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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쓴 책은 <우리, 독립청춘>이다. 2016년 11월에 출간되었다. 군산의 동네서점 한길문고는 동네작가의 탄생을 열렬하게 축하해 주었다.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책을 가득 쌓아놓고 '군산 청년들의 리얼 다큐멘터리'라는 앙증맞은 홍보용 솟대도 세워놓았다.

그 감격적인 순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만화책 <중쇄를 찍자>에 나오는 젊은 작가 오오츠카 슛이 먼저 했다. 처음으로 낸 단행본이 서점 판매대에 진열된 것을 본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난 이 광경을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정말... 이런 멋진 선물은 세상에 없어!"

작가가 쓴 글이 한 권의 책이 되려면 몇 달이나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손도 거쳐야 한다. 그렇게 공들여서 만들어진 책은 대접 받아 마땅하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식구들이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눕는 것처럼, 서점에 도착한 책은 판매대에 누워야 한다.

독자들도 표지를 드러내고서 누워 있는 책에 더 매력을 느낀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얼어붙은 듯 서가에 꽂혀있는 책은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한정된 책만이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을 얻고 판매대에 누울 수 있다. 
 
두 번째로 쓴 책 <소년의 레시피>. 한길문고에서는 오자마자 베스트셀러였다. 누워있는 책은 아름다워서 울 뻔 했다.
 두 번째로 쓴 책 <소년의 레시피>. 한길문고에서는 오자마자 베스트셀러였다. 누워있는 책은 아름다워서 울 뻔 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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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번째로 쓴 책 <소년의 레시피>는 2017년 6월에 출간되었다. 한길문고에는 도착하자마자 베스트셀러였다. <문재인의 운명> 특별판과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은 너무 근사했다. 그런데 내 입안은 마르고 코끝은 시큰해졌다.

2018년 봄, 세 번째 책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출간했다. 군산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어필할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런데도 5월에는 한길문고에서 많이 팔린 책 11위, 6월에는 한길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를 했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가 20위인데 말이다.

동네 작가를 대접해주는 동네책방

한길문고와 군산의 독자들은 한낱 동네작가에게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걸까. 시간을 돌려서 1987년으로 가야 한다. 그때 한길문고의 이름은 녹두서점. 중·고등학생들은, 시위에 나온 대학생들은, 젊은 직장인들은 새로 생긴 서점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태생부터 사랑받는 서점이었다.

녹두서점에서 한길문고로 이름을 바꾸었던 서점은 2003년에 나운동으로 옮겼다. 아파트 단지를 낀 주거지역에 자리 잡은 300평 규모의 한길문고는 새로운 일을 도모했다. 작가 강연회! 시민들은 책에서만 봤던 작가들을 동네서점에서 직접 만나게 됐다. 장소가 없어서 못 했던 여러 가지 취미활동도 한길문고에 와서 했다.
 
2012년 8월 13일 한길문고. 시민들은 수해를 입은 동네서점을 내 친구의 일처럼 여겼다. 하루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 넘게 찾아와 주었다.
 2012년 8월 13일 한길문고. 시민들은 수해를 입은 동네서점을 내 친구의 일처럼 여겼다. 하루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 넘게 찾아와 주었다.
ⓒ 군산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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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문고는 상점인가, 상점 이상의 그 무엇인가?"

주차해놓은 자동차가 둥둥 떠다닐 만큼 폭우가 쏟아졌던 2012년 8월 13일 이후, 군산 시민들이 제각각 던진 질문이었다. 10만 권의 책과 함께 완전히 물에 잠겨버린 한길문고를, 내 친구나 내 이웃에게 닥친 일처럼 여겼다.

하루에 100여 명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 넘게 한길문고로 모여들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 오는 사람들은 음식을 보내주기도 했다. 온갖 오폐물이 뒤엉킨 서점을 말끔히 치워준 시민들 덕분에 한길문고는 다시 문을 열었다. 더 많은 공간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내주었다.

"지영!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에서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이 있거든. 우리 함께 해볼까?"

한길문고 한켠에서 영어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내게 문지영 대표(학교 선배라서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가 말했다.

"그게 뭔데요?"
"한길문고에서 상주하는 작가가 되는 거야. 월급도 나와. 4대 보험도 되고."
"올~~ (웃음)지금까지 4대 보험 되는 직장 한 번도 안 다녀봤잖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줄곧 글쓰기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나는 밥벌이를 하는 중에도 으하하하 웃고는 했다. 돈 버는 일인데도 지겹지 않았다. 아이 둘을 낳아서 키우고, 책을 사서 읽고, 적금을 붓고, 때로는 먼 여행을 가는 것도, 일 덕분이라고 여겼다.
 
 
ⓒ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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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이었을 거다. 내 밥벌이에 여러 개의 실금이 간 게 또렷하게 보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글쓰기를 하러 온 학생들. 반짝반짝 빛나야 할 눈빛은 시들어 있었다. 수업시간에 1분이라도 틈이 생기면 다들 책상에 엎드렸다. 영어학원 숙제, 수학학원 숙제 걱정을 했다.

내 어깨는 처졌다. 일하는 게 점점 힘들게 느껴져서 주 3일 근무만 했다. 대신, 10년 넘게 <오마이뉴스>에 써왔던 글쓰기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자꾸자꾸 쓸 거리가 생겨나서 여행한 곳이나 사는 이야기에서 벗어났다. 그랬더니 책 세 권을 쓴 저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 결정했다! 밥벌이는 딱 올해까지만 하자고. 뭔가를 이루지 못 하더라도, 내 글을 쓰면서 2~3년을 보내보자고.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싶었다. 바로 그때에 서점 상주작가라는 일이 다가왔다. 손을 뻗어서 이 매력적인 일을 붙잡았다.

군산 동네서점 문학코디네이터가 되다
 
한길문고 덕분에 시민들은 책을 쓴 작가들을 직접 만나게 됐다. 그 전에 군산에는 작가 강연회 문화가 거의 없었다.
 한길문고 덕분에 시민들은 책을 쓴 작가들을 직접 만나게 됐다. 그 전에 군산에는 작가 강연회 문화가 거의 없었다.
ⓒ 군산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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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곁을 내주는 한길문고.
 시민들에게 곁을 내주는 한길문고.
ⓒ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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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문고는 문학거점서점으로 선정되었다. 작가 강연회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군산의 작은서점인 예스트서점, 우리문고와 힘을 합쳐서 다양한 문학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상주작가인 나는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은서점을 지원한다. 문학 코디네이터 역할이다.

"작가가 군산에 산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작가는 서울 같은 데만 사는 줄 알았죠."

며칠 전에 군산고등학교로 강연하러 가서 들은 말이다. 글 쓰는 작가를 군산에서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니까. 그래서 더 긍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이 프로젝트는 작은서점 두 곳에 각각 14번의 작가 강연을 지원한다. '우리 동네서점에 작가가 떴다! 문학작가와 작은서점을 지원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군산시민의 독서 자기장을 더 세게 만들 수도 있겠다.

10월 17일 수요일, 나는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 김우섭 점장과 같이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연수에 참여했다. 거점서점 대표들, 작은서점 대표들, 15명의 상주작가들이 전국에서 왔다. 한국 작가회의 사무총장 한창훈 소설가는 인사말 겸 짧은 당부를 했다.

"지구역사상 처음 있는 사업, 어디로 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떤 것이든 해도 됩니다.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사업을 하세요."

본격적인 프로젝트는 11월부터 한다. 그렇지만 나는 '출근 연습'을 하고 있다. 한길문고에서 글을 쓰다가 온다. 어제는 어청도 분교에서 2시간 40분 동안 배를 타고 온 어린이 일곱 명을 만났다. 글 속에 사는 '좋은 놈'과 '나쁜 놈'을 알려주고 함께 글을 써 봤다.

그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쓴 작가를 만난 곳은 군산 한길문고다. 지금 한길문고에는 상주작가가 있다.
 
10월 26일 한길문고 심야책방. 독자가 있고, 맛있는 전이 있고, 전을 부쳐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고. 흐뭇한 밤이었다.
 10월 26일 한길문고 심야책방. 독자가 있고, 맛있는 전이 있고, 전을 부쳐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고. 흐뭇한 밤이었다.
ⓒ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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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점 상주작가, #군산 한길문고, #작은서점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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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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