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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진 않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환대받는 세상에서 내향인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오디오를 켠다. 거실이 잔잔한 재즈 음악으로 가득 찬다. 막 내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다닥다닥.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얼마 만인가. 재택근무를 주로 하지만 최근엔 과하게 밖으로 돌았다. 종일 사람 만나 회의하고 강의 듣고 강의 하고 떠들었다. 며칠 그렇게 지냈더니 기운이 쭉 빠졌다. 방전됐다. 내 옆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 간절하다. 사흘만 묵언 수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용한 몰입과 집중의 리듬을 한창 타는데 난데없이 알람이 울린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은 쏜살처럼 흘렀다. 아이를 데리러 나가기 전, 마음은 급해도 '믹스커피 원샷'만은 잊지 않는다. 카페인으로 고속 충전하지 않고선 아이의 에너지를 잠들기 전까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이의 에너지를 감당 못 하는 엄마
 
 '아이에게 기 빨린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속으로 삼켰다. (사진은 영화 <툴리> 스틸컷)
 "아이에게 기 빨린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속으로 삼켰다. (사진은 영화 <툴리>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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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종알종알 쉴 새 없이 떠들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활기 넘치는 다섯 살 꼬마다. 주특기는 역할 놀이.

"나는 엄마고 엄마는 딸이야. 엄마, '딸아, 밥 먹어라' 해야지!"

대본까지 몸소 짜서 엄마에게 스무 번씩 반복한다. 걷기보다 뛰기, 뛰기보다 뛰어내리기를 좋아하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계절에 맞지 않은 옷으로 패션쇼 하고, 커피 가루나 밀가루를 귀신같이 찾아내 요리한다. 모든 말과 행동엔 빠짐없이 엄마의 동참을 원한다.

다섯 살이 되면서 '영장류의 새끼'에서 '인간의 자식'으로 진화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기초 돌봄에도 이를 악물곤 했다. 녀석은 '네'라고 대답하는 법이 없는 청개구리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어어어음마마마!"

아이가 내 귀에 지른 소리에 잠시 딴 생각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공 던지고 받기 백 번 하고 숨 좀 돌리려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엄마 손을 잡아끈다. '좀 혼자 놀면 안 되겠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이랑 놀면 재미있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꾸할 수 없었다. 이 작은 녀석이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소중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이와 있는 시간이 그렇게까지 즐겁진 않았다. 가만히 있는 법 없이 시종일관 떠들썩한 아이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그럭저럭 맞장구 쳐주지만 금세 허덕이고 머릿속은 몽롱해진다.

'아이에게 기 빨린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속으로 삼켰다. 엄마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곤욕이라니. '엄마가 애에게 끌려다닌다', '훈육을 못 한다'는 말을 들을 때에도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리 아이 보기가 힘들까, 엄마 자격이 있는 걸까. 육아 효능감이 추락했고, 나는 오랜 시간 자책했다.

서로 다른 기질의 충돌, 누구 탓도 아니다

아이 돌보기는 끝없이 손이 가고 부대끼는 일이다. 나는 3년 가까이 '고립 육아'를 해왔다. 남편은 매일 늦었고, 주변에 양육의 짐을 나눌 사람도 전무했다. 힘들었지만 나보다 악조건 속에서도 씩씩하게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보며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방책을 찾아 책을 읽었고 사람들에게 물었고 다양한 답을 얻었다.

'아이 혼자 노는 법을 가르쳐라.'
'엄마가 아이를 제압해야 한다.'
'다른 엄마들과 교류하라.'
'최대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다녀라.'


그러나 이런 조언은 도리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통하지 않았다. 내 딴엔 엄하게 해도 아이는 통제되지 않았고 밖으로 나가면 더 힘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주류의 육아 방식은 엄마의 성향이나 기질을 고려하지 않았다. 양육자라면 모름지기 활력 넘치는 외향적 인간임을 전제한다. 게다가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며 민첩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러지 못하면 양육 민감성이 떨어진다거나 우울한 기질이라며 폄하한다.

의문이 생겼다. 아이만큼이나 양육자의 기질도 다양할 테고 그런 만큼 내향적인 엄마도 있을 텐데 왜 '음지의 부류'를 위한 육아법은 없는 걸까.

성격유형검사를 하면 나는 내향성이 60~70% 정도의 비율로 나온다. 사교 모임을 즐기지 않고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한 소수의 사람과 가늘고 길게 교류한다. 하나에 깊이 빠지는 편이고 반복적인 일에 취약하다. 10년의 조직생활로 길든 사회적 자아 덕에 의무적으로 대외 활동에 임하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을 가지며 에너지를 회복한다.

이런 나의 성격은 집중과 열정을 화르르 불태우는 창의성이 되곤 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몰입은 없고 반복만 있는 육아의 시간은 내향적인 내게 고통 그 자체였다.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쓰기 할 시간과 장소만 있다면 세상 행복한 혼자 놀기의 달인인 나에게 1초의 짬도 주지 않는 울트라파워에너지를 탑재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육아의 힘듦은 나 때문도 아이 때문도 아니었다. 아이와 나는 달랐고, 그래서 충돌했고, 우리의 빈틈을 보완하거나 완충해줄 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걸 채워줄 수 없는 엄마다. 거기부터 시작해야 했다.

너무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법
   
 무리하지 않기. 따라 하지도 못하고 따라 해도 자괴감만 들던 육아법에 전전긍긍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걸 택하기.
 무리하지 않기. 따라 하지도 못하고 따라 해도 자괴감만 들던 육아법에 전전긍긍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걸 택하기.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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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여섯 살이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먹이고 재우고 입히기 등 최소한의 육아를 한다. '최소'는 물론 세상의 기준일 뿐, 나에겐 최대치다. 요리는 하루에 한 번, 한 가지 반찬만 한다. 교구나 책, 장난감, 옷 등 육아 아이템도 알아보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기가 싫어 웬만하면 누가 주거나 물려주는 거로 버틴다.

'엄마표' 놀이나 공부는 엄두조차 못 낸다. 미취학 아동에게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벅차서다. 하루 10분이라도 계획 짜고 시간 내며 꾸준히 하기가 나에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아서다. 아이가 잘 따라줄 확신도, 아이에게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할 자신도 없다.

아이와 놀아주기가 힘겨운 대신 '놀이 친구'를 섭외한다. 친구만 있으면 엄마에게 오지 않아서다. 다행히도 친한 동네 친구들이 생겨 매일같이 만난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세 시간 내내 떠들고 노래 부르고 뛰어다녀도 지치는 기색이 없다. 역시 애는 애랑 놀아야 한다.

주말엔 어떻게든 남편과 시간을 나눈다. 육아 초기엔 주말마다 가족끼리 단합한다면서 똘똘 뭉쳐 나들이며 여행이며 쇼핑하러 다녔다. 기분 전환이라는 명분으로 나섰지만 더 지치고 진이 빠졌다. 아이와의 여행은 내향적 엄마에겐 '고행'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혼자 고요히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반나절이라도 가족에게서 떨어져 있으면 에너지가 충전돼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곤 했다.

집에서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야 할 때면 집안 살림을 죄다 내어준다. 치우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내려놨다. 마음껏 어질러라! 대신 엄마를 일하게 두어라.

내 딸이라고 우리의 닮은 점도 있다. 뭔가에 꽂히면 주변이 안 보인다. 이런 기질을 알고 나서 위험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면 제 뿔에 지칠 때까지 내버려 둔다. 아이의 에너지를 억제하기보다 실컷 발산하게 둔다.

이렇게 해서 육아의 어려움이 단번에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버틸만해졌고 아이와의 부대낌이 전만큼 이를 악물 정도로 힘겹지는 않아졌다. 내가 성숙하고 좋은 엄마로 변해서가 아니다. 나의 내향성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분간해서다. 내 그릇만큼만 하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기. 따라 하지도 못하고 따라 해도 자괴감만 들던 육아법에 전전긍긍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걸 택하기. 더 많이 하기보다 덜 하기. 나의 부족함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부족함을 내가 아닌 다른 관계로 채우기. 그 자리에서 우리는 공존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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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도 정체성도 없는 위기의 주부 <엄마 되기의 민낯> 출간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