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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전남 해남에서 '해남청년이간다1- 우리 음악 더하기' 공연이 현산면 새하늘지역아동센터에서 열렸다.
 지난 12일, 전남 해남에서 "해남청년이간다1- 우리 음악 더하기" 공연이 현산면 새하늘지역아동센터에서 열렸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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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전남 해남군 현산면 새하늘지역아동센터에서는 '해남 청년이 간다1 우리음악 더하기+' 국악 공연이 있었다. 이번 공연은 지역에 사는 청년들이 우리의 무대는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청년들이 만든 로컬 파티에 지역 아동과 지역민을 포함해 150여 명이 함께 했다.

당신의 잘 삶에 '더하기'를 놓아둡니다

이날 공연은 국악을 하는 청년 박준호, 문학을 하는 청년 김성훈(글쓴이), 영상을 제작하는 청년 명예찬, 이들 셋이 의견을 모아 성사했다.

우리는 150여 명이 앉은 자리에서 '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지역 청년 세명이 의기투합하여 국악 공연 놀이마당을 연다고 하니, 응원 차 걸음의 보조를 맞춘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우리 셋에게는 유효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봉사, 희생, 애향심' 등의 추상적인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준은 자신의 삶에 있었고, 그것의 확장에서 지역을 생각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어휘인 '더하기'를 공연의 제목에 달았다.

'인구 절벽'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라는 단어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돌아올 수 없다는 말,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말, 말과 말 사이에는 언제나 답이 정해져 있었다. 삶의 기운을 빼는 말들이 구조 속에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고착화 되는 것이 옳을까.

'늘 그런 거야. 당연하거야, 너만 힘이 든 거 아냐.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수긍해야 하는 것일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천을 진흙탕을 만든다고 하지만, 우리는 때론 물 속에 부유하는 흙과 모래가 본래의 자리가 아닌 이소됐을 때 조금쯤은 삶의 질서도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었어'라고.
 
공연을 위해 직접 현수막을 벽에 붙이고 있는 임재현
 공연을 위해 직접 현수막을 벽에 붙이고 있는 임재현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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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란 무엇인가

"왜 현산면을 선택했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첫째로는, 지역아동센터를 모범적으로 이끄시는 김창숙 새하늘지역아동센터장님의 적극적인 제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해남 태생으로 진도군에서 국악을 하는 박준호, 해남에서 글을 쓰는 저(김성훈), 그리고 영상을 제작하는 영상 아티스트 명예찬이 십시일반 공연비를 모으고, 지역에서 청년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큰 힘은 없지만 지역에서 나름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폭이 넓고 다양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김창숙 센터장님의 제안에 저희의 생각은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대부분의 공연이나 문화는 읍 중심으로 편중돼 있습니다. 읍만 해남군은 아닐 것입니다. 센터 2층의 강당은 둘러봤을 때 최적의 공연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으레 큰 장소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역 사람들의 체온을 직접 느낄 수 있고, 대화 소리 소곤소곤 들릴 수 있는 이만한 공간에서 지역의 청년과, 그리고 아이들이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흡족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공연을 시작할 때 가쁜 숨을 몰아시며 톤을 조금 낮춰 사회자 멘트를 했다. 적어 놓고 보니 꽤 긴 말이었다. 군의원, 현산면장, 현산농협조합장 등 지역의 유지들도 앉아 있는 자리였다. 해남에서 청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처음 하는 행사다보니 자연스레 긴장이 되고 말이 빨라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망울이었다.

어느 때는 학교에서, 어느 때는 공공도서관에서 그리고 센터에서 '글쓰기나 스피치' '문화예술 교육'을 하던 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폼이 어정버정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 전남 해남에서 해남군민과 함께하는 늘찬국악배달1 북평면 공연이 있었다.
 지난 2월 전남 해남에서 해남군민과 함께하는 늘찬국악배달1 북평면 공연이 있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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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90분 내놓고 다른 사람한테도 시간을 달라고 하자"

지난 3월, 84년 동갑내기인 준호와 내가 농담처럼 섞은 말이었다. 그전 2월에 북평면에서, 해남군 평생 학습 일환으로 이끌어지는 '늘찬 배달' 강좌의 프로그램 공연이 있었다. 준호는 북평면 어르신들 상대로 국악 강습 하고 성과물로서 공연을 한차례 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북평국악동호회 김동섭 회장 덕분이었다. 자식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준호를 선생으로 예우해주며, 어르신들의 합주를 이끌었다.
 
공연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지난 10월 26일, 탕탕절 기념에 맞춰(왼쪽부터) 청년 박준호, 김성훈, 명예찬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연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지난 10월 26일, 탕탕절 기념에 맞춰(왼쪽부터) 청년 박준호, 김성훈, 명예찬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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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처럼 했던 말이 현실로 가능했던 데에는 29살인 예찬이가 합류하고서부터였다. 예찬이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사물놀이반, 영상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왕 할 것 아이들을 위해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같은 또래가 사물놀이를 한다면 동년배인 아이들에게도 귀감이 될것이라는 말을 준호가 맞장구쳤다.

홍보는 어떻게 할래, 프로그램 구성은 어떻게 할까. 아이들 상대니까 간식비도 전체 예산에서 빼야 하지 않을까. 우리끼리 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지역에 선생님들께 상의해 볼까.

"그래? 그람 해야제"

"왜 11월일까를 생각했습니다. 11월은 새해 첫 시작인 1월과 다르게 쌍둥이처럼 1이 하나 더해져 있습니다. 혼자서 가는 길은 시작은 할 수 있지만 멀리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옆에 든든한 한 사람 더 있다는 것이 결국은 함께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고향의 김남주 시인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매번 말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초청된 한국무용가 김영자 선생님과 한홍수 사람사랑 대표님(대금 연주)은 바로 쌍둥이 1과 같으신 분입니다. 저희가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딱 잘라 스케줄을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그람 해야제 였습니다.

그람 해야제를 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주신 내리 사랑,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 저희에게 무언가 도움을 바란다면 저희도 지역의 어른들께 배운 '그람 해야제' 하겠습니다. 그 약속 지키겠습니다."


나는 초청공연에 대해 차분하게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공연 프로그램은 그전 북평 공연을 함께 했던 타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까지 합세해 아귀가 맞춰졌다.

 
지난 9일, 지역주간신문인 해남우리신문사의 도움으로 공연 홍보를 할 수 있었다.
 지난 9일, 지역주간신문인 해남우리신문사의 도움으로 공연 홍보를 할 수 있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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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홍보 문제였다. 지역신문인 해남우리신문 박영자 발행인을 찾아가 상의했다.

"너희들이 한다면 얼마든지 광고 후원해줄게."

그 자리에서 흔쾌한 승낙이 이뤄졌고, 최원묵 국장의 결재 아래, 김유성 기자가 편집해 대문만한 박스 광고가 지역신문을 타고 홍보됐다. 고작 우리 셋이 하는 것은 제작된 광고를 열심히 페이스북이나 지역민이 자주 왕래하는 네이버 밴드에 퍼나르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의 어른들이 청년들 활동에 대해 알게 됐고, 마음을 더해주었다. 김경윤 민족시인 김남주 기념사업회장, 윤길용실용음악학원 대표 등이 한 걸음에 달려와 줬다.

"선생님 띠를 챙겨주세요."

예찬이가 강의를 하고,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주사랑지역아동센터 18명이 김미선 센터장님의 인솔 하에 새하늘지역 아동센터를 방문했다.

이들이 이날 첫 번째 무대를 사물놀이로 열 예정이었다. 찰떡 하면 꿀떡하는 것처럼 호흡과 박자가 척척 맞았다. 고사리 손에 울려 퍼지는 장구, 북, 징 소리. 그리고 예찬이가 부는 태평소 소리는 조용한 동네의 고즈넉함을 단번에 깼다. 말 그대로 아이들 잔치, 사람 잔치의 서막이 올랐다. 물론 그전에 아이들 공연이다 보니, 장구가 조금 늦게 오고, 띠를 매는 손들이 여럿 붙었지만 그것은 비밀로 하겠다.

이어, 준호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역지우인 임재현의 병창이 있었다. 2단부터 5단까지 표정변화 없이 신중하게 읊는 구구단 송은, 국악은 어렵고, 옛날 것이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상당히 좁혀주었다. 누구나 따라 부르다, 그러다 오랜만에 하다 보니 틀리기도 하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또, 요즘 아이들 사이에 국악 공연에서 잔잔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티라노 송을 부르기도 했다.

"나는야 티라노 사우르스"

읊는 노랫말에, 자신들도 아는 공룡 이름이 국악이 돼서 나오는 모습을 아이들은 방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고, 박수도 치며 들었다. 놀면서 아이들은 귀를 열고 있었다.

이외에도, 김정민의 아쟁, 박선호의 해금, 백귀영의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김원근 피리 공연이 있었다.

 
한국무용가 김영자 선생의 지도 아래 관객 모두가 강강술래를 했다.
 한국무용가 김영자 선생의 지도 아래 관객 모두가 강강술래를 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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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빌린 90분에서 10분 남겨둔 80분 정도에 김영자 선생님의 지도 아래 참여한 관객들은 강강술래를 했다. 전통 강강술래 노래에 한발씩 내리 밟으며, 어수선했던 질서는 어느덧 혼란을 벗고 하나의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뛰고 구르고 웃는 사이 시간은 꽉 찼다.
 
해남청년이간다 1 우리음악 더하기에 출연진들, 상단 왼쪽 부터 김원근, 명예찬, 김성훈, 임재현, 한홍수, 김정민, (하단 왼쪽) 김영자, 박선호, 박준호, 백귀영.
 해남청년이간다 1 우리음악 더하기에 출연진들, 상단 왼쪽 부터 김원근, 명예찬, 김성훈, 임재현, 한홍수, 김정민, (하단 왼쪽) 김영자, 박선호, 박준호, 백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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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사후 평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음번에는 너희 마을이야."

광주, 전주, 진도 등 이번에 국악 공연을 위해 달려온 청년 국악인들은 다짐을 했다. 해남만이 아니야. 다음에는 너희 마을에서 행사를 열어줘. 뜻이 있고 마음이 있는데 우리 서로의 거점이 돼자는 다짐을 하며, '해남 청년이 간다 1 우리 음악더하기+'는 진짜로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이 떠난 자리, 그리고 사람이 밟았던 흔적들이 강당 여기저기에 묻어있었다. 귀중한 시간 속에 사람을 더한 자리였다.

태그:#해남청년이간다1, #우리음악더하기, #새하늘지역아동센터, #박준호김성훈명예찬, #주사랑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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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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