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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4년 차, 창조적일 것 없이 연초 계획에 따라 업무를 반복할 뿐이지만 나날이 쌓여가는 서류와 해를 거듭할수록 추가되는 일들은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오늘 하루 해야 할 목록을 적고 하나씩 지워나가며 책상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그러던 올해 9월 초 나는 업무부주의로 본부 감사 지적대상이 됐다. 자료를 소명하는 과정에서 외부적인 압박과 자괴감에 휩싸여 직장인으로서의 비애와 삶의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무력감을 호소하며 불면증에 시달렸고, 취약했던 신체 부위의 병이 재발되는 등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준비한 자료들이 잘 소명돼 문제가 해결됐다. 마침내 나는 길었던 터널에서 빠져나와 어둠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 걱정해주며 힘이 돼주던 사람들과 벼랑 끝에서 숨죽이며 괴로워했던 내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후련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조퇴를 내고 가방을 둘러맨 채 회사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계절은 가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리도록 선명하고 깨끗한 가을이 두 눈 위로 담겼다.

들뜬 마음을 이끌고 인근 대학가로 향했다. 그리고 도로 위에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바스락 바스락 소리 내며 걸어 보았다. 도로 맞은편에서 여대생 두 명이 벤치에 앉아 노란 은행잎을 귓가에 꽂고 카메라를 향해 한껏 멋진 포즈를 취하며 셀카를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주머니 안에 있던 스마트폰을 슬며시 꺼내보았다. 그리고 약간의 민망함을 무릅쓴 채 카메라를 전면으로 전환시킨 후 '찰칵' 경쾌한 셔터 소리를 내며 나를 찍어보았다.

나는 방금 찍힌 사진 속의 나를 유심히 살폈다. 맑은기 없이 푸석하고 건조한 피부, 도통 알 수 없는 사연이 가득할 것 같은 초점 흐린 눈동자, 떨어지는 분수 물줄기 마냥 아래로 쳐진 입꼬리, 치아가 보일 새라 굳게 다문 입술. 이게 나인가? 사진 속 인물이 낯설고 측은했다.

매일 이런 표정을 지으며 하루를 마감했을 나 자신이 비참해졌다. 어느새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나를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마침 살랑살랑 볼을 간질이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나도 모르게 빙긋 웃어보았다. 나는 손가락 끝에 정성을 가득담아 카메라 셔터를 꾸욱 눌렀다.
 마침 살랑살랑 볼을 간질이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나도 모르게 빙긋 웃어보았다. 나는 손가락 끝에 정성을 가득담아 카메라 셔터를 꾸욱 눌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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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차가운 시선을 거둬들이고 따뜻하게 돌아보며 달래 줄 수 있는 존재는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길게 이어진 가로수 길에 샛노란 은행나뭇잎들이 끝을 모르고 길게 펼쳐져 있다. 돌담길을 따라 살금살금 기어올라 붉게 물든 담쟁이 넝쿨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카메라를 응시해본다. 마침 살랑살랑 볼을 간질이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나도 모르게 빙긋 웃어보았다. 나는 손가락 끝에 정성을 가득담아 카메라 셔터를 꾸욱 눌렀다.

"김치, 지즈, 스마일."

태그:#나를 위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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