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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리자작나무 숲에서
▲ 자작나무 원대리자작나무 숲에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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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좋은 날엔 자연이 아닌 인공의 공간에 내 몸을 가두는 것이 죄처럼 여겨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선물로 주신 그분에 대한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집을 나선다.

자작나무,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가을 단풍이 한창인 요즘을 으뜸으로 쳐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화사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구절초
▲ 구절초 화사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구절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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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으로 유명한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그곳의 가을은 깊었다. 구절초는 내년을 기약하며 시들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보름 이상은 여전히 가을빛을 충만하게 간직하며 뽐낼 것 같다.

일상의 삶에 빠져서 가을빛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이 글을 보는 순간부터 보름 안에 가을빛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시길. 하루 정도 가을빛을 만난다고 우리의 삶이 퇴보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친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잠시 쉬었다 가도 늦지 않다
▲ 빈의자 잠시 쉬었다 가도 늦지 않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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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떠나라.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당신을 안아주고자 하는 자연의 품에 안겨 지친 삶을 치유하라. 어느 때나 좋지만, 숲이 가장 충만한 계절은 '가을'이다. 그 충만함이 극치에 달한 후 숲은 텅 빈 충만을 향해서 간다. 그 '텅 빈 숲'도 좋지만, 조금은 쓸쓸하고 외롭다. 
 
가을햇살에 방긋웃는 구절초
▲ 구절초 가을햇살에 방긋웃는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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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숲 낮은 곳으로 파고 들어온다
▲ 가을햇살 가을 햇살이 숲 낮은 곳으로 파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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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피어난 가을은 앳되다. 마치 나를 기다려준 것 같아 감사하고 또 고맙다. 이미 이른 봄부터 오랜 시간 숲의 바람과 햇살과 비와 모든 풍상을 겪은 것들은 서둘러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봄을 꿈꾸며 뒤안길로 걸어가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가을 햇살은 그들을 붙잡는다. 조금 만 더 같이 있자고 한다.
 
가을빛은 소소한 것들도 아름답게 만는다
▲ 가을빛 가을빛은 소소한 것들도 아름답게 만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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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에서 아름다운 것이 어디 단풍뿐이냐고 하면서,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재주를 가을숲은 지니고 있다. 가을숲의 품은 옹졸하지 않고 넓다. 모든 것을 다 품어준다. 세상 풍파에 시달려 상처받은 내 영혼의 찌꺼기들까지 두 팔을 벌려 다 품어줌으로 치유한다.

원대라 자작나무 숲, 안내소에서 여러 등산로로 갈라지지만 4km를 넘지 않는다. 그 어떤 길을 택해도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자막나무 숲을 만나고 돌아올 수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
▲ 자작나무 원대리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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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다 보여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숲은 아람다웠다. 사진으로 다 보여줄 수도 없지만, 직접 가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에게 맡겨진 책무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아름다운 숲이었다. 물론, 다른 숲도 그렇겠지만.

행복해 보였다. 숲에 안긴 사람들 모두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살아겠지만, 숲에서 그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함께 온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을 숲에 안긴 모습은 아름답다
▲ 산행 가을 숲에 안긴 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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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걸어가는 길도 좋지만 동행이 있다면 더 좋다
▲ 동행 홀로 걸어가는 길도 좋지만 동행이 있다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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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가을 숲을 걸어가는 걸음이 아름답다
▲ 걷기 친구와 가을 숲을 걸어가는 걸음이 아름답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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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는 이들을 보면서 미셸 투루니에의 <걷기 예찬>을 떠올렸다. 인간을 인간답게 한 것은 '직립보행' 즉, '걷기'였다. 걷기를 잃어버린 만큼 우리는 인간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가을 빛을 품고, 신이 인간에게 쓴 연애편지마냥 느껴지던 자작나무 숲을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룻동안 걸었던 걸음걸이를 보니 13,000보 조금 넘고, 대략 7.3km를 걸었단다. 하루 '만 보'를 걸어야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데, 그보다 조금 더 걸었으니 오늘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저녁에 군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15kg 군장하고 5km를 뛰었어요."
"아빠는 오늘 7km 조금 넘게 걸었다."
"걸은 게 아니고 뛰었다구요. 엄청 힘들었는데, 훈련을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뛸 수 있데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자작나무 숲에 연애편지를 쓰듯, 신이 인간에게 연애편지를 쓰듯 나는 아들에게 연애편지를 쓴다. 사랑하고, 응원한다고.

태그:#원대리, #자작나무, #가을빛, #구절초, #걷기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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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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