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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조용하던 병원에 남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안내 데스크 앞에서 고객과 간호사가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터져 나온 소리였다.

진료실에서 돋보기를 끼고 뭔가를 들여다보던 나는 안경을 벗을 새도 없이 후다닥 뛰어나갔다. 뛰는 바람에 삐뚜름하게 흘러내려온 돋보기 너머로 희한한 광경이 보였다. 갈색 털이 덥수룩하게 긴 고양이가 고개를 숙인 남자의 머리통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있었고, 남자는 양손으로 고양이의 두 앞발을, 간호사는 고양이의 몸통을 잡고 당기고 있었다.

어쩌다 이 상황이 연출된 것인지 몰라도 남자의 머리 꼭대기에 붙은 고양이는 몹시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가까이서 보니 고양이의 발톱이 남자의 두피 속으로 낚싯바늘처럼 파고 들어갔다. 알고 보니 위태로운 건 고양이보다 보호자인 남자였다.

발톱이 남자의 두피를 공격하는 것을 모르는 간호사는 고양이를 남자로부터 떼어내려고 고양이 몸통을 이리저리 당겼다가 위로 들었다가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고함은 커졌으며 보호자로부터 떨어질까 두려운 고양이는 남자의 머리를 더 세게 움켜쥐었고 발톱은 더 깊이 박혔다. 하필이면 몇 달 동안 길게 자란 발톱과 털을 다듬으러 온 고양이였다. 보호자가 차에서 안고 온 고양이의 체중을 재기 위해 저울 위에 올려놓자마자 고양이가 보호자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가면서 생긴 일이었다.

낯선 장소에 겁먹어 동공이 잔뜩 커진 고양이가 두려움에 찬 소리를 냈다.

"꾸어어어억!"

간호사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리저리 살피더니 그제야 '아이고!' 하더니 고양이의 발을 살살 잡고 남자에게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녀석의 발톱에 의해 생긴 머리의 상처가 곧바로 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옆에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생각하며 서성이던 나는 얼른 진료실로 달려가 소독약과 상처치료 연고를 들고 와서 상처부위에 발랐다. 수의사가 사람을 치료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응급조치는 해야 했다.

"이동장에 넣어 오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연고를 바르면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에요. 통이 있었는데 불편하기도 하고 워낙 순한 녀석들이라 괜찮겠지 생각하고 차에 태워왔는데 여기 와서 이러다니..."

남자가 데려온 고양이가 소동을 피운 것이 무안한지 뒷말을 흐리고 바깥으로 나가더니 차에 남겨져 있던 나머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고양이 보호자가 알아야 할 것
 
고양이는 겁이 많은 동물이므로 항상 숨을 곳이 필요하다. 성격에 따라 작은 소음이나 주변의 변화에도 크게 반응한다.
 고양이는 겁이 많은 동물이므로 항상 숨을 곳이 필요하다. 성격에 따라 작은 소음이나 주변의 변화에도 크게 반응한다.
ⓒ 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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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녀석은 검은 털이었다. 이번에는 간호사와 남자 모두 고양이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면서 녀석의 체중을 신중하게 재었다. 검은 털 고양이를 간호사에게 맡긴 후 그가 뭔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을 새로 하나 사야겠어요."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뒤에다 대고 녀석들의 이름을 물었다.

"누가 호빵이에요?"

고양이 두 마리 미용(호빵, 찐빵)으로 예약을 해 놓은 터라 자세한 사항을 적기 위해서였다(동물들은 외모가 비슷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체 감별을 위해 이름은 물론이고 체중, 털 색깔, 성별, 나이, 중성화 수술 여부 등 상세한 사항을 적어야 한다.) 펜을 들고 두 마리 중 색깔이 옅은 녀석이 호빵이 아닐까, 라고 간호사가 중얼거리는데 남자가 말했다.

"누가 누군지 몰라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 그가 머리의 상처가 불편한지 잠깐 눈을 찡그리더니 이내 바깥으로 사라졌다. 고양이들의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 볼펜을 쥐고 있던 간호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두 녀석은 다행히 털색도 다르고 몸무게도 조금 달랐다. 우리는 갈색 털을 가지고 있는 녀석을 호빵이라 부르기로 했다. 호빵이 먼저 왔고 보호자도 '호빵, 찐빵' 순으로 말했으니 그에 맞춰 차트를 작성했다.

녀석들의 털과 발톱을 다듬기 위해 미용사가 고양이들을 안고 들어갔다. 간호사가 남은 차트를 정리하고 있을 때 남자가 고양이 이동장을 사들고 돌아왔다.

"이건 쓰기가 편하겠더라고요. 이렇게 톡톡, 두 개만 열어주면 되니까."

나는 새로 산 물건을 웃으면서 멋쩍게 설명하는 그를 무심코 보았는데 머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양이의 발톱이 워낙 뾰족하고 길어 상처가 꽤 깊었던 모양이었다.

"저기, 저... 머리에 피가 나는데요."

나는 진료실로 달려가 멸균 거즈와 소독약을 들고 왔다. 스포츠 스타일로 짧게 깎은 그의 두피에서 적지 않은 양의 피를 닦아내자 그는 몹시 당황해했다.

"심장 약을 먹고 있는데 어떡하지요? 괜찮을까요?"

처음 상처에 연고를 바를 때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하던 남자는 상처가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상처에 소독약을 꾹꾹 바르면서 아무래도 병원을 한 번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는 흔한 일이다. 일부러 할퀴거나 깨물지 않아도 발톱이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상풍 예방주사도 정기적으로 맞고 상처가 조금이라도 걱정되면 곧장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다.

동물들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면 언제든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동물을 다뤄야 한다. 특히 고양이들은 집에서 나설 때 반드시 이동장에 넣어야 한다. 자칫하면 주변 환경이나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라 보호자의 품에서 뛰쳐나간 고양이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태그:#동물병원, #겁먹은 고양이, #놀란 고양이, #고양이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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