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생경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의 선율'이 바이올린의 몸체를 따라 화려한 클럽 무대 위에서 울려 퍼졌다. 그 3분 가까운 시간 동안 객석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지난 2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클럽 옥타곤에서 아주 특별한 클래식 콘서트가 열렸다. 클럽에서 클래식 음악이라니 조금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공연은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클래식 최고 레이블인 '도이치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DG)'이 전 세계 클럽이 협업해 진행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대중화 프로젝트다.

'옐로우 라운지(Yellow Lounge)' 프로젝트는 딱딱한 무대나 좌석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보다 쉽게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콘서트로 2004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2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개최했으며, 옐로우 라운지의 15번째 무대인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와 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이 함께했다. 올해는 특별히 도이치 그라모폰의 설립 120주년을 기념해 자동차 브랜드 폭스바겐이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클럽 옥타곤에서 펼쳐진 클래식 콘서트 옐로우 라운지

클럽 옥타곤에서 펼쳐진 클래식 콘서트 옐로우 라운지 ⓒ 유니버설 뮤직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클럽 옥타곤 입구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즐비했다. 무료 초청으로 이뤄진 공연에는 남녀노소 불문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월요일 저녁부터 클럽에 줄을 선 모습에 행인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며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클럽 내부는 여느 금요일밤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클럽 옥타곤 소속 DJ들이 디제잉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띄웠고, 가벼운 맥주나 칵테일을 손에 쥔 관객들이 무대를 둘러싸고 리듬에 몸을 맡겼다. 일부 중년층 관객들은 양복 차림으로 테이블 좌석에 모여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담소를 나눴다.
 
이윽고 총천연색의 클럽 조명 아래 파란 드레스를 압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등장했다. 이번 공연에는 본래 프랑스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가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대신해 무대를 꾸렸다. 에스더 유(24)는 한국계 최초로 'BBC 선정 신세대 예술인(BBC New Generation Artist)'에 뽑힌 촉방받는 젊은 피아니스트다.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BC 프롬스 무대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영국 영화 <체실 비치에서> OST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이날 에스더 유의 공연은 클래식 클럽 파티라는 콘셉트에 맞춰 다채로운 장르를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는 실험적 무대에 가까웠다. 차이코프스키의 'Danse Russe'로 공연의 막을 연 에스더 유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를 이어서 연주하며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선보였다. 한국어와 영어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에는 최근 그가 OST에 참여한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수록곡인 'Date on the river'와 'Solemn love'를 연주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중국 민요 '유양강(Liuyang River)'과 우리 민요 '밀양 아리랑'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주며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다.
 
에스더 유의 무대가 끝나고 2부는 이스라엘 출신 만돌린 연주자 아비 아비탈(40)의 앙상블 협연으로 꾸려졌다. 아비 아비탈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모험적인 연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뮤지션이다. 1978년 이스라엘 남부 도시 베르셰바에서 태어난 아비탈은 8세부터 만돌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클레즈머, 바로크, 현대 클래식 음악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다루는 다양한 음반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앨범에서는 자신이 직접 편곡한 바흐의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싣기도 했으며 지난해 발매한 두 번째 앨범 < Between Worlds >에서는 에른스트 블로흐와 데 파야부터 불가리아 민속 음악까지 포용하는 실내악 음악을 소개한 바 있다.
  
이날 아비 아비탈은 국내 유수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과 함께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D단조(Concerto in D minor, Allegro)'를 만돌린 버전으로 각색한 특별한 연주로 2부의 막을 올렸다. 이어서 비발디의 '류트 협주곡 D장조 RV 93(Concerto For Lute In D Major RV 93)'이 흘러나왔고 클럽 옥타곤은 바로크 시대 클래식 음악의 낭만으로 물드는 듯했다.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아비 아비탈은 세계 각국의 포크 뮤직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들려줬다. 작곡가 술칸 신차제의 '여섯 개의 미니어처(6 miniatures)'를 통해 조지아 포크 뮤직의 이국적 매력을 선사하는가 하면, 우리 민요 '아리랑'을 만돌린의 구슬픈 음색으로 재해석했다. 앵콜곡으로 불가리아 민속음악인 부치미스(Bucimis)를 솔로로 연주하며 놀랍도록 힘이 넘치는 스트로킹과 화려한 주법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공연이 끝난 뒤 클럽 옥타곤은 마치 한 가을밤의 꿈에서 깨어난 듯 일상적인 클럽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디제잉 음악이 귓가를 때렸다.

이날 공연에 참석한 영국인 존 킹(28)씨는 "아티스트들의 연주 실력도 무척 탁월했지만 공연 자체가 클래식 공연장이 아닌 생소한 장소에서 이뤄져 보다 특별하게 느껴졌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클래식 음악이 한층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한편, 도이치 그라모폰은 120주년을 맞아 옐로우 라운지 프로젝트와 더불어 베이징, 베를린, 서울, 홍콩, 도쿄 등 세계 각 도시에서 120주년 갈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오는 12월 6일과 7일 오후 8시, 정명훈의 지휘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프 무터의 갈라 콘서트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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