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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가 개봉했다. 캐니스 슬라웬스키의 '샐린저 평전'을 원작으로 하여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삶을 그린 영화로 그가 어떻게 소설을 집필하였으며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컬럼비아대학에 진학하여 지도를 받은 그는 능력을 인정받고 단편 소설을 출판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보병으로 소집되어 전쟁 통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전쟁 후 다시 소설을 쓰려하지만 당시의 전쟁 상황이 자꾸 떠올라 어려움을 겪는다. 종교(선불교)를 통해 극복하며 결국 소설을 완성하여 유명인사가 되지만, 출판을 하고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는 것이 자신의 집필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 은둔한 채 글을 쓰며 생을 마감한다.

1951년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러한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라 한다. 영화에서 작가인 '샐린저'가 인터뷰 중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나니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16살 '홀든 콜필드'라는 대역을 통해 1인칭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호밀밭의 파수꾼' 표지
 "호밀밭의 파수꾼"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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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문제아 홀든 콜필드의 2박 3일 동안의 방황을 다룬다. 낙제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룸메이트가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친구와 데이트한 것에 객기를 부리다 얻어터지고 만다. 그 뒤로 짐을 싸서 나온 주인공은 부모님 몰래 동네로 가 일탈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요양을 가게 된다.

소설의 핵심은 스토리가 아니라 주인공의 사고 과정에 있다. 그는 형도, 학교도, 세상도 모두 맘에 들지 않는다. 진정한 작가를 버리고 변절해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형,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는 소외시켜 버리는 나쁜 놈들이 우글거리는 학교,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사근거리면서 가난한 학부모는 별볼일 없이 대하는 교장 등 모든 것이 주인공을 불편하게 한다.

주인공은 매우 여린 마음을 가졌다. 스스로를 겁쟁이라 생각하지만 백혈병이었던 동생의 죽음을 잊지 않고, 소외된 친구를 챙기며,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분별없는 아이들을 경멸하는 올바른 아이이다. 물론 술 좀 마시고 담배 좀 피우는, 껌 좀 씹는 아이로 보이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대상은 동생 피비와 여자 친구 제인이다. 이제 4학년인 피비는 순수함을 상징한다. 아직 더러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천진한 아이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제인은 이제는 순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홀든의 기억 속에서는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230
 
주인공은 순수함에 집착한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립되는 순수함에. 물론 주인공은 불평하고 빈정거릴 뿐 무엇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올바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다. 번역에 따라 순화된 경우도 있지만 원작 소설에는 비속어나 욕설이 많다고 하는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주인공이 느끼는 답답함은 올바른 문장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웠을 듯싶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p.248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 중 가장 긍정적인 인물로 보이는 앤톨리니 선생은 주인공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으니 공부해라, 공부하면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나를 비롯하여 꼰대라 불리는 많은 어른들이 흔히 하는 설득력 없는 말이다. 물론 홀든도 알고 있다. 순수함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p.165
 
순수를 지향하지만 결국 홀든은 어른들의 사회로 들어간다. 요양을 하고 난 뒤에는 다시 학교로 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 홀든의 일탈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변혁을 이루지 못한 갈등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 갈등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력, 주변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섬세함, 이를 가지고 세상의 불합리를 느낄 줄 아는 젊은이들은 분명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영화에서 글쓰기 교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젠 전 세계 젊은이들이 전에 없던 목소리를 결국 갖게 됐어.' 약 70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울 것 없는 인물이지만 그 당시 이 소설의 신선함은 어땠을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나아진 세상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세상을 주시하고, 행동해야 함을 기억해야겠다.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사(2001)


태그:#호밀밭의 반항아, #J.D.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 콜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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