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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9월 13일, 총여학생회 선거를 미루려는 학생대표자들에게 회칙에 따라 총여 선거 시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9월 13일, 총여학생회 선거를 미루려는 학생대표자들에게 회칙에 따라 총여 선거 시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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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이하 성균관대 인사캠)에서는 나흘 동안 진행된 총여학생회(아래 총여) 폐지 총투표안이 투표율 52.39%, 찬성 83.04%로 가결되어 총여가 폐지됐다. 

총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투표관리위원회(이하 투관위) 페이스북 페이지와 익명 게시판 앱인 '에브리타임'에는 "정의는 승리한다", "민주주의의 승리다"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9년째 궐위 중이던 학생자치기구에 입후보 희망자가 나오자마자 총투표로 그 기구를 폐지시켜버린 이번 사태를 과연 민주주의와 정의의 승리로 볼 수 있을까.

올해 3월, 나는 전(前) 성균관대 교수의 미투운동에 연대하며 학교와의 면담 장소로 향하던 중 "선출직 재학생이 아니"라서 안 된다며 가로막혔다. 그 길로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생회 선출직 임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약 두 달 뒤 돌아온 대답은 "피해 교수와 학교 측의 입장이 너무 상충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였고, 앞으로 성평등국이나 인권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총학생회장은 "그런 큰일이 일어나면 당연히 총학생회가 나서야 하므로 특별한 부서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

총학생회가 나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성평등국이 필요 없다니… 학생들이 개최한 성폭력 피해생존자 집담회 공간을 학교가 수차례 반려하는 동안, 우리는 피해자의 편에 서줄 학생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했다. (관련 기사 : "미투에 대답한다더니... '총여 폐지' 하자고?" http://omn.kr/17ncx)

돌을 대신 맞아주는 '선출직' 한 명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 인사캠 총학생회칙에 총여가 명시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학내 유일의 여학생기구인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에서 총여 회칙과 선거시행세칙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2012년을 끝으로 총여 비상대책위원회마저 해산했기에 총여가 있는 대학에 다녀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만약 재건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재건의 의미는 무엇일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마침내 총여 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은 미투로 시작한 2018년을 그냥 넘길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사회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처럼, 우리는 미투라는 거대한 흐름을 통과하며 적어도 성폭력의 원인이 성차별이라는 점과 사회가 결코 성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그런데 이 사회를 책임지고 있다는 이들 가운데 누구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직접 그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백래시에 직면할 때 돌을 대신 맞아주는 '선출직'은 한 명도 없었다. 

총여는 대학 내 여학생이 수적으로 적고, 남학생만이 임원을 맡던 80년대, 과소 대표되던 여학생들에게 한 표 더 행사할 권리를 쥐여주며 탄생했다. 나는 여학생을 회원으로 하는 총여를 재건함으로써 2018년 여기에도 그 한 표가 더 필요하다고, 우리 아직 너무 많은 차별에 최소한의 방패막이 하나 없이 노출되어 있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보고 듣고 직접 겪은 성차별·성폭력 사건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미투에 대한 대답이 대학에서는 총여일 수 있겠다고 믿었다.

굳이 학생회라는 형태를 택한 이유도 여성의 문제가 공동체의 문제이고 우리는 모두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며, 좋든 싫든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90년대 대학 내 반성폭력운동을 이끌었던 '영페미'들은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시기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을 고안해냈다.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 처벌에서 끝이 아니라, 성폭력이 가능했던 '우리'의 구조와 문화를 돌아보고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각자도생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는 경찰이나 법원, 인권센터가 아니라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역할이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꼭 말하고 싶었다.

이제 밝힐 수 있는 공약들

총여 재건운동을 위해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아래 성성어디가)'라는 재학생 모임이 결성됐고, 우리는 여학생기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과 총여라는 형태가 갖는 성별이분법적 한계를 쇄신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했다. 후보자 등록 공고가 게시되기도 전에 총여가 폐지되는 바람에 우리가 대략적으로나마 구상했던 공약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 정책들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던지고 싶던 메시지이기도 했다.
 
▷성평등한 성대
- 성폭력 피해상담 핫라인 운영(외부단체나 인권센터와 협력)
- 월별 화장실 몰카 점검
- 월경공결제 실시
- 반성폭력 필수 수업 개설(전공진입/졸업 요건)
- 학기별 교수 성평등 강의 서약서 받기, 학기말 이행 여부 공고
- 학내 위험구역 비상전화(신고벨) 및 가로등 설치(혜화경찰서와 협의)
- 생리대 자판기 대신 무상 생리대 비치
- 분기별 페미니즘 강연 개최
- 여학생휴게실 증설 및 인식 개선 활동
- 건강한 연애를 위한 행사/성교육 기획

▷여성주의적 공동체
- 여학생기구 연석회의 운영
- 3월 페미니스트 캠프
- 단과대별 여학생위원회 건설 추진위원회 운영
- 학생회 대상 성폭력사건 해결 가이드라인 제정(인권센터와 협력)
- 여성주의 모임 지원
 1) 총여학생회실 세미나 공간 대여
 2) 자연과학캠퍼스 여학생 기구/여성주의 모임 지원
 3) 세미나 커리큘럼/추천도서 리스트 제공

▷소수자 연대
- 학적부상 성별에 남성·여성뿐 아니라 '표시하지 않음' 항목 추가 및 총여 회원권 여부 조사하여 반영
- 소동제(학내 유일 소수자·인권 축제) 확대 및 정례화
- 대동제 배리어프리존
- 소수자 배려 지침서를 각 과에 배부(채식, 장애 여부 조사, 일회용품 사용 지양, 다국어 표기 등)
-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 성소수자협의체, 장애인협의체 등 의결권을 가진 소수자기구 건설 지원

총여 회칙 개정해야만 선거 열어주겠다고?

50일간 지난한 싸움의 시작은 8월 27일이었다. 나는 8월 16일 총학생회장을 찾아가 현재 총여가 궐위 중인 만큼 선거를 어떻게 치를 수 있을지 문의했다. 그는 매년 총학생회 선거를 책임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맡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27일 열릴 중앙운영위원회(총학생회장단·단과대 회장단·독립기구장단으로 구성, 아래 중운)에서 회의한 뒤에 확답을 주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27일 총학생회장단과 몇몇 중운위원들은 문과대 여학생위원회로부터 받은 총여 회칙과 선거시행세칙에 문제점이 많다며 개정해야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출직 임원이 없는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에 의해 회칙과 세칙이 보관되어왔다는 점과 표현이 낡았으며 회칙과 세칙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성성어디가'가 해당 회칙이 진본과 같음을 입증하는 역대 총여 졸업생들의 성명서를 받아와 제출하고, 지난 총학생회가 총여실을 남자휴게실로 전환하며 회칙 진본을 유실한 사실을 규명하는 등 모든 지적에 대한 반박을 제기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9월 3일과 10일 연속적으로 열린 회의에서 총여 회칙 제·개정 발의 권한을 중운에 위임한다는 안건을 17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아래 전학대회)에도 상정하게 되었다.

어떤 기구이든 회칙 제·개정안을 완성하고 인준받아 공포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총여 선거를 미루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총여 회칙 제·개정과 선거에 대한 계획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총학생회장은 "제 임기 중에 총여 선거 못 열면 저를 구속하실 건가요, 어쩔 건가요?"라며 농담으로 일관했다.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 의장인 총학생회장에게는 누군가의 간절한 호소에 농담으로 답할 권리가 주어졌지만, 참관인이던 우리에게는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정숙해달라는 엄포와 비웃음이 돌아왔다. 우리는 전학대회를 앞두고 "회칙에 따라 총여 선거를 진행하라"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개최했고, 그 결과 전학대회에서는 총여 회칙 제·개정부터 선거까지의 계획이 공개되었다.
 
9월 17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총여학생회 회칙에 따른 선거 촉구 집회 'IF NOT NOW, WHEN?'을 개최했다.
 9월 17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총여학생회 회칙에 따른 선거 촉구 집회 "IF NOT NOW, WHEN?"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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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자도 사유도 없는 총투표 발의

총여 회칙 제·개정과 선거 방식에 대해 논의하던 17일 전학대회에서, 갑자기 글로벌리더학부 학생회장은 총여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자신이 '총여 폐지 총투표' 발의를 위해 대의원 서명을 받고 있다고 홍보했다. 그간 회의에서 "총여 선거를 미루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니 중운위원들을 믿어달라"라고 당부했던 그의 달라진 태도에, 수많은 대의원과 참관인들이 화들짝 놀라 손을 들었지만 의장은 그중 누구에게도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전학대회에서 총여 회칙 제·개정 발의 권한을 중운에 위임한다는 원안이 가결된 직후에도 계속 총여 폐지 총투표 발의를 위한 서명을 모으던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과 경영대학 회장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중운위원으로서의 자신과 대의원 1명으로서의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며 잘못이 없다고 거절했다.

이틀 뒤인 19일, 글로벌리더학부 학생회장단은 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들이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모아 회칙에 따라 총여 폐지 총투표를 발의하였음을 알렸다. 안건명은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총여학생회를 폐지한다'였지만, 폐지시킬 의도는 없고 단지 의견수렴을 위한 선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29일, 총투표 공고 권한이 있는 총학생회는 해당 발의안대로 총투표를 시행하겠다는 공고문을 냈다. 하지만 공고문에는 회칙에 따라 반드시 밝혀야 하는 '사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총학생회는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이라는 요건이 사유에 해당한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서명한 대의원 명단을 열람하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는 "회칙상 공개의무조항이 없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만약 총학생회장 탄핵안으로 총투표를 한다면, 횡령이나 폭력 사건 등 그 사유는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총여 폐지 총투표에는 아무런 사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미 회칙을 어긴 셈이었다.

또한, 서면발의로 총투표를 발의하는 데 동의한 대의원들의 명단을 일반 학생들은 물론이고 투관위마저 열람하지 못한 채 총투표가 공고된 점도 문제적이었다. "총학생회장단과 중앙집행국이 확인한 결과 조작이 없었다"라는 말 한마디로 공개요구와 관련된 논란은 무마되었다. 그야말로 폐지를 위한 폐지 투표였다.

"우리는 부당한 총투표를 거부한다"
 
10일부터 진행되는 총투표를 앞두고, 8일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298명의 이름으로 투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0일부터 진행되는 총투표를 앞두고, 8일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298명의 이름으로 투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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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인 문제는 또 있었다. 총투표를 시행함에 앞서 그에 맞는 시행세칙을 공표해야 하는데, 투관위는 총투표 시작 하루 전 '성성어디가'가 질의하자 그제야 2017년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을 준용하겠다는 말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다. 인선 투표와 정책 투표는 성격이 다르고 각각 사용하고 있는 표현도 다른데 준용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투관위의 안내문에 언급된 '투표방해 행위' 규정은 근거조항 없이 강경한 경고 문구만이 쓰여 있었다. 

해당 자치기구의 회원 밖 사람들을 포함해 다수결로 그 기구의 존폐를 결정하겠다는 발상부터 민주적이지 못한 총투표였다. 설문조사나 토론도 없이 결정부터 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자, 투관위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애매한 시간대에 구색 맞추기식 토론회를 잡았고, 결국 총여 폐지 찬성 측이 아무도 나오지 않아 '안건 간담회'로 성격이 바뀐 채 진행되었다. '성성어디가'도, 글로벌리더학부 학생회장 개인도 각각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세 토론회 모두 총투표 공고 결정을 되돌릴 위력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10월 8일, "우리는 부당한 총투표를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298명의 이름으로 투표거부선언을 낭독했다. 초대 총여학생회장님을 비롯한 역대 총학생회장님들도 함께해주셨고, 총여 재건과 보이콧 선언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총여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여론이 공정하게 논의될 수 있는 공론장이 없었기에,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투표율 50% 미달로 개표할 수 없게 만드는 투표거부운동, 즉 보이콧뿐이었다. 우리는 10일부터 진행되는 총투표에 맞추어 적극적인 보이콧 캠페인을 시작했다.

투표 기간 동안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사실상 총여 폐지를 독려하는 투표독려 구호들에 맞서 돌아가며 피켓팅을 하고, 이번 총투표의 문제를 알리는 유인물을 나누어주었다. 투관위원장인 부총학생회장이 오전에는 피켓팅과 유인물까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오후에 투관위원인 총학생회장이 달려와 화를 내고 손가락질을 하며 벽에 붙은 유인물을 떼라고 윽박지르는 일도 있었고, 투관위원도 아닌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이 양장 차림으로 나와 투표독려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투관위는 학생회비로 사탕을 구입해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한 학생은 보이콧 지지 입장을 표명한 학생 단위들을 조롱하며 자신이 사탕 한 박스씩 보내줄 테니 동아리방 주소를 알려달라 말하기도 했다. 둘째 날 투표율이 잘 나오지 않자 셋째 날에는 네 명이서 지나가는 학생 한 명을 둘러싸고 투표했느냐고 묻고, 보이콧 중이라는 학생에게는 실소를 터뜨리는 사태도 벌어졌다.
 
15일, 마지막 연장투표일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총여학생회 재건운동의 계기와 보이콧 동참호소를 담은 계단 홍보물을 부착했다.
 15일, 마지막 연장투표일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총여학생회 재건운동의 계기와 보이콧 동참호소를 담은 계단 홍보물을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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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첫째 날 점심시간에는 "발의자도 공개 않는 총투표 거부한다", "사유도 없고 대안도 없는 총투표 거부한다", "가부장제 먼저 폐지하십시오" 등 구호를 외쳤고, 둘째 날부터는 '총투표 보이콧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고도 사유 없이 연장된 넷째 날, 15일 월요일에는 계단 홍보물을 부착했고 강의실을 돌며 새로 만든 유인물을 배포했다.

계단 홍보물이 부착한 지 한 시간 만에 강제 철거당해 행정실을 방문해보니 학생지원팀에서 뗐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할 때마다 와서 참여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가던 교직원도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부착한 홍보물에는 당일 저녁에 자진 철거하겠으니 문의 사항이 있을 시 연락 달라는 메시지와 전화번호가 기입되어 있었는데도, 게시판이 아닌 곳에 부착했다는 게 무단 철거의 이유였다.

학교가 학생들의 동의 없이 게시판을 매년 줄여나가고 있지 않느냐, 다른 동아리 홍보물은 바닥이나 벽에 붙어도 떼지 않으면서 이번 계단 부착물만 철거하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의 투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10월 10일 수요일부터 12일 금요일까지 예정된 기간 동안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자 투관위는 15일 월요일까지 하루를 연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장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입후보 희망자가 나와도 총여 선거는 회칙이 불완전해 절대 열릴 수 없는 것이었는데, 총여를 없애자는 총투표는 회칙도 어겨가며 대충 시행되었고 결국 총여는 폐지되었다.

졌지만 잘 싸웠다!

역사에는 투표율만 남지 않을 것이다. 2018년 미투 국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던 성균관대 학생대표자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총여를 폐지시킨 성차별적 만행을 우리는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투표가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강행되었는지, 그리고 총여재건운동과 보이콧운동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매일같이 싸우고 하루하루 힘을 키워갔는지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힘을 내서 싸울 것이다. 총여는 폐지되어도 인권과 평등은 폐지되지 않으니까. 마지막 연장투표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투표율이 막 50%를 넘은 것을 확인했는지 누구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행정실에서 나와 캠퍼스를 거닐던 총학생회장을 향해 우리는 이렇게 외쳤다. "성균관대 소수자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총학생회는 총여 대안책 논의하겠다는 약속 임기 중에 지키십시오!"

우리는 50일간 "피싸개년", "씨발싸개년" 등의 모욕과 아웃팅, 온갖 추측성 공격들에 노출되었고, 투표거부선언에 실명으로 서명한 200여 명의 학생들에게도 색출과 조롱, 외모 평가 등이 자행됐다. 이 200여 명의 학생들의 안전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회는 역시 없었다. 총여가 필요하다고 절규하던 사람들에게 총여 폐지 총투표라는 폭력을 휘두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또다시 가해지는 가혹행위들을 끝내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이처럼 총여 폐지 총투표를 전후로 쏟아진 수많은 혐오표현들은 역설적이게도 총여가 너무도 필요한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아직 힘 있는, 더 많은 학생자치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흘간의 피켓팅에서 갈수록 늘어갔던 간식 선물과 따뜻한 연대의 마음, 그리고 피켓팅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이렇게 모인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테고, 역사는 투표율이 아니라 이 싸움과 그 안의 삶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태그:#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성성어디가, #보이콧, #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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