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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카카오의 카풀앱 서비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공정하지 못하다. 배달앱과 주문앱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의 보호와 알바생 고용 보장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얘기와 같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카카오의 카풀앱 서비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공정하지 못하다. 배달앱과 주문앱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의 보호와 알바생 고용 보장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얘기와 같다.
ⓒ 리얼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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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카풀앱 서비스를 둘러싼 논란이 흡사 택시를 이용하는 시민 대 택시업계의 갈등으로 비치고 있다. 이 같은 구도는 서비스 출시가 발표된 직후 여론조사서부터 조장됐다. 각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앞다퉈 카풀 서비스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당연히 찬성 응답이 많았다.

여기서 '당연히'라고 한 까닭은 질문 자체가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편리성 때문에 세상에 등장한다. 그런데 편리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를 놓고 찬반을 묻는다는 것은 '편리하고 싶은가'와 '불편한 대신 (택시노동자 생존권을 옹호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는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풀 논란을 시민 대 택시의 문제로 보면 을과 을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 딸린 자가용 대신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 을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카풀 논란을 을-을 갈등으로 보는 게 정당한가. 카풀 서비스의 등장 배경을 살펴보자.

카카오 측에 따르면 카풀 서비스는 택시 공급 부족에 따른 시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택시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카풀밖에 없을까? 사회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를 개선할 수도 있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존 제도의 개선 여지는 봉쇄한 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택시의 합승 허용이나 규제 완화를 외면한 채 카풀이라는 새로운 수단으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택시도 억울하다

여론이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뒤로 한 채 카풀 서비스 도입을 지지하는 데에는 편향된 설문조사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하나는 택시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언뜻 정당한 듯 보이는 두 이유 모두 과장되거나 왜곡된 측면이 없지 않다.

우선 택시에 대한 불만부터 보자. 불만의 주요 내용은 승차 거부와 불친절이다. 택시 이용자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지만 택시노동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모든 택시가 승차 거부를 일삼고 불친절로 일관하는 것도 아닌 데다 승차 거부는 윤리적인 측면보다 제도적인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택시는 공공성에 따른 제약은 큰 데 반해 그에 따른 지원이나 혜택은 거의 없다.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파업 같은 단체행동에는 제약이 크지만, 버스와 달리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는 거의 없다. '대중교통수단 지정'과 '운송수입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를 오랫동안 요구해왔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완전월급제의 시행 보류는 사납금제와 맞물려 승차 거부를 조장하는 제도적 배경이 됐다. 대부분의 택시회사는 일반적인 월급제 대신 사납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사납금제는 매일 운송수입의 일정액을 사납금으로 회사에 입금하면 월급으로 얼마가 나오고 여기에 사납금을 넘어서는 수입을 더해 월수입이 결정된다.

2교대를 하는 서울의 A 택시회사 사례를 알아본 결과, 1일 사납금은 주야평균 13만 6천 원, 월급은 세전 140만 원이었다. 또 지난 10월 24일 열린 서울시 택시요금 조정 관련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 택시기사의 평균 월수입은 217만 원, 일당으로 치면 9만 원 정도다(초과수입 포함, 24일 근무 기준). 이 때문에 단거리 운행으로는 사납금을 채우기 어렵다. 승차 거부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직업윤리의 결여와 직결시켜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는 이유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를 반대하는 카풀관련 비상대책위원회와 소속 택시 기사 등이 10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생존권 사수를 주장하고 있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를 반대하는 카풀관련 비상대책위원회와 소속 택시 기사 등이 10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생존권 사수를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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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4차 산업혁명 또는 공유경제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에도 모순이 있다. 정보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편리한 삶 대신 고용 감소와 생존권 위협을 비용으로 치러야 한다면? 또 새로운 기술이 부의 집중과 독점의 강화를 낳는다면 그것에 과연 공유경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최근 4차 산업혁명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당위라 할지라도 비용을 덜 치를 방법은 없을까? 또 노동자가 퇴출당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노동자에게도 유리한 길은 없을까?

5일 SK텔레콤이 승객의 위치 확인과 요금할인, 안전운행을 위한 버튼식 콜잡이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티맵택시 개편안을 내놨다. 회사 측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사와 승객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는데, 카풀앱에 대한 택시업계의 반발을 기화로 택시호출앱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의 생리상 SK텔레콤의 주장이 얼마나 실제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카카오가 독점하던 시장에 경쟁자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영할 일이다.

독점이 깨지면, 갑-을이 바뀐다

공급하는 자와 공급받는 자의 관계에서 소비자에 해당하는 공급받는 자는 기본적으로 갑의 지위를 갖지만, 독점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카카오가 택시호출앱을 독점하는 시장에서 택시노동자는 소비자이면서도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쟁자가 생기는 순간 택시노동자는 선택권을 가진 소비자로서 갑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 카카오의 독점시장에서는 택시노동자의 직업권을 침해해 신규시장을 만드는 것에 아무런 장애가 없지만, 경쟁자가 생기는 순간 경쟁참여자들은 승객뿐 아니라 택시노동자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따라서 독점시장이 경쟁시장으로 바뀌는 것은 독점시장에서 역전된 갑과 을의 지위가 재역전돼 정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택시 호출 시장 1위 카카오 추격에 나섰다. SK텔레콤은 5일 서울 중구 삼화빌딩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택시 호출 서비스인 '티맵 택시'(T map 택시)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이 택시 호출 시장 1위 카카오 추격에 나섰다. SK텔레콤은 5일 서울 중구 삼화빌딩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택시 호출 서비스인 "티맵 택시"(T map 택시)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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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카풀앱 출시를 발표하면서 택시노동자와 승객은 서로 갈등하며 선택을 강요당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카카오가 지배하는 독점시장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독점시장에서 을의 위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용자들이 그 같은 상황을 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정보통신기술 발전의 수혜자면서 동시에 피박탈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 편리함을 누린다면 반대편에는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이치다. 배달앱의 출시로 소비자는 편리해졌지만 자영업자는 새롭게 수수료 부담을 안게 됐고,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기와 주문앱으로 이용자는 편리해졌지만 수많은 알바생들이 퇴출되고 있다.

카풀앱 출시를 놓고 찬반을 묻는 것은 배달앱과 주문앱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의 보호와 알바생 고용 보장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얘기와 같다. 앱의 이용자가 자영업자나 알바생과 갈등관계가 아니듯이 승객과 택시노동자도 경쟁관계가 아니다. 카풀앱의 출시를 놓고 찬반을 묻는 것은 양측의 갈등을 조장해 신생기술로 인해 권리를 침범당하는 쪽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호도책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과 정보사회의 도래가 초래할 사회문제의 본질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정보통신회사와 그것을 이용하는 모든 을들의 대립 구도에서 찾아야 한다. 카카오 같은 회사는 새로운 편리함만을 선사하는 '시혜자'가 아니다. 어느 순간 권리의 박탈자로 변모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사용자들이 새로운 편리함에 도취돼 수혜자 위치에 매몰되는 순간, 또 다른 영역에서는 퇴출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정보사회는 끊임없이 인간을 대체할 기술을 개발할 것이고 누구라도 을의 처지에 놓여 생존권을 침해당할 수 있다. 정보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의 주도권을 기업에 주지 말고 을들이 가져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을과 을이 갈등하기보다 갑의 행세를 하는 기업들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또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고 기업인 갑들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을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 갑과 을의 관계는 역전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 글에 앞서 한겨레신문 10월 31일자 '왜냐면'란에 <택시, 억울하다> 칼럼을 게재했다.


태그:#택시, #카카오, #카풀 여론조사, #4차산업혁명, #정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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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는 역사, 석사는 행정, 박사는 정치학을 전공한 후 강의와 논문은 사회학 방면으로 하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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