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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2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2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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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에서 군인이 왼팔에 스미노(위안소 주인 이름으로 추정)라고 문신을 하려고 하자 저항하다 총으로 맞았다. 이때 왼쪽 눈을 실명해 위안소에서 풀려났다. 이후 문신을 딸에게조차 숨겼고 공중목욕탕도 못 갔다. 2004년 뇌출혈로 쓰러지자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각오하고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고 공개증언했다. "-북한의 마지막 증언자 김도연, 1923년생, 부산 출신으로 북한 함북 나남 거주, 2004년 사망.

"배급소 근처 골목에서 군인들이 각반을 풀어놓고 줄 서 있는 것을 봤다. 엄마가 '음매(淫賣)'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엄마가 불러서 일본식 떡국을 먹였다. 엄마가 음매하는 집의 불쌍한 여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억들을 통해 내가 봤던 것이 위안소라는 걸 알았다."-나카무라 도미에, 1926년생, 북한 <노동신문>에 증언. 

"울타리 안에서 여자들이 왔다갔다하는 걸 봤다. 그 당시엔 사람들이 기생집이라고 불렀다. 18~20살 정도의 여자들이었다. 복도가 있고, 칸이 나눠져 있고, 칸마다 방문에 여자들 사진을 붙여 놨다." -김영숙, 1925년생, 북한 선봉 거주 중 1938년 13세 때 목격.

북한 소재 위안소와 위안부에 관한 구술 증언이 공개됐다. 북한의 위안부 신고자는 219명으로, 이중 공개 증언자는 52명이다. 그러나 공개 증언자가 모두 사망함에 따라 현재는 공개 증언에 나설 생존자가 없다고 알려졌다.

재일조선인 르포라이터 김영씨는 지난 16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창립 28주년 기념 심포지엄 '북측 생존자들의 기억과 증언,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연대'에서 "1938년 총동원 체제기가 되면 일본이 유흥업을 통제·억제했음에도 이때부터 2~3년간 군인 손님이 급격히 불어나 아주 장사가 잘됐다는 일본인(위안소 주인의 딸)의 증언이 있다"면서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여자들은 사치한 생활을 하면 안 되고 민간인이 이런 유흥업소에 다닐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어 "그럼에도 1945년까지 (위안소가) 성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것은 완전히 군인들만이 이용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며 "이용시간을 짧게 하고, 가격을 내려서 많은 군인을 받게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2003년부터 5차례 방북해 증언·자료 수집

김씨는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에 걸친 방북 조사를 통해 위안부 관련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를 북한 측에 제공하기도 했다. 북한은 위안부 관련 자료가 적은 편이지만 열성적으로 김씨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배우려 했다. 김씨가 다닌 곳은 회령·방진·경흥·나남·청진·함흥 등 함경도 지역이다.  

김씨에 따르면, 국경수비대 본부가 있었던 함북 회령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28년생으로 해방 때까지 회령에 있었던 이가라시 준코씨는 위안소 도쿠가와루의 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회령에 정착한 재조 일본인으로 담배 매매를 통해 큰돈을 벌어서 요리점과 위안소를 경영했다.

이가라시씨는 김씨에게 1살 때 모친, 오빠 및 3명의 여성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을 보여줬다. 이날 공개된 해당 사진 속엔 한복을 입은 3명의 여성이 있는데, 이가라시씨는 이들을 "우리 집의 기생들"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정확한 용어는 기생이 아니지만 그때는 그렇게 불렀다"며 "이가라시 할머니는 자기 집에서 경영한 것이 위안소가 아니라 합법적인 유곽이라고 매우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국제법은 물론 일본법 위반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최초 증언자는 리경생 할머니로 1992년 5월 3일에 증언했다. 한해 전 남한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 증언한 뒤 <노동신문>이 연일 위안부 관련 참상을 보도했고, 이에 영향 받아 리경생 할머니의 증언이 공개된 것이다. 북한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우선 배급, 주택 수리, 의료 우대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날 북한 및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사회 내에서 연대자와 공감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씨는 "성노예제라는 시각에서 유곽도, 위안소도 봐야 한다"면서 "일본인 위안부도 매우 많았지만, 일본인 피해자 중에 본명으로 증언에 나선 분은 한 명도 없다. 글로 남기거나 비공개 증언만 몇 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일본인은 가해자이기 때문에 일본 위안부들은 정부나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면서 증언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없다는 면에서 더 힘든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당부했다. 

북측의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길원옥 할머니처럼 증언집이 나오고, 사람들이 찾아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면 굉장히 위로가 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한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북쪽 할머니들에겐 거의 없다"면서 "다른 이들과 연대를 하고 공감자들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일제가 납치·유괴·강제연행으로 수많은 여성을 성노예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는데, 이렇게 하면 속아서 간 피해자들은 나서기가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북일수교 과정에서 위안부·징용·징병·원폭 피해자들이 제대로 인권을 회복하려면 국제적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이번에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도 북일수교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평화비를 세운 지역단체가 북한에도 평화비를 세우자고 제안하고 있다. 현재 정의연 측에서 북한에 계속 콜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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