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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독자로 시작해 편집자를 거쳐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석주 작가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한 단어는 바로 '책'이다. 가장 친한 동무이자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이 모인 서재는 그의 영혼과 감성으로 쌓아올린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그라지지 않는 창작열은 여전히 매일 그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 부지런히 탐독하며 글 창작에 여념이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문장 노동자, 장석주 작가를 지난 10월 30일 그의 보물창고인 서재에서 마주했다.
 
쌓여있는 책들과 필기구들이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보여준다
▲ 장석주 작가가 집필에 몰두하는 방  쌓여있는 책들과 필기구들이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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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과도 같은 책과의 만남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장석주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상경했고, 유년기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보냈다.

"청운초등학교로 전학했어요.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만 다니다 서울에 오니까 학교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한 학년에 족히 천 명씩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학생은 많고 교실이 부족하다 보니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수업을 했죠.

시골에서는 나름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서울로 오니까 중간 정도를 따라가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됐어요. 도시의 복잡한 풍경에 압도되기도 했죠. 작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꼬불꼬불 어찌나 이어지던지. 길을 잃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감도 있었죠."


그렇게 서울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중학교 입시라는 관문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날 대학 입시와 맞먹을 정도로 혹독한 경쟁에 몸살을 앓던 시절이었다.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울 정도로 공부에 열중했어요. 그런데 저는 체구도 작고 몸이 약해서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게 굉장히 치명적이었어요. 1, 2점 차가 학교 입시 당락을 가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이어서 희망했던 1군 중학교는 낙방했죠. 그래서 동네에 있는 청운중학교에 진학했어요. 국립이라 학비도 저렴했고, 집에서도 가까워서 부모님께서 권하셨거든요. 결국 청운동에서 벗어나질 못했죠."

청운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교과 공부 외에 다양한 분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즈음 운동과 독서가 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서 키가 확 자랐어요. 지금 키가 중학교 2학년 때 키 그대로거든요.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죠.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이광수 소설이나 한국문학전집 같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책 읽고, 밤새 글 쓰느라고 공부는 등한시했죠.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쓴 시 '겨울'이 청소년들이 즐겨 읽던 잡지 <학원(學園)>에 실리고, 고등학교 때 쓴 단편소설까지 실리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됐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경기상고에 진학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박차고 나오면서 정규 교육과의 연을 끊었다. 대신 매일 서울시립도서관과 국립도서관의 열람실로 등교하면서 하루하루를 독서와 글쓰기의 시간으로 채워나갔다.

그의 재능에 노력이 더해진 결과,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서 시 부문으로 당선돼 그토록 바랐던 시인이 됐다. 1979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과 더불어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도 당선돼 비평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그의 남다른 활약상을 주목해온 출판사 고려원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이 왔다. 그렇게 작가가 아닌 편집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고려원 편집부장을 거쳐 1981년 도서출판 '청하'를 설립한 그는 1987년 서정윤 시인의 시집 <홀로서기>가 초대형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덕에 출판사 대표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작가가 79년 고려원에 입사해 첫 번째 주어진 미션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교정하는 일로, 압도적인 감동을 받아 2013년 직접 방문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 박물관에서 구입해온 판화와 함께
▲ 시인의 서재  작가가 79년 고려원에 입사해 첫 번째 주어진 미션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교정하는 일로, 압도적인 감동을 받아 2013년 직접 방문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 박물관에서 구입해온 판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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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2년 청하에서 펴낸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 시비에 휘말리면서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찾아왔다. 저자인 마광수와 함께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죄'로 두 달 동안 수감됐다.

이 과정에서 생긴 심리적 내상은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출옥 후 한 달 동안 제주도에 내려가 은둔했고, 이듬해 봄에는 출판 활동을 접었다. 그리고 1993년, 전업 작가로 다시 방향을 들었다.

"출판업은 내가 사는 사회를 조금이나마 이롭게 만든다는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으로 이어온 일인데, 그 사건을 겪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회의감이 일었죠. 그래서 출판사를 정리한 거예요. 그렇지만 책은 저에게 매일 먹는 밥이나 공기 같은 거거든요. 떠나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책을 읽고 쓰는 일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요."
 
올 겨울 집필에 몰두했다는 거실의 책상
▲ 시인의 서재  올 겨울 집필에 몰두했다는 거실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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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자기관리로 지켜온 작가의 삶

장석주 작가는 40여 년간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며 100권에 가까운 책을 펴냈지만, 여전히 일생의 명작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부지런히 쓴다. 성실과 근면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결코 형용할 수 없는 고된 노동이다.

"생체 리듬을 글쓰기에 최적화된 방향에 맞추려고 노력해 왔어요. 책상에 앉아 5~6시간 동안 집중해서 쓰려면 체력 관리는 필수예요. 긴 시간 동안 술도 안 마시고, 사람들도 잘 만나지 못했죠.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고 살다 보니 생활이 정말 단순해졌어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제 나름의 글쓰기 리듬을 잘 유지해올 수 있었던 셈이죠."

수도승의 마음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왔지만, 그러한 수련 과정이 고통스럽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쓰기는 누구의 명령이나 요구를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는 노동이거든요. 그것이 주는 기쁨과 성취감은 어디에도 비할 곳이 없어요. 젊었을 때 꿈꾸던 삶의 방식이기도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세금도 낼 수 있다는 게 큰 행복 아니겠어요?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책 한 권, 한 권은 살아 있을 때 내가 세우는 비문(碑文)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문장과 깊은 사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융합해서 세상에 없는 책을 늘 쓰고 싶죠.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그것이 책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지향하는 목표가 아닐까요? 늘 실패하면서도 실패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책 한 권, 한 권은 살아있을 때 세우는 비문(碑文)이라고 말하는 장석주 작가
▲ 장석주 시인과의 인터뷰 책 한 권, 한 권은 살아있을 때 세우는 비문(碑文)이라고 말하는 장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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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으로 세상을 이롭게 밝혀 왔지만, 여전히 그는 한없이 겸허한 자세로 책 쓰기에 임한다. 평생의 과제라고 생각하기에, 그에게는 반드시 해내야 할 노동이요, 넘어야 할 관문인 셈이다.

"대개 책은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쓰기 때문에 마감이라는 압박감을 떠안고 쓰죠. 책을 쓸 때는 두세 번의 위기가 있어요. 도저히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밖에 나가 무작정 걸어요. 걷다 보면, 막혔던 생각의 벽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거든요.

생각이 고갈됐을 때는 창조의 원천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다행히 모든 위기를 잘 넘기고, 잘해올 수 있었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때 제일 큰 해방감을 느껴요. 그렇기에 책 쓸 때의 노고나 수고를 잊어버리고, 또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글이 잘 써질 때는 몰입해서 써내려가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잘 느끼지 못하죠."


[다음 기사: 장석주 작가와 만나다 ②] 시와 친해지는 법 "클래식 음악 애호가처럼"

태그:#시인의 서재, #장석주 작가, #종로문화재단,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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