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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 나이에 2018년 4월부터 7월까지 필리핀 바기오에서 어학 연수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 기자말

어학연수 출발하기 전 유학원에서 입학허가서, 보험, 복장 등 준비물과 마닐라 공항 픽업 장소 및 시간을 안내하는 자료를 보내 주었다. 바기오는 마닐라에서 버스로 5시간 이상 소요된다. 대부분 초행인 연수생들이 개별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바기오학원연합회에서 월 2회 토요일과 일요일에 픽업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자료집이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서도 샌다'라는 속담처럼 처음부터 벽에 부딪힌 것이다. 유학원에 연락을 하니 저녁 7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는 답변. 무려 8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출국장을 나왔기 때문에 다시 공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짐이 많아 시내에 갈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출국장 앞 벤치에 않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자니 한심하다는 생각뿐.
 
바기오 픽업 버스 만남 장소
▲ 마닐라 공항 바기오 픽업 버스 만남 장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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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픽업 버스에 오르니 우리나라, 일본, 대만 등 각국에서 오는 연수생이 가득하였다. 모두 바기오에 있는 어학원에 가는 것이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 내 또래는 고사하고 40대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자 차창 밖은 어둠이 짙어오고 연수생들은 단잠에 빠졌다.

버스가 산을 힘들게 오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버스가 불빛도 전혀 없는 산길을 끝도 없이 오르고 있었다. 바기오가 해발 1500미터 고산 지대에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자정이 되어서야 바기오 어학원에 도착. 집을 출발한 지 20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허기가 졌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은 것을 제외하고 식사를 하지 못했다. 매니저에게 부탁하니 컵라면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새벽 1시, 낯선 곳에서 라면을 입안에 밀어 넣자니 별별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못 온 것은 아닐까!"

스파르타식 어학원 일정, 쉴 틈을 주지 않네
 
바기오 어학원에 도착
▲ 도착 바기오 어학원에 도착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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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을 여니 비현실적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학원은 산 중턱에 있으며 주위는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눈에 보이는 사방이 모두 산이었다. 멀리서 작은 불빛이 고개를 내밀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보는 일출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햇살이 퍼지면서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해발 1500미터 바기오의 아침은 상쾌하였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새들의 지저귐, 따사로운 햇살까지. 어젯밤에는 비관적인 생각뿐이었는데 아침 따스한 햇살과 함께 세상이 바뀐 것이다.
 
숙소에서 만나는 일출 모습
▲ 일출 숙소에서 만나는 일출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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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일과가 바쁘게 진행되었다. 오전에는 레벨 테스트, 오후에는 학원 소개와 커리큘럼 설명 및 학원 규정 안내, 그리고 야간에는 물품 구입 및 환전을 위한 시티 투어.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 같다. 필리핀 어학원의 운영은 스파르타식이라는데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일정이었다.

레벨 테스트는 말하기, 듣기, 읽기, 문법 그리고 쓰기 순으로 진행되었다. 말하기는 동영상이 촬영되는 가운데 교사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 자기소개, 취미, 연수를 온 동기 등을 묻는 것 같은데 나는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들리지 않으니 답변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간혹, 알아듣는 질문도 대답은 입에서만 맴돌았다. 나의 수준을 고려하여 교사가 천천히 질문을 하지만 나의 머리는 멘탈 붕괴 상태. 5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신입생 지필 고사
▲ 레벨 테스트 신입생 지필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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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읽기, 문법 시험은 녹음된 방송을 들으면서 문제를 풀거나 지문을 읽고 정답을 찾는 것. 마지막 쓰기 시험은 가족에게 필리핀에 도착 소감이나 바기오에 여행 온 것을 가정하여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문법과 어휘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지를 대하니 헛헛한 웃음만 나왔다. 문법은 고사하고 간단한 단어도 스펠링이 기억나지 않았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는 인사말 외에는 단 한 문장도 작성하지 못했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된 시험은 악몽이었다. 머리는 아프고, 가슴은 답답하였으며 속은 더부룩하여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였나 보다. 학창 시절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몇 차례 배낭여행을 통해 영어로 의사 표현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오후 시간은 커리큘럼, 학원 규정 등을 설명하는 시간. 수업은 맨투맨 수업 4시간, 그룹 수업 2시간 그리고 야간에 특별 보충 수업이 3시간 진행된다.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교사를 배정하며 하루 7시간 이상의 수업을 받아야 한다. 맨투맨 수업이 많은 것은 필리핀 어학연수의 장점이다. 연수생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영어권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어학원에 온 게 맞나? 까다로운 학원 규정

학원 규정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 주중 외출 금지, 통금 시간 지키기, 음주 금지, 이성 방 출입 금지, 수업 시간 지키기, 라운지에서 영어만 사용하기 등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은 왜 이리 많은지. 규정을 어기면 외출 금지, 단어 외기, 벌금, 그리고 퇴원까지 다양한 벌칙이 있었다.

많은 규정 중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기숙사에서 음주 금지와 매일 밤 10시에 라운지에서 점호를 받아야 한다 것이었다. 50대 후반 나이에 술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점호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이 암담하였다. 내가 어학원에 온 것인지 아니면 군대에 재입대한 것인지 혼선이 왔다.
 
필리핀 대중 교통 수단
▲ 지프니 필리핀 대중 교통 수단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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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끝내고 신입생 모두 두 대의 지프니(필리핀 대중교통 수단)에 나눠 타고 시내로 향했다. 연수 기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환전을 위해서이다. 어학원이 바기오에서 가장 높은 산토 토마스산(해발 2,292미터) 자락에 있어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한참을 달려 바기오 시내에 도착하였다. 바기오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화려한 도심 모습이 낯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랜만에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어학연수 기간을 통해 '소식(小食), 영어 공부, 운동'에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하였다. 30여 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태하고 비대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되자고.

태그:#필리핀, #바기오, #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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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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