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시민들의 항의집회 풍경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시민들의 항의집회 풍경
ⓒ 하성환

관련사진보기


촛불 정부 들어서서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 학교교육이 기성질서에 순응적인 신민(臣民)형 인간을 양산해온 것에 대한 역사적 성찰의 결과이다. 국민교육헌장은 폐기되었지만 오늘날 학교는 여전히 순치된 인간형을 답습하고 있다. 학교를 옥죄는 낡은 틀과 권위주의 질서를 해체시키고 학교사회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구성해야 할 시점이다.

학교는 교육과정과 학교생활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체득한 공화국 시민을 길러내야 마땅하다. 그 일은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교육의 목적에 충실한 행위이자 이 땅에 민주주의를 깊이 뿌리내리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다시는 '경제대통령', '국민행복시대' 등 물질을 앞세워 이성을 마비시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유혹을 이겨낼 비판적 지성을 길러내는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고 학교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자들이 더 이상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시민의 일상적 참여와 감시를 이끌어 내는 교육이 학교 교육의 본령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학교구성원들이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도록 교육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학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학교구성원인 교직원-학생-학부모에게 권한을 분산시켜 되돌려주어야 한다. 교직원회의를 의결기구로 만들고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권위주의적인 학교문화와 수직적인 위계질서는 사라지고 수평적인 학교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학교장은 최고의 결정단위에서 내려와 학교교육활동을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보조단위로 재배치돼야 한다. 그러할 때 학교구성원들은 서로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를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교장선출보직제의 도입이다. 현행처럼 점수를 쌓아서 교장자격증을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 이외에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매우 후진적인 교장자격증제를 고집하는 것은 교육기득권 집단의 욕망을 교육부가 모르쇠로 방치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승진을 욕망하는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는 평교사들의 인격을 믿고 교육부는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다음으로 학교장에 의한 교사 근무평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현행 교원평가제도를 국가 단위에서 시행할 것이 아니라 학교단위 교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 또한 전국의 교사를 모욕 주는 차등 성과금 제도를 즉시 폐지해야 한다. 교육은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이고 그 중심에 교사가 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바람직한지 무엇이 옳은지 가치를 지향하게 하는 인생의 안내자이다.

그런 교사를 S급 - A급 - B급 교사로 분류하고 돈을 차등 지급한다는 것은 모욕적이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교육청과 지역교육청은 학교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지원단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다시는 학교 위에 군림하여 공문을 내려 보내는 것으로 교사들의 연구시간을 빼앗아 가면 안 된다. 온갖 잡무와 공문 더미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것이 교사의 일상적 풍경이라면 믿겠는가?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핵심관건은 교사를 신뢰했다는 데 있다. 상급관청인 교육부, 교육청의 장학감사제도를 일거에 폐지하고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극대화시켰다. 교육부, 교육청은 학교와 교사 위에 군림하기보다 지원조직으로 재구성되었고 재탄생되었다. 핀란드 교사들 간 협력적 관계가 되살아나 수평적이고 협동적인 학교문화는 세계 최고의 교육력을 낳았다.

세 번째로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를 공문 한 장 내려 보내고 끝낼 일이 아니다.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를 위로부터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바로 퇴근시간이다.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어쩌다가 열리는 교직원회의조차 지시와 전달, 협조 사항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교사의 의견이 수렴되는 공간이 아니다.

민주적인 의견 생성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학교 현실에 대한 무지이거나 왜곡의 극치이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나 가능할까 전국적으로 교직원회의 풍경은 관행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연간수업일수를 축소하고 수업시수를 감축해야 한다. 한국의 고등학교 연간 법정 수업시수는 1200시간이 넘는다. 이는 프랑스 고등학교보다 1/3이나 많다.

그렇게 오래 공부시킨다고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치면 이 문제는 즉시 해결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 되어 있기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처럼 국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의지만 있으면 변화는 어렵지 않다.

네 번째로 민주시민교육을 프랑스, 스페인, 포루투갈, 그리스처럼 독립된 교과로 운영하도록 한다. 물론 국어, 사회, 역사, 예술, 체육, 영어, 수학, 과학 등 다른 교과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을 다룰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을 독립된 교과목으로 하되 영어나 한국사처럼 수능과목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에 존재했던 '환경'과목이나 '시민윤리'처럼 유명무실하게 되어 학교현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다만 현행처럼 5지 선다형 찍는 시험으로 해서는 안 되고 논술형 절대평가로 배치해야 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처럼 고등학교 교사들이 논술형으로 출제하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 평가방식이 논술형 절대평가로 바뀌면 아이들의 삶이 달라진다.

책을 읽게 되고 토론을 자연스럽게 구성하게 되어 생각의 폭을 넓히고 확장시킬 수 있다. 비판적 이해와 지성이 길러지는 대목이다. 나아가 토론수업을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경청하는 자세를 기를 수 있다. 상대평가 찍는 시험에 갇혀 획일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아이들이 조화를 이루고 협동하는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오늘날 대입논술시험은 논술시험이라기보다는 기형적인 시험에 가깝다. 요약하기 문제나 수학문제, 영어제시문이 나오는 등 과거 국영수 시험을 대체한 대학별고사로서 하루빨리 폐지하는 게 옳다. '자유롭다는 것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뜻인가', '예술작품에 대한 감수성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가' 이는 수 년 전 대학입학자격시험인 프랑스 바칼로레아 자연계 기출 시험 문제이다. 인문계나 사회계 논술문항도 아닌 자연계 이과생들을 위한 문항이라는 데 충격이 크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아울러 현행 국영수 중심으로 주요교과과정이 편성돼 있는데 이를 우선적으로 고쳐야 한다. 국어는 한국사, 사회, 민주시민교육 교과와 함께 국민공통필수과목으로 지정하되 영어와 수학, 과학은 그 지식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선택과목으로 공부하게 한다. 기능적 지식인만큼 영어와 수학, 과학이 절실히 필요한 학생들에게만 이수 단위를 높여 깊이 있게 가르치고 다른 학생들에겐 이수 단위를 줄여 교양과정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학교마다 수학포기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어린 시절부터 강압적인 선행학습으로 공부에 질려 상처 받은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게 오늘날 학교의 비극적 실상이다. 영어는 유치원 시절부터 사교육을 시작해 아마도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쏟아 붓는 과목일 것이다. 우리말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영어, 수학 공부를 입시교육에 맞춰 강요하는 것은 실로 교육학대에 버금간다.

국가인권위에서 제작한 인권 영화 6개의 시선에서 고발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L과 R 발음을 구분시켜 준다고 두려움에 떠는 어린 아이의 혀를 절개하는 수술 장면에서 부모는 수술 마치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아이를 달랜다. 다큐멘터리 영화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적지 않다. 무엇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진정으로 어른들은 숙고할 일이다.

다섯 번째로 단위학교에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할 '민주시민교육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교육부는 올해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진보교육감이 재선된 서울시교육청은 일찍이 2015년 민주시민교육과가 생겼다.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할 민주시민교육부를 각급 단위학교마다 신설하고 학교교육과정을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을 민주시민교육과정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교육과정 편성권과 예산 배정을 담보해야 한다.

그러할 때 학교는 가장 민주적인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다.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학교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할 것이고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체득할 것이다. 소프트웨어인 교육과정이 바뀌고 하드웨어인 학교문화가 바뀐다면 학교 전체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우리 삶 속에 다가올 것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건강한 지성을 간직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여섯 번째로 학생자치활동을 전면화하고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이제껏 학교교육에서 아이들은 수동적이었다. 그렇게 요구받았고 그런 모습이 학생답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촛불 정부 이후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 내리기 위해선 학교교육은 달라야 한다. 모든 교육활동에서 아이들은 주체가 되어 직접 체험하고 참여하며 학교생활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활동의 모든 장면에서 기획 - 집행 - 평가의 주체로 학생들이 우뚝 설 수 있도록 교사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예전 경남 거창고등학교 축제 당시 축제의 전 과정을 아이들이 기획-집행-평가의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주관한 것은 좋은 선례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 스스로 주인이 되어 보는 것! 그것만큼 좋은 민주시민교육은 없다.

마지막으로 내년에 정부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가 구성되기 이전이라도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분포돼 활동 중인 민주시민교육 가용자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연대, 인권연대, 정의기억재단(한국정신대 문제대책협의회 후신), 여성의 전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앰네스티 한국지부,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나눔문화 등 훌륭한 NGO교육자원들이 주변에 많다. NGO견학을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은 최고의 민주시민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을 통해서 시민성을 획득하며 길러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민주시민교육의 중차대한 일을 시대의 과제로 짊어진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급히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학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등록하였습니다. 교직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만큼 교육분야에 대한 글을 기사화함으로써 좀더 많은 독자들과 문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등록은 2년 전에 해놓고 기사 한 번 쓰질 못했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꼭 좋은 기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인헌고 사건이 주는 교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