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뱀으로 변하다가 영영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되는 내기니 역의 수현.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뱀으로 변하다가 영영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되는 내기니 역의 수현. ⓒ 문화창고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아래 '신비한 동물사전2')의 예고편이 뉴욕에서 공개됐을 때 팬들은 환호했다. 전편에 이어 더욱 풍성해진 볼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야기의 반전 캐릭터인 내기니(수현 분)의 실체까지 공개됐기 때문. 배우 수현은 "유명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예고편을 봤는데 사람들이 매우 환호하며 서너 번을 다시 돌려보자고 하더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와도 이어지는 방대한 프로젝트다. 이미 1편이 나왔을 때부터 총 5편의 영화화를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가 공지한 바 있다. 2편에선 분열되는 마법사들끼리 암투와 그 속에서 희생당하는 인간들과 동물들의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다. 이중 김수현이 맡은 내기니는 피의 저주를 받은 말레딕투스 캐릭터 중 하나로 이야기에선 꽤 중요한 캐릭터다. 영화는 아직 언론에도 미공개인 상태지만, 23일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배우 수현을 만날 수 있었다.

철저히 비밀이었던 캐릭터 내기니의 정체

지난해 내내 해외에 머물며 촬영에 임했던 수현은 <신비한 동물사전2> 출연을 놓고 "배우들끼리도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철저한 보안 유지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오디션을 본 이후에도 전체 대본이 아닌 쪽대본으로 틈틈이 호흡을 맞춰야 했을 정도.

"오디션은 제 미국 에이전트를 통해 제안받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해당 작품의 캐스팅 디렉터가 어떤 배우에게 어떤 역할을 오디션 보라고 하는지를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항상 아시안 캐릭터만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내기니가 아무래도 인도네시아 기반인 캐릭터라 J.K. 롤링(<해리포터> 시리즈 원작자) 작가님도 그쪽을 생각한 것 같다. 

다른 아시안 배우와 경쟁을 의식하진 않았다. 저도 오디션 준비에 바빴으니까. 물론 오디션장에 직접 가서 대기하고 그랬다면 와닿았을 것이지만 처음엔 영상을 찍어 보내서 경쟁자들을 의식할 순 없었다. 이번에도 철저히 저 혼자 영상을 찍었다. 그 뒤 데이빗 예이츠 감독님과 스카이프를 통해 독백 연기를 보여드렸고, 영국에 가서 면접을 봤다. 크레덴스 베어본(에즈라 밀러)과 항상 붙어 다니는 캐릭터라 에즈라 밀러와 붙어 있었는데 독특한 집중력을 가진 배우였다. 그 덕에 저도 캐릭터에 빨리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뱀으로 변하다가 영영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되는 내기니 역의 수현.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모든 게 순조롭진 않았다. 사후에 벌어진 논란이지만 수현의 캐릭터를 두고 일각에선 '동양인 비하 혹은 백인 중심의 캐스팅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견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수현은 "논란 자체가 속상하진 않다"며 생각을 밝혔다.

"(동양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인종차별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 저도 그런 문제에 나름 인지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까지 팬들이 생각하실 줄 몰랐다. 저로선 내기니를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애완뱀이 아닌 어떤 강력한 짐승으로 생각했다. 덤블도어(주 드로 분)에 못지않은 중요한 캐릭터라고 말이다. 롤링 작가님 자체도 소외된 자에게 마음을 많이 쓰는 분이지 않나. 영화에선 관객분들 대부분이 만족할 이야기를 담아주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애초부터 5부작으로 기획된 것이라 당장은 추측해서 나올 수 있는 논란일 수 있지만 멀리 봤을 때 작가님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롤링 작가와 만난 소감에 수현은 "거대한 이야기를 창조한 만큼 카리스마가 있을 것 같았는데 겸손하면서도 쿨하신 분이더라"며 "뭔가 권위적이기보단 배우들에게 캐릭터를 설명해주시는 등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시는 분이었다"고 전했다.

"저도 그렇고 배우들이 대부분 궁금함을 갖고 있다. 내기니가 어떻게 저주받아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전 모르는 상황이었고, 이후에 <해리포터> 시리즈와 어떻게 연결될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쪽대본을 받아서) 큰 그림을 보고 연기할 수 없었지만 다만 반전이 있는 캐릭터로 이해했다. 우리가 아는 무시무시한 뱀이 한때는 사람이었고, 상처받은 슬픈 여성이었다는 걸 표현하려 했다. 곧 영원히 뱀으로 변하는 만큼 조급함도 있을 것이고, 동시에 자신에게 자유를 준 크레덴스에게 동지애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뱀으로 변하다가 영영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되는 내기니 역의 수현.

"애초부터 5부작으로 기획된 것이라 당장은 추측해서 나올 수 있는 논란일 수 있지만 멀리 봤을 때 작가님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 문화창고

 
한국 넘어 세계 무대의 아시안으로

수현은 국내에선 드라마 드라마 <로맨스 타운>, <브레인>, <7급 공무원> 등에 출연했지만 오히려 <어벤져스2>나 <마르코폴로> 같은 할리우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찌감치 해외 진출의 성공 사례로 꼽히며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에 박수받기도 한다. 유년기 부모님을 따라 미국 뉴저지에서 머물렀던 경험 덕일까. 수현은 "해외 생활을 겁내는 성격은 아니"라고 말했다. 

"제가 해외 다니는 걸 좀 좋아하긴 한다(웃음). 처음엔 당연히 어떤 공식처럼 한국에서 절차를 밟아 뭔가를 이룬 다음 외국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건 외국 생활을 한 덕인 면도 있잖나. 제 딴엔 정체성 갈등을 느끼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그게 지금은 좋은 쪽으로 쓰이고 있으니까. 

한국활동 또한 너무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계획보다 많이 늦어져 아쉬움도 크다. 물론 한국에서도 작품 제안이 있긴 하지만 저 같은 30대 여성에겐 잘 오진 않는 것 같다.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지금은 어느 정도 선별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일단 더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주목을 잠깐 받든 아니든 제겐 캐릭터가 중요하다. 일단 백인들이 중심인 곳에서 제가 꾸준히 도전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발언 중 수현은 산드라 오, 존 조 등 아시아계 배우를 언급했다. 그는 "동양인 뉴스가 나오거나 이들의 작품이 주목받을 때 동양계 배우들이 함께 의기투합해서 영화를 보자고 한다거나 뭉치는 듯한 느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현은 "<블랙팬서> 때 흑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준 것처럼 동양인들도 그런 게 필요한 것 같다. 함께 지지하면, 그런 지지로 어떤 변화 역시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좋아하는 동양계 배우들이 매우 많다. 굳이 동양이 아니더라도 케이트 블란쳇은 호주 출신으로 장르 제약 없이 넘나들고 있고, 마리옹 꼬띠아르 역시 그런 면에서 존경스럽다. 스칼렛 요한슨과도 한 작품에서 만난 게 지금도 신기하다. 슈퍼히어로 상업영화를 하면서도 자신을 '인디 액터'(indie actor)라고 표현한다. 

어릴 때 해외에서 살게 한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말고 넓은 곳을 보라고 하셨는데 제게 영향을 준 게 크다. 학교에서도 글로벌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 때 일본계 미국인이 공중파 앵커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 역시 영향받았겠지. 한국에 돌아온 후 영어는 계속 공부했다. 고등학생 때도 영자신문을 끼고 다니곤 했다."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뱀으로 변하다가 영영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되는 내기니 역의 수현.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지금은 어느 정도 선별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일단 더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 ⓒ 문화창고

 
<어벤져스>는 또 다른 전환점

수현에게는 한국인으로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동시에 국내 드라마 현장도 두루 경험한 이력이 있다. 분명 그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왔다. 이런 이유로 할리우드와 국내 영화 시스템에 대한 질문도 꽤 받는다고 한다. "여전히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는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건강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을 이었다.

"할리우드에선 각자 역할분담이 잘 돼 있다. 배우가 (연기 외에) 신경 쓸 게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밥도 잘 주고 숙소도 좋은 집을 얻어서 잘 있었다. (국내에서 꾸준히 스태프들 노동 시간 문제가 지적받는 것에 대해) 할리우드에선 시간에 철저하다. 지금은 (하루에) 10시간까지 허용된다. 세트 촬영만이 아닌 이동시간도 포함해서 말이다. 메이크업 하는 시간 등도 체크한다. 주말엔 무조건 쉬게 해주고, 비용 계산도 철저하다. 심지어 같이 촬영하는 동물이 10시간 안에 가야 한다면, 그 친구를 먼저 찍게 하고 보낸다(웃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당시 그는 슈퍼모델로 데뷔한 것도 우연이었고, 지금의 활동 역시 우연이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어느덧 그 작품 이후 수현은 전 세계가 알아보는 배우로 성장 중이다. <이퀄스> <다크 타워: 희망의 탑> 등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제작사의 작품에 참여해왔다. 

"맞는 말이다. <어벤져스2> 이후 제가 상상하지 못한 경로로 가게 됐으니 또 하나의 전환점이지 않을까. 슈퍼모델 데뷔 후 10년 만에 한 작품이었는데 그것 역시 행운이라 생각한다. 인생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어벤져스 수현'으로 불리곤 했는데 지금은 제가 거리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내기니 흉내를 낸다.

이후론 다른 수현으로 불리고 싶다. 사람들이 아시아인으로서 제 활동이 기쁘다고 할 때 기분이 좋더라(웃음). 참, 마블 시리즈엔 또다시 출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절 섭외한 조스 웨던 감독님이 DC로 갔잖나(웃음). 근데 아주 희망을 버렸다고 하고 싶진 않다."
수현 신비한 동물사전2 해리포터 어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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