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배우 홍석천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지금까지도 많은 시민에게 홍석천은 성소수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홍석천 이후로도 한국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한 유명인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한국에서는 가수 홀랜드, 마셜 등이 커밍아웃을 한 바 있다).
 
지난해 홍석천이 한 유력 정치인의 대선 출정식에 참석했을 때, 그는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저를 버리셔도 좋다'는 발언을 했다. 그의 말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는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많은 사람 사이에서 모멸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동성애를 반대하느냐'는 질문은 지금까지도 대통령 후보 토론회나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성 소수자를 타자화하는 사회적 구조 가운데, 대중 예술인들이 스스로의 성적 소수성을 드러내기란 어렵다.
 
서양은 어떨까. 서양이라고 해서 혐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혐오의 역사가 오래된 것은 마찬가지다. 스톤월 항쟁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기 때문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한 예술인들이 많이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인 퀸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 그를 추모하는 무대에서 'Somebody To Love'을 멋지게 불렀던 조지 마이클도, 'Bohemian Rhapsody'를 불렀던 엘튼 존 역시 성 소수자였다.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의 젊은 뮤지션들 중에도 이러한 인물들은 많이 있다. 
 
 샘 스미스

샘 스미스 ⓒ 유니버설 뮤직

  
샘 스미스(Sam Smith)
 
: 샘 스미스는 한국팬들에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팝스타다. 데뷔 앨범 < In The Lonely Hour >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레코드상', '최우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에드 시런과 함께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남자 가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샘 스미스가 음악계의 혜성으로 등장했을 때, 그가 게이라는 사실 역시 함께 알려졌다. 실제로 샘 스미스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자주 강조하는 편이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남긴 '나를 버린 그 남자에게 감사한다'라는 수상 소감은 여러 차례 회자되었다.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특히 게이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재로 한 'HIM'은 처절할만큼 솔직한 고백이다. 샘 스미스는 자신의 아픔마저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지난 10월, 첫 내한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면서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Holy Father We need to talk
아버지, 우리 얘기 좀 해요
 
I have a secret that I can't keep
더는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I'm not the boy that you thought you wanted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소년이 아니에요

'HIM' 중

 
 트로이 시반(Troye Sivan)

트로이 시반(Troye Sivan) ⓒ 유니버설 뮤직

 
트로이 시반(Troye Sivan)

: 트로이 시반은 국내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는 팝 뮤지션이다. 2016년,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을 통해 첫 내한 공연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객(1만명 이상)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울버린(휴 잭맨)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이자, 꽤 이름을 알린 유튜버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커밍아웃 영상을 올렸다.

트로이 시반은 그 이후로도 음악을 통해 소수자로서 느낀 아픔, 혹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노래했다. 1집 < The Blue Neighbourhood >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게이의 사랑 이야기였다. 2집 < Bloom >에 실린 'Seventeen'을 들어보면, 트로이 시반의 목소리가 얼마나 뚜렷하고 명확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크 오션(Frank Ocean)

프랭크 오션(Frank Ocean) ⓒ Def Jam

 
프랭크 오션(Frank Ocean)

: 미국 사회, 그 중에서도 흑인 사회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1차적인 이유로는 흑인 사회를 지탱한 토대가 기독교였음을 꼽을 수 있다. 힙합에서는 마초적인 가치관이 강조되었다. 동성애자를 'faggot'이라고 부르는 랩퍼는 수도 없이 많았다. 스눕독이 한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흑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일수록 커밍아웃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프랭크 오션은 위켄드, 미겔과 함께 PB R&B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며, 동성애자다. 그는 2013년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뽑힌 < Channel Orange >를 발표했다. 그는 이 앨범에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아름다운 가사 위에 담아냈다. 얼마 전 올랜도의 퀴어 나이트 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증오가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담은 글을 쓰기도 했다.
 
 엠넥(MNEK)

엠넥(MNEK) ⓒ 유니버설 뮤직

  
엠넥(MNEK)

: 잉글랜드 출신의 뮤지션 엠넥(MENK)은 가수이기에 앞서, 유능한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비욘세(Beyonce), 두아 리파(Dua Lipa), 스톰지(Stormzy), 챠미(Tchami) 등 굵직한 뮤지션들과 여러 차례 작업했다. 그는 올해 방탄소년단과 함께 만든 작업물을 내놓기도 했다. 미니멀한 비트가 인상적인 '낙원'이 그의 작품이다.

MNEK은 최근 자신의 첫 스튜디오 앨범 < Language >를 발표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그는 '동성애자와 유색인종이라는 정체성이 꼭 슬픈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농담처럼, 거대한 응원처럼 다가가는 음악을 만들겠다고 단언하는 뮤지션이다.
  
 할시(Halsey)의 정규 앨범 < hopeless fountain kingdom >

할시(Halsey)의 정규 앨범 < hopeless fountain kingdom > ⓒ 유니버설 뮤직

 
할시(Halsey)
 
: 할시는 체인스모커스의 'Closer'로 스타덤에 오른 팝 뮤지션이다. 올해 여름 성공적인 내한 공연을 마치기도 했다. 남자 랩퍼 지 이지(G Eazy)와 연애 중인 그녀는 스스로 바이섹슈얼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그녀는 현재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할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GLAAD 미디어 어워즈에서 '뛰어난 음악 아티스트상'(Outstanding Music Artist)을 수상한 할시는 당시 인상깊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는 이 시상식에서 바이섹슈얼로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집이 없어 도움을 필요로 하는 LGBTQ 청소년들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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