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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가장 낮은 데서 핀다. 가장 낮은 데서 피어나는 꽃과 풀을 우주한 가운데에 피워 놓았다. 오는 12월 2일까지 전시되는 경남 울산시 울주군 울산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윤은숙 작가의 개인전 '충만의 숲'이 그렇다.

이번 개인전는 울주군(군수 이선호)에서 지역작가를 선정해 지원금을 주고, 전시공간을 무료로 대여를 해주는데 올해의 지역작가로 선정되어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두우나 우울하지 않고, 이파리 하나하나가 빛을 발하면서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윤은숙 작가의 꽃과 풀들이 초청장을 보내왔다. 도착하니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윤 작가는 언제나처럼 느린 웃음과 경상남도 억양의 나직한 목소리로 반겨 맞아 준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지역작가선정에 공모로 선정된 윤은숙 작가 개인전 <충만의 숲>이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전지되고 있다.
<우> 안개숲. acrylic on canvas. 224x162.  2018.
 울산광역시 울주군 지역작가선정에 공모로 선정된 윤은숙 작가 개인전 <충만의 숲>이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전지되고 있다. <우> 안개숲. acrylic on canvas. 224x162.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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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기자님, 여기까지 오셨어예?"

"네,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일단 축하드릴게요. 지역작가로 선정된 점 축하드립니다. 군 단위에서 이렇게 예술가들에게 창작 지원금도 지원하고, 전시도 지원하고 좋네요."

"네, 좋죠. 작가들은 어쨌든 전시회를 통해 감상자들과 만날 기회도 되고, 또 결과물들을 확인하면서 그게 또 창작을 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지니까요."


전시실 가득한 윤 작가의 그림들이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귓속이 간질거린다. 그림 속 풀과 꽃과 새와 달이 내게 속삭여 온다. 발목에서, 어둠속에서, 밤하늘에서, 우주에서.
  
고요한 수다.  acrylic on canvas.  53x45cm.  2018.
 고요한 수다. acrylic on canvas. 53x45cm.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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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작가님 그림 속에는 집이나, 새, 달 같은 소재들이 숨어 있어서 숨은 그림 찾기 하는 재미가 있어요. 자주 등장하는 거 보면 작가님만의 상징이 있는 거죠?"

"그래예? 숨은 그림 찾기… 그림 속에서는 쉽게 찾아지는데, 뭐 보는 감상자마다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겠지만 집은 저에게 회귀본능 같은 걸 이야기해요. 집이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잖아요. 그림 속에서의 집은 제 마음 속의 집,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 같은. 달은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공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예전 그림에는 달이 없었는데 식물을 그리다보니 풀 한 포기 속에도 우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예. 새나 나비도 풀이랑 꽃이랑 공존하는 존재지예. 화면이 커 지니까 풀이나 꽃과 같은 생명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그리게 되더군요."
 

공존. 그렇구나. 윤 작가는 민족미술인협회 울산지부장을 맡아 오랫동안 활동을 해오면서 울산지역의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전시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사람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기는 하지만 포식자로서가 아니라 제일 낮은 땅바닥에서 피는 예사로운 풀 한 포기와도 공존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대가 잠든 사이.  acrylic on canvas.  80x116cm.  2017.
 그대가 잠든 사이. acrylic on canvas. 80x116cm.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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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작가님 그림을 보면 그림 앞에서 좀 가만히 오랫동안 서있게 하는 힘이 있어요.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지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림 속 저 옆 모습은 분명 윤작가님일텐데 제가 저런 모습으로 생각에 잠긴 듯한 착각이 들어요."

"그렇게 감상해주시면 참 고맙지예. 결혼을 하기 전에는 사회적 활동이 자유로우니까 활동을 하면서 사회의 불합리함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사회 활동을 할 기회가 거의 없어지더라고요.

그 시간동안 아이들이랑 산책을 하고 식물원을 다니면서 식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그게 뭘까에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꾸준히 거의 20년을 풀과 꽃들을 그리게 되었는데 자꾸 들여다보니 제 눈에는 화려한 꽃보다는 풀들이 더 아름답게 보였고, 우리 삶에서도 작고, 사소한 부분들의 소중함에 대해 느낌이 다르게 오더라구요."

  
<좌> 고요한 수다.  acrylic on canvas.  45x45cm.  2018.  <우>고요한 수다.  acrylic on canvas.  45x45cm.  2018
 <좌> 고요한 수다. acrylic on canvas. 45x45cm. 2018. <우>고요한 수다. acrylic on canvas. 45x45cm.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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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상품은 끊임없이 생산되어서 우리에게 소비를 부추기는데 그런 흐름을 따라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작은 풀잎들을 들여다보니 그냥 위로와 행복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 작은 풀잎과 꽃 한송이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아름다운 풀과 꽃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그런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작은 것일지라도 소중한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우리의 삶이 남의 시선에 기준을 둔다면 항상 더 좋은 것, 예쁜 것, 돈을 더 많이 가져야 하는데 그걸로 충족이 안되잖아요. 많이 가진 사람이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그마한 작품 한 점이 눈에 들어 온다. 화면이 다른 그림들과 좀 다르다.

"윤 작가님, 이 쪽에 있는 그림은 느낌이 좀 다르네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의도 하시고 거친 느낌을 주신 거죠?"

"예. 그동안 주로 아크릴로 작업을 했는데 화면에 재미도 주고 싶고, 화면에 질감을 살짝 주어 풀잎을 사람의 피부처럼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풀이 생명과 고요함을 담고 있지만 조금 더 촉각적인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커피가루를 사용해봤어요. 생각해보니까 커피가루가 식물의 열매라 그런지 마음에 들더라고요. 앞으로는 식물의 열매나 껍질들을 이용해서 작업에 이용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좌/위>커피 원두 가루와 <좌/아래> 콩테 작업을 통해 꽃잎과 잎의 질감을 피부처럼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우>자신의 작품 앞에서 윤은숙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좌/위>커피 원두 가루와 <좌/아래> 콩테 작업을 통해 꽃잎과 잎의 질감을 피부처럼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우>자신의 작품 앞에서 윤은숙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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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작가를 만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윤 작가의 눈웃음이 좋고, 낮고 느린 목소리로 경상남도 억양이 부드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마음도 넉넉하다. 윤작가를 보면 김동명 시인의 시 <파초>에서 마지막 구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생각이 난다. 어쩌면 윤 작가는 그림을 통해 파초가 되어 작은 풀과 예사로운 꽃들과 멀리 떠있는 달과 그 사이 서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공존이라는 치맛자락을 덮어주고 있는 듯하다.

좋은 그림을 보고 돌아가는 날에는 마음이 행복하다. 그림들이 저만 아름다운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내 마음속의 보석 하나를 찾아주기 때문에 그런가 싶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어디에 있든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나와 같이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 같이 살아 낸다는 것. 전시장을 나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 속에 나무의 껍질 냄새가 맡아지는 것 닽은 날이다.

태그:#윤은숙, #충만의 숲, #공존, #민민협 울산지부, #풀, 꼬, 새,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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