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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다섯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창고임대업체에서 근무하던 박모씨는 2015년 어느 날 돌연 해직통보를 받았다. 서울에만 세 개의 지점이 있었고 분당과 부산에도 한 개씩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지점에서 근무하던 박씨를 어느 날 갑자기 분당 지점으로 전출시켰다. 박씨가 이의를 제기하자 돌아온 것은 해고통보였다.

부당해고라 생각한 박씨는 노동청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했다. 도저히 자신의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박씨는 밤을 새워가며 구제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회사의 답변서를 받아본 박씨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단 한 장짜리 답변서에는 "당 사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부당해고구제신청의 대상이 아닙니다"고 적혀있었다.

박씨가 다녔던 회사는 대규모 창고를 개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소규모 창고로 분획한 후 이를 임대하는 회사였다. 조그마하게 나뉜 창고를 빌려주고 임대료를 징수하는 업무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지점 당 3~4명의 직원만 근무하고 있었다. 사설관리나 청소 등은 모두 외부 업체에 위탁을 주었다. 간혹 추가인력이 필요하면 본사 직원이 나와 손을 보태고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전국에 있는 다섯 개의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거의 20명에 달했다. 본사 직원까지 합하면 30명에 육박했다. 직원이 30명 가까이 되는 회사에 다닌 박씨가 상시근로인원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해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적용 피해 5인 미만으로 분할한 회사

박씨가 다녔던 회사는 전국에 있는 다섯 개의 창고를 지점으로 운영하지 않았다. 각 창고마다 별도의 법인을 설립해 놓았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실질적으로는 본사에서 채용절차를 주관했지만 면접 등은 각 지점에서 지점 담당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박씨는 그제야 명함을 확인해 봤다. 명함에는 '○○창고 가산디지털단지 점'이 아닌 '○○창고 가산디지털단지'라고 쓰여 있었다. '점'자가 빠진 것이다.

회사는 전국에 있는 다섯 개의 지점을 형식상 각각의 법인으로 운영해 왔다. 경영관리는 본사에서 했지만 회계와 노무관리는 철저히 각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되기 위한 꼼수였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은 법의 적용 대상을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있다. 즉,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근로기준법시행령을 통해 몇몇 규정은 적용을 받지만 해고사유를 제한하는 등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규정들은 대부분 배제된다.

박씨는 다섯 개의 지점이 형식상으로는 별도 법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회사라고 항변했다.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하지 않고, 자신의 부당해고구제신청은 정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회사는 치밀했다. 형식상으로 완벽했다. 결국 박씨의 구제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배제되는 근로기준법

노동자는 회사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류되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박씨와 같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당할 수도 있고, 구제신청도 할 수 없다.(근로기준법 제24조, 27조, 28조 제외). 사업주의 귀책사유로 휴업을 하는 경우 평균임금의 50%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휴업수당에서도 배제된다(근로기준법 제46조 제외).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시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서 받을 수 있는 연장·야간 근로수당 또한 배제된다(근로기준법 제56조 제외). 연차휴가 역시 청구할 수 없다(근로기준법 제60조). 이 외에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은 수 없이 많다.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이와 같은 엄청난 특혜를 베푸는 이유는 영세사업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즉, 소규모 자영업자를 보호하겠다는 정치적 판단이다. 박씨가 다녔던 회사와 같이 법규정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5인 미만 사업장은 PC방, 동네 치킨집, 편의점 등 영세사업장들이다. 이들이 노동자를 좀 더 쉽게 해고하게, 휴일과 밤에 일을 시켜도 돈을 더 주지 않게, 휴가도 주지 않을 수 있도록 해서 좀 더 먹고살기 편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 지원 위해 노동자에게 희생 강요

하지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한 경제적 약자들이다. 최저임금, 아니면 이를 겨우 넘기는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땅한 경력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인 경우가 대다수다.

경력이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경력단절 여성처럼 다시 취업하기 어려운 처지이거나 어디를 가도 받아주지 않는 고령자인 경우도 많다.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를 착취해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세 사업장에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노동조합이 없다. 사장님 부부가 직접 닭을 튀기고 배달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한두 명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곳에서 노동조합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다 정당한 사유 없이도 마음대로 해고를 할 수 있으니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고 보호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이는 국가만 남게 된다. 하지만 노동청에 진정을 넣는다고 해도 대부분의 근로기준법은 적용되지 않으니 근로감독관도 임금체불이 아닌 이상 마땅히 취할 조치는 없다.

2018년 2분기 전체 취업자는 2710만 9천 명이었다. 이는 1분기 2628만 3천 명보다 2.8% 증가한 수치다. 사업장 종사자 규모별 증가율은 1~4인 규모 사업장이 4.6%로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이는 다른 규모 사업장과 비교해 봐도 5~299인 사업장(1.6%), 300인 이상 사업장(2.4%)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반면 같은 시기 구직급여 신청자는 24만 2404명으로 전분기 대비 29.8%로 크게 줄었다. 다시 구직급여 신청자의 감소폭을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1~4인 규모 사업장이 –24.3%로 평균보다 낮았고 5~299인(-31.4%), 300인 이상(-30.5%) 등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 봐도 크게 낮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취업자 증가율은 높고 구지급여 신청자 감소폭이 낮은 것은 많이 채용하고(높은 취업자 증가율) 동시에 많이 퇴직(낮은 구직급여 신청자 감소율)했다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쉽게 뽑아 쓰고 쉽게 해고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업주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들어갔다 쉽게 나온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배제되는 그곳에서는 최소한 해고에 대해서만큼 사장님이 월등한 '갑'이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최저임금까지 배제하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 약자들이 모여드는,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이 배제되어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다.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임금을 주고 싶지만 최저임금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저임은 맞추고 있는 사업장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비교적 높은 비율로 인상하자 2018년 7월 12일, '전국편의점주단체협의회'는 "2018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편의점은 이미 운영 한계에 달해 있다"며 최저임금이 다시 인상될 경우 전국 7만여 편의점이 '동시 휴업'을 추진하겠다고 정부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현재의 최저임금도 이겨내기 버거운 상황에서 또다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편의점 운영에 한계상황에 이르러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점주들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법을 준수하지 않겠다는, 법을 어기겠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최저임금은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는 것으로 편의점주들의 주장 역시 논의 과정에 반영하면 된다.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면 최저임금법위반으로 처벌하고 체불임금은 민사소송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전국편의점주단체협의회'의 주장은 최저임금법을 준수하지 않겠다는 범법선언과 같이 방법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있으나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논의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왜곡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7월 9일 '소상공인연합회'는 '2019년 적용 최저임금 관련 경영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최저임금을 차등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최저임금을 이원화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5인 이상 사업장의 그것보다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이 공식급여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라는 것은 사실상 최저임금을 인하하라는 주장과 다름없다. 게다가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는 제도다(최저임금법 제1조). 그렇기에 노동자라면 누구나 최저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러한 최저임금을 사업장의 규모가 5인 이상인지 여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은 법의 취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제는 근로기준법 제11조 폐지 논할 때

5인 미만 사업장을 근로기준법에서 배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최저임금마저 무너트리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이 보호와 지원의 대상인 것과 동일하게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역시 사회·경제적 약자들로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지원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역할을 노동자에게 떠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제 근로기준법 제11조의 폐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다.

참고문헌

충북일보. 2018.09.26.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근로자, 다른 법률'"
비즈팩트. 2018. 7. 14. ""동시휴업 불사"···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앞둔 편의점 업계 향배는"
뉴시스. 2018. 7. 9. "소상공인연합회 "5인 미만 사업장, 최저임금 차등화해야""
헌재 1999. 9. 16. 98헌마310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근로기준법, #최저임금, #5인 미만 사업장, #4인 일하 사업장,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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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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