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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부터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가 되었습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작은서점인 군산 예스트서점. 이상모 대표는 작가 강연회에 와줄 작가들 작품을 따로 큐레이션 했다.
 작은서점인 군산 예스트서점. 이상모 대표는 작가 강연회에 와줄 작가들 작품을 따로 큐레이션 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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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오래 전에 주고받던 말까지 소환하는 모양이었다. 군산 예스트서점의 이상모 대표가 그랬다. 내가 서점의 테이블에 스마트 폰을 올려놓고 녹음 버튼을 누르자 그는 "안녕하세요"라거나 "아, 떨리네요"라고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쓰기에는 좀 튀는 단어를 썼다.

"(웃음) 취조 받는 것 같아요."

이상모 대표는 1986년에 대학 1학년이었다. 학생들이 강의실보다는 광장이나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던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세계문학을 읽고, 시를 쓰고, 국문과에 가고 싶었던 그는 부모님이 반대하니까 원광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학생운동을 했고, 집에 갈 수 없는 수배생활도 몇 년간 했다.

늦깎이로 입대하고 복무하고 제대하고 나니까 서른 살 언저리였다.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취직을 하는 게 절실했다. 대학 졸업장과 학생운동이 이력의 전부인 그를 고용하겠다는 곳은 없었다. 그는 '통하라 서적'을 운영하는 친형의 밑으로 들어가서 서점 일을 배웠다.

"2006년 11월에 제 서점을 차렸죠. 전망을 갖고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가정이 있으니까 생활을 위해서 서점을 한 거죠. 그래도 군산 시내에 서점이 열 곳 넘게 있던 때였어요. 당시에 우리 서점은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기도 했고요. 수송동, 미장동이 개발되기 전이었으니까요."
 
군산 예스트 서점. 서점 밥을 먹고산 지 20년 된 이상모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서점으로 성장하고 싶다.
 군산 예스트 서점. 서점 밥을 먹고산 지 20년 된 이상모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서점으로 성장하고 싶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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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트서점이 위치한 곳은 군산시 나운 2동, 아파트 단지 13곳을 끼고 있다. 서점이 궤도에 오르는 데 2년쯤 걸렸다. 단행본보다는 참고서가 더 많이 팔렸다. 30평이었던 서점은 옆 가게를 터서 실평수 45평으로 확장했다. 문구점까지 겸하고 나서는 하교 시간마다 초등학생 손님들이 찾아왔다. 왁자지껄한 소리 덕분에 서점에는 생기가 돌았다.

살다보면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하필 이상모 대표가 '내 서점만의 특색을 입히자'고 마음먹은 때였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마트 안에는 서점도 있었다.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거대 상권은 동네상점들을 무너뜨렸다. 올해 또 대형쇼핑몰이 생겼고, 그 안에는 프랜차이즈 서점이 입점했다.

"무섭더라고요. 상권의 흐름이 바뀌는 게 보였어요. 쇼핑몰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구조잖아요. 원 스톱 쇼핑을 하다보면 거기 서점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겠죠. 동네서점은 저 혼자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어야 하는데, 서점 매출이 확 가라앉았어요."

올해 수능을 본 2000년생들은 '밀레니엄 베이비'다. 1999년생보다 20,000여 명 많은 634,501명이 태어났다. 군산에서도 1999년에는 3,729명, 2000년에는 3,77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예스트서점의 올해 문제집 매출은 2017년보다 20%정도 줄었다. 현대중공업과 지엠대우가 떠난 군산 경제의 영향은 아이들의 학업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손님들에게 책 읽을 공간을 주지 못했다는 후회. 그래서 이상모 대표는 매대를 치우고 누구나 와서 책 읽을 공간을 만들었다. 그 다음 날에 매대를 더 치우고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손님들에게 책 읽을 공간을 주지 못했다는 후회. 그래서 이상모 대표는 매대를 치우고 누구나 와서 책 읽을 공간을 만들었다. 그 다음 날에 매대를 더 치우고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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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앞날은 내다봐야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이상모 대표는 월세를 내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괜히 서점을 넓혔나' 후회했다. 서점 밥을 먹고산 지 20년, '내 서점만의 색깔을 입히자'는 뜻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인가. 서점에 책을 다양하게 갖춰놓지 못한 것, 사람들한테 책 읽을 공간을 주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

자영업자의 거의 모든 판단 기준은 매출이다. 인생을 낙관하는 힘도 거기에서 온다. 하지만 이상모 대표는 매출이 아닌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서 열정을 되찾았다. 그의 서점에서 작가 강연회를 14회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다.

"서점 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다시 들더라고요. 누구나 와서 책 읽고 모임 할 수 있는 테이블부터 만들었습니다. 오신 분들이 불편할 것 같아서 다음 날 밤에 다시 매대를 밀어내고 더 넓게 자리를 만들었어요. 차도 한 잔씩 드시게 하고 싶고, 독서모임도 해보고 싶고요. 진짜로 우리 서점만의 색깔을 입히고 싶습니다."
 

그는 지인들과 SNS에 홍보를 했다. 작은서점에서 하는 첫 번째 작가 강연회에 오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어른 5명, 학생 2명이었다.

11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20분. 미리 와서 강연회를 기다리는 청소년들은 전주에서 왔다고 했다. 군산까지는 차로 1시간, 그 전에 외출 준비하려면 또 30분. 실컷 꿀잠을 잘 시간에 온 10대 아이들은 "좋은 강의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신청한 사람들은 얼추 다 온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나는 서점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강연 들으러 온 사람일까 봐 뒤돌아봤다. 테이블 뒤로 비켜 선 이상모 대표는 꼭 오기로 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다섯 명만 와도 좋겠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나 보다. 나처럼 빈자리가 꽉 차기를 바랐나 보다.
 
예스트서점에서 연 첫 작가강연회. 군산 작가 이준호 작가가 영화를 이용해서 글쓰기 강의를 해주었다. 서점 밥을 먹은 지 20년, 이상모 대표는 자신의 서점에서 꼭 작가강연회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예스트서점에서 연 첫 작가강연회. 군산 작가 이준호 작가가 영화를 이용해서 글쓰기 강의를 해주었다. 서점 밥을 먹은 지 20년, 이상모 대표는 자신의 서점에서 꼭 작가강연회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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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트서점에서 연속 4회 글쓰기 강의를 할 이준호 작가는 군산에서 살고 있다. 책 표지에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산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쓴 작가는 영화를 이용해서 강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빔 프로젝트의 영상에 집중했다.

나는 강연 하루 전에 이준호 작가가 쓴 <할아버지의 뒤주>를 샀다. 읽기 전에 뒤표지 쪽부터 봤다. 2007년에 출간하고 2018년 1월에 14쇄를 찍은 책. 굉장했다. 부러웠다. 10년 넘게 '책의 빛이 꺼지지 않고 독자에게 닿은' 건 역사 판타지라는 작가만의 색깔이 있어서일 것이다.

빛을 받는 물체만이 색깔을 가진다. 서점의 빛은 독자들의 발걸음이 만들어준다. 독자들의 다정한 입소문도 서점의 빛이 되어준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이 긴긴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을 무렵에는 예스트서점에도 자기만의 색깔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된 군산 예스트서점. 올해 12월까지는 이준호 작가가 맡아서 해준다. 작가강연회는 5월말까지 이어진다.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된 군산 예스트서점. 올해 12월까지는 이준호 작가가 맡아서 해준다. 작가강연회는 5월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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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군산 한길문고, #군산 예스트서점, #군산 우리문고, #한길문고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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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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