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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하여 등록한 문화재이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왔던 그 삶의 현장이 이제 역사가 된 것이 근대문화유산이다.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근대문화유산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근대의 시간 속으로 산책하며 과거와 현재에 얽힌 이야기를 기사로 정리하여 남기고자 한다. - 기자 말

[남제주 강병대 교회]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8호
지정내역      1동 연면적 594.48㎡
지정(등록)일  2002년 5월 31일
소재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대서로 43-3(상모리)
건립시대      대한민국

 
    제주의 대표적 명소인 성산 일출봉
  제주의 대표적 명소인 성산 일출봉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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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고2 때 수학여행을 통해 제주도를 처음 만났다. 그후로 달콤한 신혼여행, 가족, 친지들과 여행, 교사 연수, 친구와의 여행 등으로 지금까지 제주를 여러 차례 만나왔다. 그래서 제주도는 웬만큼 알기 때문에 더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집안 모임 여행이 대마도 여행 대신 제주 여행으로 결정될 때 조금 아쉽기도 했다.
 
외돌개    서귀포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9호이다. 제주 올레길 7코스로 이어지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꼭 찾는 곳. 올레길 가운데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 외돌개  서귀포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9호이다. 제주 올레길 7코스로 이어지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꼭 찾는 곳. 올레길 가운데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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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갈 때마다 보았던 제주의 모습이 같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주도 많이 변해 새롭게 다가온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제주도의 겉모습도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제주는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있었다. 제주를 알아가면서 변한 나의 관점이 새로운 제주의 모습을 찾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으며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제주는 한 번에 하나씩만 보여주는가 보다.
 
쇠소깍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자연하천.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8호이다.
▲ 쇠소깍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자연하천.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8호이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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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슬픔을 알게 된 그 후...

처음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억압된 학교생활의 분위기에서 풀려난 해방감에 들떠 제주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돌아다니는 그 자체가 일탈의 큰 기쁨을 주었으니까. 그래도 육지에서 쉽게 볼 수 없고 이국적이기까지 한 풍광이 어린 우리들에게 꽤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아직은 견문이 좁아 나이아가라 폭포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당시 고교생들에게 한라산과 천지연 폭포, 천제연 폭포, 정방 폭포와 같은 큰 물줄기는 큰 놀라움이었다. 또한 제주도가 특별한 화산섬임을 알게 하는 큰 동굴 속을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가지 못했던 1970~1980년대는 제주도는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다. 택시를 대절해 드라이브하며 명승지에 가서 기사가 찍어주는 사진에 포즈를 취하는 것이 풍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택시를 대절하는 호사를 누리는 드라이브 길에서 만나는 제주의 시원스런 풍광이 우리의 달콤한 여행을 위해 꾸민 화려한 세트장인 듯 여겨졌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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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한라산과 폭포와 동굴과 바다 풍경이 제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오름'도 '일제의 군사기지'도, '4·3 항쟁의 제주'도, '한국 전쟁의 제주'도 몰랐다. 나중에 이것들을 알고나선 제주에 빚진 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작가 김영갑을 알게 되면서 오름에 오르게 되었고 4·3 항쟁이 누명을 벗고 세상에 드러나 제주의 슬픔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만난 제주도는 내게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제주 송악산 외륜 일제 동굴 진지   등록문화재 제317호. 전략요충지인 알뜨르 비행장 일대를 경비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다.
▲ 제주 송악산 외륜 일제 동굴 진지  등록문화재 제317호. 전략요충지인 알뜨르 비행장 일대를 경비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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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과 평화박물관을 보고서야 일본이 거대한 군사기지로 만들기 위해 제주의 땅과 사람들에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다. 육지보다 더했을 인적·물적 핍박에 시달렸던 제주도민들의 참상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레길을 알게 되고 몆 코스를 걷고는 제주의 속살을 다 본 것처럼 감동하기도 했다.

지난 두 달여 동안 블로그와 오마이뉴스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를 소개하면서 제주를 언제 가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마침 친척 모임의 여행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한 이후 처음 가게 된 제주도에서 나는 또 다른 제주를 만났다. 11월 중순 친척 형제들과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행보다 하루 먼저 가기로 하였다. 제주도의 근대문화유산을 찾기 위해서였다.

강병대?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남제주 강병대 교회 입구
 남제주 강병대 교회 입구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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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찾아간 근대문화유산이 '남제주 강병대 교회(등록문화재 제38호)'와 '제주 송악산 일제 해안 동굴진지(등록문화재 제313호)'이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여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지만, 비닐 비옷을 사 입은 아내가 받쳐주는 우산으로 비를 가리면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교회를 다니고 있어 제주의 몇몇 교회를 알고 가본 곳도 있지만 '강병대 교회'란 이름은 낯설었다. 사람 이름을 교회명으로 한 특이한 교회로 생각했다. '강병대'란 분은 처음 담임하셨던 존경받는 목사님이거나 이 훈련소 교회를 지을 당시 훈련소장의 이름일 것이라 섣불리 생각하며 찾아갔다.
 
 '强兵臺敎會(강병대교회)' 글씨를 조각한 명판이 부착된 교회 정면 모습
 "强兵臺敎會(강병대교회)" 글씨를 조각한 명판이 부착된 교회 정면 모습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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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정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올려다본 순간 한자로 된 교회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엄청난 오해를 하였구나"하고 나 자신에게 혀를 찼다. 자료를 자세히 찾아보지 않은 채 온 것을 자책했다. 교회 이름은 '강병대 교회(强兵臺 敎會)'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전쟁 당시 제주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된 후 이 훈련소의 명칭이 강병대(强兵臺)로 개칭되면서 교회 이름도 고친 것이라고 되어 있다. 1970년대에 ROTC 후보생들과 대학생들의 군사훈련을 시켰던 군사교육 시설을 문무대(文武臺), 육군 초급간부를 양성하는 군사교육 시설을 상무대(尙武臺)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강병대는 '강한 병사를 훈련하는 시설'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사람 이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남제주 강병대 교회 전경
 남제주 강병대 교회 전경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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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제주 강병대 교회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8호 동판
 남제주 강병대 교회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8호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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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물을 보는 순간 '참 단단하게 지어진 강인한 건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도 제주도의 단단하고 검은 현무암으로 쌓아서 그런가 보다. 단순한 형태로 견고하게 지어진 군대 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그런 느낌이 먼저 다가온 것 같다.

한국 전쟁 당시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에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 지어진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민간 기술자의 지원 없이 군 공병대의 기술로만 만들어졌다.

전선에 나가기 전 기도를 드렸던 곳
 
 남제주 강병대 교회 옆의 잔디밭. 중간 중간에 제주도의 화산석인 현무암이 박혀 있다.
 남제주 강병대 교회 옆의 잔디밭. 중간 중간에 제주도의 화산석인 현무암이 박혀 있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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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자재들이 부족한 제주도의 향토 재료인 검은 현무암을 사용하여 벽체와 목조 트러스트 위에 함석지붕을 씌운 형태가 오히려 건축적으로 튼튼한 인상을 주어 군대의 강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현재의 교회 건물도 준공 당시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단정하고 강단있는 모습의 교회 건물을 보며 당시 전쟁 중에 이 건물을 짓느라 수고한 공병대 장병들의 노고를 떠올린다.

아쉽게도 앞뒤에 있는 출입문이 모두 잠겨 있어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평일에도 문을 열어 관광객들에게도 둘러보게 하고 이곳을 찾는 기독교인들이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전쟁 당시 모든 곳에 전선이 형성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는 최후방의 거점이 되었다. 육지의 전선에 보낼 병사를 훈련시키는 교육기관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1951년 대구 제1훈련소, 부산 제3훈련소, 제주 제5훈련소를 통합하여 육군 제1훈련소를 제주도 모슬포에 설치하였다. 많을 때는 7만 명에 달한 훈련병을 수용하기에 시설이 부족하여 천막을 설치하였다고 하니 전국에서 모인 어린 훈련병들이 바람 많은 제주에서 얼마나 고생하였을까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남제주 강병대 교회 준공 기념비
 남제주 강병대 교회 준공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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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훈련을 받으며 전쟁에 나갈 준비를 하는 장병들의 가슴 속에는 아마도 삶에 대한 희망보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장병들에게 종교적 생활을 통한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세운 것이 '강병대 교회'였다. 1952년 부임한 장도영 소장(5.16 군사정변 때 육군참모총장으로 박정희에 의해 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잠시 추대되었다가 제거되어 미국으로 망명)의 지시로 1952년 5월 착공하여 9월에 준공하였다.

고된 훈련에 지친 훈련병들과 곧 전쟁터로 떠나게 될 병사들이 자신들의 안전은 물론 가족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기도를 올렸던 역사적 장소이다.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에서 같이 예배드리며 위로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전쟁터에 나갈 병사들의 마음의 안식처요 기도의 터전이었다. 병사들이 전선에 가기 직전 이 교회에서 올린 수많은 간절한 기도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이리라 믿는다.

1953년 1월 21일 제주의 육군 제1훈련소를 강병대(强兵臺)로 명칭을 고치면서 자연히 교회 이름도 개명하여 강병대 교회로 고치게 되었다. 1965년 공군 30단 308부대로 편입되어 기지 교회로 발족하였다. 이후 공군부대와 해병부대 장병들과 가족들의 예배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1977년 지붕과 천장 탑판을 교체하였으며 1995년 교회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를 전면적으로 보수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1950년대에 특별한 교회 양식으로 지어진 강병대 교회는 한국 전쟁 관련 건축물 중 원형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 강병대 교회의 보존 가치를 인정한 문화재청은 2002년 5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8호'로 지정하였다

제주를 처음 찾은 지 몇십 년 만에야 남제주 강병대 교회를 만나고 보니 그동안 제주의 명승지 몇 곳의 지식으로 제주를 아는 척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제주를 만나며 제주가 변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주가 변한 것이 아니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아픔, 역사는 그대로 있었다. 제주를 모르던 내가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근대문화유산 찾기에 눈을 뜨니 지금까지 제주도에 와보기는 한 건가 생각할 정도로 새로움을 느낀다.

제주도에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거나 관심 없이 스쳐 지나갔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의 흔적들이 내게 손짓을 보낸다. 이렇게 제주도는 근대문화유산과 함께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amjun0104)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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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한국 근대문화유산과 교육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