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확정판결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그:#유성기업, #유성, #폭행사건, #경찰청, #김성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