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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관의 장독대.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길목, 피안교를 건너기 직전에 있다.
 유선관의 장독대.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길목, 피안교를 건너기 직전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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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은 '슬픈 계절'로 통한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대중가요의 영향이 크다. 가을을 노래한 가수들의 목소리도 애달프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찾아간 곳은 해남 두륜산 대흥사다. 절집에는 늦게 시작된 단풍이 아직도 가을의 끝자락을 힘겹게 붙들고 있다. 올 가을 한반도의 마지막 단풍이다. 뒤태가 여전히 매혹적이다.

계절 탓일까. 절집에서 유별나게 눈길을 끄는 게 연리목(連理木)이다. 정확히 말하면 뿌리가 붙어 있는 연리근(連理根)이다. 일주문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목, 천불전 앞이다.
  
대흥사의 연리근. 수령 500살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됐다.
 대흥사의 연리근. 수령 500살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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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연리목. 천불전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대흥사 연리목. 천불전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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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0살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만나서 하나가 됐다. 키가 무려 20m, 나무 둘레가 4.4m 가량 된다. 높이나 품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나무 아래에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수많은 중생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밝혀놓은 촛불이다. 뿌리가 한데 붙은 나무가 행운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연리목은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나 뿌리가 붙어서 하나 된 것을 가리킨다. 그저 맞닿아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태풍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부러지면서 드러난 속살까지 닿아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포조직까지 서로 붙는다. 오랜 시간과 햇볕, 바람에 의해 두 몸이 하나가 된다. 인고의 세월을 겪어야 가능한 일이다. 예부터 서로 붙은 나무를 귀하게 여긴 이유다.
  
속살까지 맞닿은 연리지. 자연스레 세포조직까지 서로 붙는다. 순천 송광사의 배롱나무 연리지다.
 속살까지 맞닿은 연리지. 자연스레 세포조직까지 서로 붙는다. 순천 송광사의 배롱나무 연리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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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를 합친 '비익연리(比翼連理)'에서 비롯됐다.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하나뿐인 전설 속의 새다. 암수가 한데 어우러져야 양 옆을 제대로 보고, 날 수 있다. 연리지의 리(理)는 '결'을 뜻한다. 나뭇결이 연결된 가지를 일컫는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가 허공에서 만나 합쳐져 한몸을 이룬 나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가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담아 지은 '장한가(長恨歌)'에서 나왔다. '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기를 원한다(在地願爲連理枝)'는 구절이다.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빗대는 연유다. 정성껏 기도하면 인연이 맺어진다고 한다. 맺은 인연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도 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천년사랑'이다. '사랑나무'로도 불린다.
  
두륜산의 비로자나 와불. 산의 형세가 누워 있는 부처를 빼닮았다.
 두륜산의 비로자나 와불. 산의 형세가 누워 있는 부처를 빼닮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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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북미륵암의 미륵불좌상. 천년나무에 해를 붙잡아두고 천녀가 조각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대흥사 북미륵암의 미륵불좌상. 천년나무에 해를 붙잡아두고 천녀가 조각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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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기도의 대상은 또 있다. 산정에 누워있는 비로자나 와불이다. 얼굴과 몸, 다리까지 확연한 비로자나불이 신통함으로 소망을 들어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전라도 천년수'로 지정된, 만일암 터의 천년나무와 북암의 미륵불도 있다. 천년나무는 수령 1100년의 느티나무다. 북미륵불은 천년나무와 얽힌 천동과 천녀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대흥사 천불전 전경. 대흥사는 선암사 등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대흥사 천불전 전경. 대흥사는 선암사 등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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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천불전의 문양. 고색창연한 멋으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대흥사 천불전의 문양. 고색창연한 멋으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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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의 역사도 깊다. 백제 때 창건됐다. 중건을 거듭하면서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큰 도량이 됐다. 보물과 천연기념물 등 유물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차로 유명한 일지암과 북미륵암, 진불암, 청신암 등 암자도 많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순천 선암사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예부터 대흥사는 장엄한 불교의식을 중시했다. 초의, 만해 등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했다. 시·서·화·차에 능했던 초의스님도 대흥사에 오래 머물렀다.

절집에 사천왕문도 없다. 천관산과 선은산, 달마산과 월출산이 동서남북에서 감싸며 보호하고 있어서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삼재가 미치지 못하고,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대사는 묘향산에서 입적하며 의발(衣鉢, 가사와 공양 그릇)을 대흥사에 두라고 했다.
  
대흥사 대광명전. 문재인 대통령이 젊은 날 1년 남짓 생활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요사채다.
 대흥사 대광명전. 문재인 대통령이 젊은 날 1년 남짓 생활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요사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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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의 당우에 걸린 편액도 눈여겨볼 유물이다. 무량수각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돼 있는 표충사 편액은 정조대왕이 썼다. 대웅보전과 천불전, 침계루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가허루 편액은 창암 이삼만의 필체다.

동국선원의 대광명전에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다. 초의선사가 유배 중인 추사의 방면을 빌며 지었다. 스님들의 참선 공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젊은 날 7번방에서 1년 남짓 생활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정치적으로 큰 일을 앞두거나 역경을 만났을 때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대광명전의 선방들. 젊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 7번 방에서 생활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대광명전의 선방들. 젊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 7번 방에서 생활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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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대흥사, #두륜산, #문재인 대통령, #연리지, #대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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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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