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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일렁이는 시원해 보이는 파란 물결 위에 파랑 부리를 가진 오리가 한 마리 있다. 하얀 오리 배 위에 누워 있는 건 두더지 같기도 개미핥기처럼 보이는 회색 빛깔의 동물이다. 정체가 무엇이든, 그 조합은 오묘하다. 그들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건 더욱 오묘하다.

같이 그림책을 본 아이는 그다지 감흥이 없는 눈치이다. 아직 어린 꼬마가 늙은 엄마를 감싸안는 다 큰 자식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그러나 조금 늙어 가는 엄마는 이미 감동 중이다. 파란 물감이 온 마음을 채운 듯, 파랗게 먹먹하다.
 
표지
▲ 릴리아 <파랑 오리>  표지
ⓒ 킨더랜드, 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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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인가 했던 작은 동물은 무려 '악어'였다. 엄마를 잃은 아기 악어를 우연히 오리가 발견하게 되고, 둘은 함께하기 시작한다. 오리는 정성들여 악어를 양육하고, 악어는 오리에게 한껏 의지한다.

둘은 분명 혈연으로 맺어질 수 없는 본질이 다른 동물들이다. 그러나 오리의 노고, 그에 보답하는 악어의 성장을 따라가다 보면, 혈연보다 더욱 강하게 그들을 잇는 함께한 시간이 만들어내는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간들은 '피'보다 더욱 강하게 그들을 연결한다. 그림책에 낭만적으로 표현된 악어의 성장담에는 분명, '지지고 볶는' 다소 짜증스러운 순간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생략된 그 시간들 역시, 이들을 '가족'으로 엮어내는 시간의 일부이다.

오리의 기꺼운 희생과 그 희생이 만들어내는 행복은 악어에게서 동질의 것을 이끌어낸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한 오리를, 악어는 오리가 악어를 보살폈듯 살뜰히 보살핀다. 어미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악어의 모습엔 과거 엄마 오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어미 오리에게 받았던 사랑은 다 자란 악어가 어린 아이가 되어 가는 오리를 보듬을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사랑의 순환이 이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관계에 '가족'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어울린다.

그림책은 파랑색을 도드라지게 사용한다. 오리와 악어가 헤엄치는 파랑 연못을 기본으로 주변 풍경이며, 오리 주둥이까지 파랑이 차지하고 있다. 시원한 파랑 빛은  변치 않고 영원하게 이어질 가족의 사랑을 표현한다.

기쁨과 함께 고통을 이겨내는 가족의 사랑은 흐르는 물처럼 영원히 흘러간다. 영원과 순환을 상징하는 물빛을 담은 파랑은, 이제껏 빨강색으로 대표되던 혈연이 주로 담당했던 가족의 특성을 대체한다. 가족에게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그들이 나눈 시간이며 사연이다.

<파랑 오리>가 그려내듯, 이제 가족의 의미는 혈연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가족은 더이상 혈연공동체란 말로 국한되지 않는다. 혈연은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부분일 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오리와 악어가 가족이 되듯, 어떤 관계든 가족으로 엮어질 수 있다. 엮어지는 과정에는 오리와 악어가 서로를 수용하듯, 상대와의 암묵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에는 계기와 과정이 담기는 그들만의 사연이 포함될 것이며, 그 사연은 서로의 정서를 결속시킨다. 

이 결속에는 책임이 따른다. 함께 하는 즐거움과 안도만이 이들을 가족으로 엮어내지는 못한다. 그림책이 그려내지 않는 오리의 육아에는 분명 고통의 그림자가 따른다. 악어의 성장이 가져다 주는 행복 이면에는 오리의 희생이 필수이다.

그 감내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악어와의 연결 고리이다. 그 연결 고리는 악어에게 '사랑'을 전달해줄 것이며 만들어낼 것이다. 악어는 그 사랑을 받아 다시 되돌림으로써 책임을 다한다. 그래서 이들은 '진짜' 가족이다. 진짜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받은 사랑을 자발적으로 되돌리는 책임으로 완성된다. 엄마 오리를 안고 악어는 속삭인다.
 
'나는 엄마의 아기였지만,
이제 엄마가 나의 아기예요.
내가 지켜줄게요.'
-릴리아 <파랑 오리> 중에서

생의 시간은 어쩌면 아기로 태어나 아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성인들은 아기가 된 늙은 부모를 어떤 형태로든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하는 시간을 맞이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부모가 나를 양육한 시간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떨어지기 마련이다. 악어처럼 헌신적으로 늙은 부모를 챙기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삶의 순환에서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불균형일지도 모른다.

<파랑 오리>는 일반적인 그 불균형을, 이제는 거의 실재하지 않는 균형으로 그려낸다. 어쩌면 작가는 그 격차가 너무나 벌어진 현실의 불균형을 그림책에서나마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기우뚱한 애정의 시소 한쪽에 앉아 건너편의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파랑 오리

릴리아 지음, 킨더랜드(킨더주니어)(2018)


태그:#파랑오리, #릴리아, #부모와자식, #가족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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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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