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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옛날이 참 좋았어."

크고 작은 모임에서 꼭 한마디씩 나오는 얘기다. 나이 든 사람들은 물론 하다못해 초등학생들도 대화를 나눌 때면 옛날을 들먹인다. 왜 옛날이 좋을까? 모든 이들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반짝거리고, 사통팔달로 포장된 도로들이 뚫려있으며, 수많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이 시대의 한가운데서 남녀노소 누구나 옛날을 그리워한다.

디지털 시대 한가운데를 사는 사람들이 아날로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편리함과 불편함의 간극을 따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보면 옛날의 삶이 오늘의 삶에 비해 훨씬 더 낭만적이고, 열정적이며,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오광수 - '낭만 광대 전성시대' 중에서)
 
한참 동안 가던 걸음을 멈추고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진 신평면 금천리의 국일사진관.
 한참 동안 가던 걸음을 멈추고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진 신평면 금천리의 국일사진관.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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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추억에 남는 사진이 있는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으로 진한 향기를 내뿜는 수많은 증빙 중의 하나가 바로 사진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고 몇 번의 '뽀샵' 조작과 인터넷으로 쉽게 인화가 가능한 요즘, 우리 주변에서 '사진관'이라는 간판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런데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며 그 사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 있다. 충남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 신평 막걸리양조장 골목에 있는 그곳은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했다.

양조장을 지나니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기이한 가게가 하나 나타난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빛바랜 합판 처마 밑으로 나무 벽이 둘러쳐져 있다. 헉, 사진관이었다. 한참 동안 가던 걸음을 멈추고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바로 '국일사진관'이었다. 그랬다. 사진관이라는 간판이 걸린 이곳은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 간판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간판 옆 '한일칼라'라는 인화지 안내판은 어릴 적 필름 카메라의 추억을 되새기게 만든다. 게다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회갑 출사, 비디오 촬영까지 한다고 걸려있다.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쇼윈도에 걸린 1960년대를 누린 여배우들의 담담하고 근엄한 사진들은 '덤'이다. 주인은 사진과 영상에 두루 능한 팔방미인인가 보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빛바랜 합판 처마 밑으로 나무 벽이 둘러쳐져 있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의 국일사진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빛바랜 합판 처마 밑으로 나무 벽이 둘러쳐져 있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의 국일사진관.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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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리에서 60년 가까이 이 자리를 터를 지키던 국일사진관은 반세기 동안 신평면에서도 가장 번성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금천리에서 60년 가까이 이 자리를 터를 지키던 국일사진관은 반세기 동안 신평면에서도 가장 번성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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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출입문을 열어봤다. 어,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검은 커튼까지 드리워져 있는 걸 보니 오랜 시간 사진관을 비운 모양이다. 창문을 들여다보니 여러 켤레의 여성 신발만 놓여있다.

그때였다. 마을을 청소하던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거기서 뭐 해? 뭐 신기한 게 있다고 들여다보고 있어. 주인도 없는데…."
"여기 사진관, 지금 안 하는 거예요?"


80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할머니는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며 이렇게 전했다.

"여기? 쥔장 양반이 몇 년 전 죽었어. 그래서 지금은 문 닫고 장사 안 해. 60년 전 이 동네에 사진관이 두 개 있었는데, 송씨 성을 쓰는 양반은 일찍 돌아가셔서 사진관 흔적도 없어졌지. 근데 여기는 그래도 몇 해 전까지는 장사를 했지. 이 동네 사람들 여기서 사진 안 찍은 사람이 없을 걸. 나도 주민등록증이고 가족사진이고 여기서 다 찍었어.

어디 그것뿐이겠어. 손주 백일사진 환갑에 칠순 잔치까지 이 양반이 다 찍어줬지. 그 양반 지금도 살아있었다면 지금도 웃으면서 사진 찍어주고 있을 거야. 아마 성씨가 이씨인가 그랬는데, 법 없이도 살 아주 좋은 양반이었어. 아이고, 나도 곧 죽을 건데 그전에 영정사진도 좀 찍어놔야 하는디..."


그랬다. 금천리에서 60년 가까이 이 자리를 지키던 국일사진관은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당진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실력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금천리는 반세기 동안 신평면에서도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주인장이 돌아가시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금천리의 유일한 사진관이자 반세기 동안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곳. 그래서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남은 아내와 아들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단다. 겉모습은 물론 간판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이 그저 고맙다.
 
사진관 뒤로 가보니 이 건물은 현대문화유산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한 구조의 옛날 2층 슬레이트 건물이다. 사진관 자리 건너편에 자리 잡은 ‘디지털 프라자’가 '아날로그'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사진관 뒤로 가보니 이 건물은 현대문화유산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한 구조의 옛날 2층 슬레이트 건물이다. 사진관 자리 건너편에 자리 잡은 ‘디지털 프라자’가 "아날로그"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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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할아버지가 영원히 자리를 비운 사진관 곳곳에는 벌과 참새의 보금자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할아버지가 영원히 자리를 비운 사진관 곳곳에는 벌과 참새의 보금자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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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누군가는 여기서 찍은 사진으로 이력서를 만들어 취업했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것이며 가족사진도 찍었겠지… 금천리 집집이 가족의 화합은 물론 청춘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을 담당하던 곳이었으리라.

주인장이 어떤 분인가 더 궁금해졌다. 사진관 주위를 둘러보니 미용실 하나가 눈에 띈다. 그곳에 가면 사진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심 좋은 '미남미녀' 미용실 원장인 이영휘씨는 "머리 안 잘라도 됩니다, 찾아오신 것만으로도 환영"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역시 안으로 들어가니 미용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뷰'가 예사롭지 않다.

"100년까지는 아니겠지만 70~80년은 족히 됐겠죠? 돌아가신 사진관 할아버지 이전의 선대 때부터 내려왔다고 하니까요. 할아버지가 요즘 나이로 치면 젊은 나이인 74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아주 멋쟁이셨어요.

사진관이 일부러 만든 세트도 아닌데 너무 자연스럽게 간직됐죠. 그래서 작년에 <다시 만난 세계>라고, SBS 드라마 촬영도 하고 그랬어요. 소문이 나서 그런지 드라마도 촬영하고 영화 만드는 대학생들이 몇 번 촬영도 하고 갔어요.

지금은 사진관 할머니와 아드님이 남아있긴 하는데, 사진을 전문으로 하기도 힘들고 유지하기도 어려워 최근에는 팔려고 내놓았다고 들었어요. 전국 어디를 가봐도 이렇게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매일 보는 정겨운 곳이라 그런지, 사진관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진관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미남미녀 미용실 원장 이영휘 씨. 창문 너머로 국일사진관이 보인다.
 사진관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미남미녀 미용실 원장 이영휘 씨. 창문 너머로 국일사진관이 보인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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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세트장처럼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 사진관, 그런데 옛 모습을 간직한 것은 사진관만은 아니었다. 사진관 뒤로 가보니 이 건물은 현대문화유산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한 구조의 옛날 2층 슬레이트 건물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건물 구석구석에는 주인장이 필름카메라를 통해 깊이 있고 자연스러운 색채를 구현했듯, 벌과 참새의 보금자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길과 길이 만나는 모퉁이마다 그저 걷는다 싶지만 길가 작은 소품과 추억의 간판들이 발을 이끈다.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 시대 우리들과 함께해온 아날로그 추억의 자리 건너편에 자리 잡은 '디지털 프라자'가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어느덧 필름 카메라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차지하고 있다. 비교할 수 없는 화질과 선명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국일사진관에서 정성스럽게 뽑던 한일칼라 인화지의 감성과 추억을 그 어떠한 디지털 기술이 감히 흉내를 낼 수 있을까.
 
국일사진관 앞의 보일러 가게. 주인이 떠난 이 보일러 가게에는 또 무슨 사연이 있을까?
 국일사진관 앞의 보일러 가게. 주인이 떠난 이 보일러 가게에는 또 무슨 사연이 있을까?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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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일사진관, #발견 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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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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