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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동네 슈퍼마켓 아들이었다. 그 다음은 떡볶이집 딸. 먹고 또 먹어도 쌓여있는 음식이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보리고개를 말할 시절을 보내지도 않았고 딱히 가난했던 것도 아니지만, 우리 삼남매의 먹성은 늘 엄마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배가 부른 것도 잠시뿐. 눈만 마주치면 밥, 밥 하는 삼남매에게 오죽하면 엄마가 "니들은 내가 밥으로 보이니?" 퉁을 주실 만큼. 

먹다가 남긴 과자를 집에 가서 먹겠다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먹다가 남기다니. 그리고 그 남은 과자가 그대로 있다니. 우리집에선 한 번 놓친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손에서 놓은 빵조각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언니나 동생의 피와 살이 되었겠거니.

입맛은 뒷전이었다. 취향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제와 엄마가 내 입맛을 하나도 모른다 싶을 땐 괜히 서운한 척 하지만,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불호 같은 것은 튀어나올 여지가 없었다. 삼남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스피드. 빠른 자만이 음식을 쟁취했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미더덕을 오독오독 씹어먹고, 양념게장을 사탕 먹듯 해치우는 꼬맹이들이었다. 먹성이 좋지 않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동네 어른들은 우리를 꽤나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우리를 엄마는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셨다. 

삼남매 모두 편식은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언니는 고기를, 동생은 해산물을 유난히 좋아했다. 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맏딸과 귀한 아들 사이에 콕 끼인 둘째딸로서, 무엇이든 잘 먹는다는 찬사라도 놓칠 수 없었다. 언니가 닭볶음탕의 고기에 집중할 때, 나는 감자와 당근을 퍼올리며 엄마의 칭찬을 기다렸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서야 내게 취향이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입맛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나는 뚜렷하게 좋아하는 음식은 물론, 좋아하는 계절도, 좋아하는 색깔도 딱히 말할 만한 게 없었다.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에겐 뚜렷한 기호가 있었다. 이것은 먹을 수 있고, 저것은 먹을 수 없는 명확한 호오. 부끄럽게도, 나는 어린 꼰대였음이 분명하다. 먹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먹기 '싫은' 것이 아니냐고 몇 번인가 따져 물은 기억이 있다.

내 자격없는 트집이 질투였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취향이 있다는 것, 취향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선망과 질투.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고,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싫어하는 옷이 있는 친구들을 나는 부러워했다. 

내 선택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도 못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도 못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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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어쩌다 보니 채식을 결심하게 됐다. 결심하고 나니,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보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공표가 내겐 더한 용기를 요구했다. 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것이, 내겐 심장 두근거리는 커밍아웃이었다. 

예쁨 받기 위해, 혹은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분위기를 파악하고 무리의 일부로 섞이는 것이 익숙한 내게, 사람들 앞에서 나의 취향과 선호를 당당히 밝히는 것은 적잖이 어색하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채식을 시작한 뒤 첫 가족모임 때, 엄마가 공들여 준비하신 산해진미 앞에서 나는 마음을 졸였다. 엄마의 성의를 저버리는 것 같아 미안했고, 나의 선택이 공격 받을까 무서웠다. 그 날,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놀라지 마시라.

아무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도 못했다. 몇 달 뒤 내가 말을 꺼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채식을 시작했고, 그것은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았다. 나는 대체 왜 용기를 끌어 모았던가. 

그 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전보다 수월하게 채식을 밝히게 되었다. 조금 얄궂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선택을 기분좋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실상 내게만 중요할 뿐,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오직 섭식의 변화만 꾀했을 뿐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채식을 시작한 뒤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용기였다는 것이 특히 그렇다. 스스로 선택할 용기, 내 선택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내 선택, 내가 책임지면 그만이었다.

생뚱맞은 생각도 해본다. 내 귀에도 들릴 만큼 내 험담을 하던 동료, 농담이랍시고 성희롱을 하던 직장 상사에게, 당당히 다가가 시정을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이 아름답게 해결되었으리라 생각진 않지만, 어차피 낼 사직서였다면 말이나 한 번 해봤으면 뭐 어떻단 말인가. 

나의 채식을 알린 뒤부터, 자신도 채식을 하고 싶지만 사회 생활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혹시나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한 번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의외로 많은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내겐 그랬다.

용기란 꼭 대단한 모험을 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취향을 말하는 사소한 일상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그 답은 영 알 수 없겠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을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됐다. 이토록 사소하면서도 획기적인 변화라니, 즐거울 따름이다.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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