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국립극단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극작가 J.T.로저스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국립극단

 
모나 율과 티에유 로드-라르센 부부는 대학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다. 당시 모나는 학생이었고, 티에유는 국제관계에서 포괄주의 모델을 대신할 점진주의 모델의 적용이 시급하다고 역설하는 교수였다. 결혼 후 모나는 노르웨이 외무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고, 티에유는 응용사회과학연구소 소장으로서 연구를 이어간다.
 
두 사람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개인적인 동기였다. 그들이 가자지구에서 마주한 소년과 소녀, 겨누어진 총구, 그 아이들의 표정, 눈빛. 모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밀평화회담을 주선하자는 티에유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협상 테이블은 지지부진한 지 오래였다. 모나는 열성적인 티에유가 자칫 지나치게 개입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한다. 베를린 장벽조차도 무너지는 시대였으니까.
 
모나와 티에유는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선 요시 베일린 이스라엘 외무부차관과 아흐메드 쿠리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재무장관에게 은밀히 접촉해 회담 의사를 타진한다. 다행히 노르웨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으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노르웨이 외무부는 공식적으로 이 회담에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정도 파급력의 회담을 전혀 모른 척하고 민간 연구소에만 맡길 수도 없다. 모나는 한때 대학에서 자신과 사귀었고, 지금은 자신의 상사인 외무부차관 얀을 미리 설득해 묵시적 동의를 받아낸다. 노르웨이는 작은 나라니까.
 
난로의 불이 꺼지지 않는 따뜻한 장소, 맛있는 음식(특히 와플)과 술, 친구 사이가 되어 나누는 사담들… 회담 장소가 된 연구소에는 평화회담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졌다. 그러나 피와 증오로 얼룩져 온 수십 년의 역사가 단기간에 정리될 수 있을 리 없다. 회담장 밖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는 듯하던 평화회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주선자'인 모나와 티에유가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 두 나라 사이의 평화는 결국 꿈에 불과한 이야기였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국제외교사에 영원히 기록될 1993년 '오슬로 협정'이 결국 체결되었음을. 연극 <오슬로>는 25년 전 노르웨이에서 '오슬로 협정'이 탄생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노르웨이 외교관 모나 율이다. 다른 누구가 아닌 전미도가 소화하기에 더욱 더.
 
전미도와 모나 율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다시 연극으로 전미도 배우를 인터뷰한 건 스타라이트 뮤지컬 페스티벌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10월 22일이었다. 본인 스스로는 연달아 작품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연극이 오랜만인 것을 잘 체감하지 못했다는 전미도. 연극과 뮤지컬 모두를 오가며 작품 하나하나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다만, 페스티벌은 "노래에 자신이 없어서" 무섭단다. 연기 없이 노래만 하는 건 여전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 국립극단

 
제1회(2017) 그리고 제2회(2018)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배우 전미도. 최근 필모그래피들이 모두 뮤지컬이기는 했지만, 전미도는 극단 맨씨어터 작업과 더불어 연극 무대도 놓치지 않아온 배우이다. 2016년 <비: BEA> 이후로는 약 2년 만에 돌아온 셈. 다만, <닥터 지바고> 이후 선택한 작품이 <번지점프를 하다>도 아니고 <어쩌면 해피엔딩>도 아닌 <오슬로>라니 조금 의외이기는 했다.
 
"이런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실 처음에는 너무 자신이 없었어요. 텍스트의 영향을 그리고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위기의 상황을 맞을 때마다 캐릭터가 탁탁탁 해결해서 넘어가잖아요. 관객들께서 다행히 캐릭터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작가가 이 여자를 너무 훌륭하게 써놨어요. (웃음) 모나는 정말 현명하고 멋있는 여자에요."
 
<오슬로> 연습실 공개 당시 전미도는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답한 바 있다. 다종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온 전미도이지만, 이지적이고 냉철한 '모나 율'은 확실히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소화했던 인물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전미도는 "평소의 저는 허술하다"라며 인간 전미도와 극 중 인물 모나 율의 간극이 꽤 컸음을 설명했다. "완전 안 닮아서 진짜 어려웠다"고.
 
"일단 이 여자는 그릇이 다르잖아요. 전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서 저밖에 모르거든요. 그런데 모나라는 인물은 베이스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자신과 상관도 없는 나라의 아이들 눈동자를 보고 인류애를 발휘하잖아요. 이 돈키호테 같은 남편이 회담을 하겠다고 했을 때, 모나 자신도 일이 잘못되면 책임져야 하는 걸 알고도 지지한 것 같아요. 그걸 이해하기까지 어려웠어요.
 
두 번째로 다른 건,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해내는 방법이었어요. 이전에 했던 캐릭터들에는 제가 평소에도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들을 곳곳에 녹였거든요. 그런데 모나는 그러면 안 되는 여자라서… (웃음)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저와 정반대거든요. 저는 원래 화를 내면 약간 시니컬하면서 신경질적이거든요. 실제로 처음 연습 때는 그렇게 연기했어요.
 
티에유가 '모나가 말해줬다'고 전화로 아흐메드에게 거짓말할 때, 모나가 처음에 화를 안 내잖아요. 속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어요. 나를 두고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저라면 '미친 거 아니야?'하면서 막 노발대발 할 것 같은데…. 모나는 그 순간에도 티에유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를 묻고, '그렇지만 넌 더 신중했었어야 해'라고 이성적으로 한 번 더 생각하잖아요. 제가 살면서 감정을 표현해온 방식이랑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하니까 그걸 찾아가기까지가 어려웠죠."

 
주인공이 아닌... 그러나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전미도가 선택해온 인물들 "제가 작품을 선택하면서 그림으로 존재하는 캐릭터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냥 의미 없이 연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전부터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연기할 캐릭터가 도드라지는 성격이 없으면 매력을 잘 못 느껴요. 그래서 그런 성향의 인물들을 선택해온 거 아닌가 싶어요." ⓒ 국립극단

 
지성과 신념으로 무장한 모나는 분명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슬로>를 페미니즘적인 작품이라고 보기는 다소 어렵다. 실제 역사를 각색한 작품이다 보니, 극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남성이다. 서사 내 갈등의 중심 역시 남성 인물들 쪽에 찍혀 있다. 외교적 수사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남성성을 추켜세우는 대사들도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모나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모나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수차례 상찬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화번호부"로 대변되는 모나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티에유가 좌충우돌하며 활약할 때, 모나는 중립적인 주선자이자 극의 해설자로 기능하며 이야기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더 아쉽다. 모나처럼 매력적인 캐릭터가 조금 더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극 안에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작가가 해설을 위해서 모나를 기능적으로 약간 떨어트려 놓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나는 원래 중립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너무 많이 개입하는 순간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들이 다 틀어져버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들을 화해시키는 게 목적인데, 혹여나 조금이라도 빈정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하면 오히려 더 분쟁을 일으킬 수 있잖아요. 단순히 개인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 간의 문제다보니까 중립성을 강조하고 남편한테도 그걸 요구하죠.
 
미국이 그렇게 편향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까 회의를 하더라도 한쪽에서는 늘 불만을 가지고 있고, 솔직하게 얘기를 꺼내기도 힘들고… 모나가 봤을 때, 미국의 회담은 공정하지 않아서 진전이 없는 거거든요. 그리고 티에유가 처음 제안한 모델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양측을 만나게 해주는 장소나 필요한 무언가는 마련해주지만, 실질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 그들뿐이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모나와 티에유는 협상실 안에 들어가질 않잖아요, 당사자들끼리만의 대화를 통해서 협상의 결과를 이루어낸다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모나는 그걸 잘 알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모나가 후반에 가서는 무너지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총도 사용하라고 하고, 자기 전화번호부를 이용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외교관으로서가 아니라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서 호통치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중반까지 그런 입장을 고수하다가 일이 점점 더 진행되면서 심적인 변화를 겪는 부분들이 관객들께는 더 크게 와 닿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렇게 고생한 끝에 평화회담은 오슬로 협정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백악관 앞에서 각국 정상이 함께 사인하는 역사적인 현장. 티에유는 자신이 앉을 자리가 어디인지 모른다. 가운데는 아니어도, 자신을 위한 자리가 어딘가에 분명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하지만 모나는 우리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저 뒤에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흥분하며 억울해하는 티에유에게 모나는, 티에유가 처음 이스라엘 측 대변인으로 지명되어 온 교수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당신은 주인공이 아니야"라고.
 
"똑같은 대사를 티에유가 허시펠트랑 푼닥 교수에게 하잖아요. 그들이 뭐 대단한 권위가 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도 목숨을 걸고 왔던 거란 말이죠. 어쨌든 이 사람들 덕분에 평화회담이 출발할 수 있었던 건데, 회담이 진전되면서 점점 본인들의 자리에서 밀려나잖아요.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 허시펠트가 화를 내죠. 그때 티에유가 당신은 주인공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모나가 나중에 그걸 인용해서 티에유에게 돌려주는 거죠. 큰 그림은 따로 그려져 있던 거니까요.
 
그 대사가 원래 다르게 되어 있었어요. '당신이라서 그런 건 아니야'였죠. 도대체 이 여자가 이 말을 왜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이 여자 자체를 알 수가 없었죠. 이 대사가 해결이 안 되니까 이 여자를 관통하는 선이 뭔지를 모르겠어서 계속 헤맸거든요. 처음에는 '이 여자가 진짜 야망가아냐?' 약간 '티에유 너는 권력 안 좋아하잖아. 너는 권좌에 관심 없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나는 야망가니까, 나는 혼자 갈 거야' 이런 식으로 연기노선을 잡았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대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 선생님이 이 대사가 '앞에 티에유가 허시펠트한테 하는 대사랑 똑같은 말로 되어있다. 이게 똑같은 뉘앙스의 말인 것 같다'고 하면서 그 말로 바뀌었어요. 아, 이렇게까지 생각이 깊은 여자였구나. 정말 대단한 여자였구나.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여기에 도달한 거죠. 티에유를 지지하다가, 같이 가게 되다가, 함께 결과를 만든 뒤에는 '나'가 아니라 '대의'를 생각하는."
 

실패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오슬로>를 통해 전미도가 얻은 것 "술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웃음) 선배들이 술을 진짜 잘 드셔가지고요. 저희 팀 선배들이 너무 좋아요. (웃음) 사실 <오슬로>를 선택한 게 ‘배우고 싶어서’ 온 것도 있거든요. 저보다 선배들이 있는 곳에서 연기하고 싶었어요. ‘배워야지’라는 생각으로 왔는데 선배들 덕에 정말 많이 배웠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캐릭터를 경험해봤다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됐고요." ⓒ 국립극단

 
국립극단은 올해 라인업을 정리하면서, 당초 <오슬로>가 아닌 다른 작품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남북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하자 이성열 예술감독은 <오슬로>를 라인업에 올리기로 했다. 자신이 국립극단으로 와서 처음으로 맡는 연출작이기도 했다.
 
국립극단에서는 <오슬로>를 홍보하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많이 강조했다. 실제로 작품을 본 평단과 관객을 막론하고 자연스레 지금의 우리 처지를 대입해서 보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동시대성을 갖는 건 연극의 큰 힘 중 하나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전미도는 "그렇지 않다"고 즉답을 내놓았다.
 
"오히려 그래서 연극을 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연출께서 아주 직접적으로 영상을 넣으면서 표현하려고 하셨는데 걷어내신 이유가, 우리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보시는 관객들께서 빗대어서 생각하시잖아요. 이 작품이 분명 지금 시국과 맞닿는 지점이 있으니까요.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남북관계이고요. 이런 걸 민족성이라고 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당연하게 지금의 남북문제를 생각하시는 것일 테고요.
 
작품 자체는 보시는 분들에 따라서 다르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각 지역이 겪고 있는 갈등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가족 간의, 개인이 겪는 갈등의 문제일 수도 있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모든 갈등들에 대해, 이 이야기를 보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인터뷰를 원작자가 보내왔더라고요. 큰 덩어리는 남북문제이겠지만, 그 외에도 다양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인 것 같아요, 만드는 사람들보다."

 
<오슬로>는 모나와 티에유가 당시 있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연극의 마지막, 실제 역사가 이후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누군가는 암살당하고, 누구는 살아남았다. 정권은 실각하고, 협정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으며, 연속된 위기에 또다시 좌초되고 만다. 2018년 현시점에서 오슬로 협정은 유명무실화되고 말았다. 공공연하게 '폐기'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모나와 티에유의 노력이 마치 무의미했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오슬로 협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회담 중 술자리에서 키신저와 마오쩌둥이 나눈 이야기에 대해 나오잖아요. 키신저가 마오쩌둥한테 '프랑스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마오쩌둥이 '아직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는 이르다'고 하잖아요. 그 말대로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작가가 굳이 거기에 왜 키신저와 마오쩌둥 이야기를 넣었을까요. 바로 눈앞에서 봤을 때는, 실질적인 결과로 봤을 때는 실패했다고 보이기 쉽죠. 테러도 다시 일어나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모를 일이죠.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작가는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연극의 힘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오슬로>를 하며 힘든 점 "몸이 힘들어요. 저는 왜 체력적으로 힘든 연극만 하는지…. <메피스토> 때는 시간은 짧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니까 힘들었고, <비: BEA>도 마찬가지였고…. 특별한 관리는 안 하고, 술을 자제합니다. (웃음) 평소에 잘 쉬고, 공연 들어가기 전에 몸 열심히 푸는 정도? 아, 비타민 잘 챙겨먹고. 여러가지 약들로 버텨요. (웃음)" ⓒ 국립극단

 
2000년 6월 15일 그리고 2007년 10월 4일, 남과 북의 정상은 함께 만나 웃으며 악수했고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됐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들이 연이어졌다. 그러면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은 실패한 선언일까. 의미가 없었던 걸까. 상황은 또다시 변했고, 2018년의 4‧27 판문점선언을 이루는 기초가 됐다.
 
인류의 역사는 미시적 퇴보와 진보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그 무수한 퇴보들을 뛰어넘는, 역사 전체를 진보의 방향으로 굴려온 추동력들이 있다. 설사 실패로 귀결될지라도 의지를 갖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 있다.
 
연극 <오슬로>가 훌륭한 작품인 이유는, 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만도 아니고, 2018년 한국에서의 높은 동시대성 때문만도 아니다. 꿈을 꿈으로 두지 않고 가능한 일로 만들어왔던 사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사 뒷걸음질하여 다시 어두운 길을 걸어가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괜찮다. 한 번 걸어봤으니까, 그 경험을 밑거름 삼아 인간은 더 멀리 걸어나갈 수 있다.
 
"답이 정해져있지 않은 연극을 참 많이 해온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정극을 했던 게 <신의 아그네스>였거든요. <신의 아그네스>는 신의 존재와 믿음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답이 없어요. <메피스토>는 신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역시 답이 없어요. 딱 구분 지을 수가 없어요. 50대 50으로 나눠지죠, <신의 아그네스>랑 똑같이. <비: BEA>는 안락사에 관한 극이거든요. 마찬가지예요. 안락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걸 하나로 정의할 수 없거든요.
 
<오슬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이 일을 계속 해야 돼, 말아야 돼?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해서 '와'하며 좋아했는데, 막상 그 뒤에 계속해서 테러는 일어나고, 이 일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암살당하고… 모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살리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또 다른 인명 피해를 낳았으니 '글세'하며 생각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아요. '우리가 한 일이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래도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질문들. 그래서 <오슬로>는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화두를 던지니까요.
 
저는 그게 참 좋아요. 같이 보러 온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다를 수 있잖아요. 다름으로 인해서 대화가 생기고요.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을 수 있잖아요. 이 연극을 보고 각자 생각한 의견을,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상대 의견을 듣고 또 혼자 생각하며 정리해보고… 한 번쯤 그런 시간을 갖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런 연극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비밀평화협정에 숨겨진 뒷이야기 <오슬로>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오슬로>는 J.T.로저스 작가의 작품으로 2017년 영미권에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최근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뛰어난 완성도와 시대성이 만나며 매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명동예술극장 그리고 <오슬로> <오슬로>는 오는 4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명동예술극장'하면 장소가 가지고 있는 권위가 있다. "아무래도 더 부담되고 책임감도 느껴진다"는 전미도도 "명동예술극장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게 있잖나"라고 말했다. <오슬로>는 명동이라는 공간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그 여정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 ⓒ 국립극단

모나율 전미도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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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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