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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2권 양장본 리커버 한정판
▲ <기사단장 죽이기> 1, 2권 양장본 리커버 한정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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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스케일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의 작품 스케일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커졌다. 대표작 <상실의 시대>처럼 무심한 듯 관조적이고, 들이대기보다는 한발짝 뒤에 서는 서술방식은 여전하지만, 주제의식이나 소재를 보면 더 이상 예전에 소박하고 범상하던 하루키가 아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1Q84>에서부터 확실해졌다고 느꼈는데, 그러한 경향성이 이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현현'(顯現)하고 있다. 이미 <기사단장 죽이기> 제1권의 제목부터가 '현현하는 이데아'다. 상실을 얘기하던 작가가 이젠 이상을 좇고 있다. 그리고 현재를 얘기하던 자가 이젠 아스카 시대와 제2차 세계 대전을 끌어들인다. 

심지어 판타지도 가미된다. 더군다나 이 소설에서 판타지스러운 요소들은 내용이 전개되는 핵심축으로 작용한다. 읽다 보면 흡사 환상 문학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대목들이 상당히 많다.
   
해답을 찾는 하루키
 
 Japanese writer Haruki Murakami received on 07 November 2014 in Berlin the Literature Award by the German newspaper “Welt”. .Photo: picture alliance / Robert Schlesinger
 무라카미 하루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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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는 평범한 이혼남이 기묘한 인물과 사건에 얽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미술학도였고, 지금은 초상화가다. 6년간 같이 살던 아내에게 어느 날 돌연 이혼을 통보받았고, 별다른 내색이나 대응 없이 아내를 집에 둔 채 훌쩍 출가한다.

잠시 방황 후에 도쿄로 돌아오고, 대학 때 동기였던 친구에게 부탁해 그 친구 아버지가 기거하던 집에 머물게 된다(이 친구의 아버지가 과거에 유명했던 일본화 화가다). 이때부터 하루키의 "이야기가 폭발한다". 상당히 부자인 것 같지만 정체는 묘연한 이웃을 만나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묘지와 구덩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데아'를 만난다.

기실 출판사가 홍보물에 "이야기가 폭발한다"고 썼기 때문에 앞서 이 문구를 인용한 것이지만, 제2권 중반까지는 그저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약 50개의 장(章)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하루키는 독자의 궁금증에 또 다른 궁금증을 더하고,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에 또 다른 미스터리를 가미한다.

성실하고 근성 있는 캐릭터로 유명한 하루키답게 무척 섬세하게 직조된 스토리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자칫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속도는 현저히 느린 편이다.
 
영화 <상실의 시대> 한 장면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원작이다
▲ 영화 <상실의 시대> 한 장면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원작이다
ⓒ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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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캐릭터는 어디로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현실에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혼, 비혼, 연인에 대한 배신, 가족의 죽음 등 각자 나름의 결핍과 상실감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결핍과 상실감을 겪는 인물들은 하루키 문학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특기할 점은 그 다음이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위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결핍과 상실감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고 애쓴다. 하루키가 변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다.

예전의 하루키 문학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보헤미안이었다. 물론 그들도 결핍과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이었지만, 그를 작위적으로 해결하려고 속칭 '용을 쓰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우울함을 방관하거나 방임했다. 하루키가 즐겨 표현하는 것처럼 음악들 제목에 빗대자면, <We can work it out>보다는 <Let it be>에 가까운 태도였다(그의 출세작 <상실의 시대>의 부제가 비틀스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었기에, 비틀즈의 다른 히트곡들로 비유해봤다).

그러나 <기사단장 죽이기>의 그들은 현재 자신을 '무엇인가 왜인지 모르게' 허탈하게 만드는 근원을 찾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하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는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예술혼을 불태우고, 누군가는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온갖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또 누군가는 이웃을 돕고 덩달아 자신이 유년기에 겪었던 트라우마도 극복하기 위해 과감히 저승의 세계로 잠입한다. 하루키 문학에 보헤미안 캐릭터들이 실종되고, 새로운 유형의 행동가들이 등장한 셈이다.

하루키는 이처럼 인물들이 놓인 부정적인 상황들을 '메타포'라고 통칭한다. 그리고 그 메타포를 넘어서서 각자가 더 나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 그래서 각자가 자신들의 '진짜 모습, 진짜 행복'을 깨닫게 되는 것을 두고 '이데아'라 표현한다.

제목이기도 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말은 메타포를 없애고 이데아를 추구하려는 방법, 혹은 과정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이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핵심 단어가 바로 '이데아, 메타포, 전환'이다.
 
스웨덴 한림원 공식 홈페이지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고 있는 기관
▲ 스웨덴 한림원 공식 홈페이지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고 있는 기관
ⓒ 스웨덴 한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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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하루키, 노벨상 받을 수 있을까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다. 그것도 매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비록 하루키 본인은 자신이 권위 있는 문학상 등에 전연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일단 아쉽게도 올해(2018년) 노벨 문학상 발표는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위원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얽히면서 다음 해로 연기되었다. 하루키 본인이 좋든 싫든 간에, 그가 과연 노벨상을 탈 것인지 한껏 기대하는 뭇 사람들의 관심도 일단 내년으로 미뤄졌다.

과연 한림원은 변화된 하루키의 문학세계에 어떠한 평가를 내릴까. 이제 더 이상 '상실'을 말하지 않고 '이상향'을 논하는 하루키의 의지는 선정위원들마저 감화시킬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그의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면, 그는 과거의 스타일을 '죽이고' 조금씩 새로운 세계로 자신의 펜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의 펜 끝이 향하고 있는 이상향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다음 작품을 내심 기대해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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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The 나아지는 글쓰기》 저자 / 글쓰기 면접 《크리티카 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