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익산 어느 도서관에 강의가 있어 갔었는데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책이 가득 든 내 천가방을 보고는 "우리 집 애들이 책을 좀 봐야하는데 게임만 한다"고 했다. 기사님은 책 보시냐고 했더니 집에 가면 씻기도 바쁘고 책 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내 책을 드릴 테니 택시 값을 제하자고 농담을 했더니 정색을 하며 안 된다고 해서 그냥 한 권 꺼내 주면서 아빠가 책을 보시면 아이들도 책을 보지 않겠냐고 했다.

<최제우, 용천검을 들다(김용휘, 토토북)>는 자식들에게 권하기 좋은 책이다. 아니, 어른들이 자식 앞에서 책 읽는 본을 보이기에 좋은 책이다. 20여년을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했던 저자가 청소년들에게 수운 최제우의 삶과 인간됨을 전하고자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책이라서다. 동학을 피 흘린 혁명이나 종교의 하나로만 알고 있을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줄 책으로 보인다.

가상의 상황 설정부터 재미있다. 수운이 1864년에 대구 감영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탈옥을 하여 1894년 동학혁명 때 결국 딸 '설'이의 품에 안겨 숨지기까지 필부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큰 뜻을 품고서 결혼도 하고 임신한 아내 곁에서 태교도 한다.
 
책 표지
▲ 책 표지 책 표지
ⓒ 토토북

관련사진보기

 
'산부가 잉어를 고아 먹으면 아이 몸이 자라는 데야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생선과 고기는 기운이 탁해서 오곡이나 직접 기른 신선한 식물식을 하는 게 좋다'고 하는 식이다. 고기 먹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화내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부부의 태교 과정에 대화체로 나온다.

14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각 장 뒤에는 각주를 달아 수운의 사상과 경전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수운이 탈옥에 성공한 직후부터 경상도 청도에 숨어 살면서 농사를 짓고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칼날 같은 추적을 피해 전라도 고창으로 옮기는 장면은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삶을 연상케 한다. 동학사상을 소설에 담고자 하는 구성으로 보인다.

미나모토라는 일본 사무라이 앞에서 "내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탐욕을 베고 하늘의 기운을 받기 위한 것이오."라고 일갈하며 칼날이 없는 무딘 칼로 '지기금지원위대강'(하늘의 지극한 기운을 지금 크게 내려주소서-저자 주)이라는 주문을 외면서 검무를 춘다. 이 칼이 용천검이다.

'검' 대신에 내 지식, 내 학업, 내 성공을 넣어도 될 것이다. 수학과 영어 점수가 불의를 베고 백성을 살리는 칼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담긴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립니다.


최제우, 용천검을 들다

김용휘 지음, 탐(2018)


태그:#청소년, #최제우, #김용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