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7일,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장기하, 이민기, 정중엽, 이종민, 하세가와 요헤이, 전일준)이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공식 SNS와 멤버들의 계정을 통해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 앞에 많은 록팬들이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윤도현, 오혁, 카더가든 등 동료 아티스트들 역시 마찬가지의 마음이었다.
 
장기하 힐링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장기하의 얼굴들' 리더 장기하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 '장기하의 얼굴들' 리더 장기하 ⓒ SBS


2008년 등장한 장기하와얼굴들, '인디의 얼굴'로 떠오르다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다 한모금 아뿔싸 담배 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 '싸구려 커피'(2008) 중

 
10년 전, 장기하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뿔테안경을 쓴 사내의 입에서 무기력한 노랫말들이 흘러 나왔다. 자취방에 CCTV를 설치해서 쓴 보고서가 이런 것일까. 노래인지 만담인지 헷갈리는 창법도 새로웠다(이 독특한 형식미는 훗날 장기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싸구려 커피'는 단숨에 '88만 원 세대'의 송가가 되었다. 정작 노래를 부른 장기하가 자취 경험이 없는 엘리트라는 후문이 전해지긴 했지만, 중요하지 않다.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정규 3집 <사람의 마음> 음악감상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기하와 얼굴들

지난 2014년 10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정규 3집 <사람의 마음> 음악감상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기하와 얼굴들 ⓒ 두루두루amc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선보인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파급력도 컸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이들의 춤은 놀라운 화제가 되었다. 시작은 B급 정서로 가득했지만, 음악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싸구려 커피'는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게 된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이름처럼 한국 인디 음악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을 음악계의 외곽진 곳에까지 확장시킨 일등공신이란 점에서 국내 음악계의 고질병 중 하나인 '다양성 부재'에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했고, 이렇다 할 홍보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현상으로까지 자생한 음악적 저력과 이에 반응해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던 대중들의 커다란 공감대를 고려할 때도 올해의 노래로 선정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의 변 중  

뻔하지 않은 '장얼표' 로큰롤
 
 
장기하와 얼굴들에게는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들의 음악은 자신들이 사랑한 수많은 옛 뮤지션들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토킹 헤즈(Talking Heads)로부터 받은 영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장기하는 토킹 헤즈의 광팬으로 유명하다. 그는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데이비드 번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순간들 역시 밴드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팬들이 그들의 노래를 듣다가 산울림과 송골매를 떠올린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께서 '별일 없이 산다'를 듣고 한 마디 말씀하신 적 있다.
  
 MBC <무한도전> 출연 당시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습

MBC <무한도전> 출연 당시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습 ⓒ MBC


"이거 완전히 배철수인데?"
 
복고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뻔하지 않은 복고'로 귀결된다. 60~70년대 록 마니아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의 합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옛 록음악들을 재치있게 한 시대에 정렬시킨다. 그것이 '장얼표 로큰롤'을 만드는 과정이다.

많은 곡들이 머리를 스친다. '마냥 걷는다'는 6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반이 일품이다. 8분이 넘는 사이키델릭 대곡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도어스(The Doors)가 다녀간 것처럼 들린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처럼 코러스를 쌓아놓은 '가나다'도 경쾌하기 그지없다. 로큰롤을 기조로 다양한 시도를 해 왔지만, 그 때마다 자신들만의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단 한 장의 앨범만을 추천해야 한다면 4집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디있나요>(2016)를 권하겠다. 가장 다양한 장르적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재미있는 가사들이 빛난 작품이었다.
 

"나는 마치 콩을 젓가락으로 옮길 때처럼 
이모티콘 하나마저 조심스럽게 정했어 
나는 큰 결심을 하고서 보낸 문잔데 
너는 ㅋ 한 글자로 모든 걸 마무리해버렸어" 
- 'ㅋ'(2016) 중
 
 
 장기하와 얼굴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장기하와 얼굴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활동 당시 모습 ⓒ 두루두루AMC


장기하와 얼굴들은 비교적 방송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밴드였다. <무한도전>과 영화제에 초대받는 스타였다. 그러나 밴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무대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크고 작은 무대를 부지런히 오갔다. 언제나 록 페스티벌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는 단골손님이었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영미권 스타 못지않은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록팬들의 기차놀이는 끝날 줄을 몰랐다. 2년 전 한 록페스티벌에서 장기하가 했던 멘트가 열광의 현장을 설명한다. 

"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여러분이 불쌍해요."
 
아쉽게도 2019년 1월 1일이 되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로큰롤 여행은 멈춘다. 그 누구보다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밴드인만큼, 이들의 부재는 팬들에게 크게 다가올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번 음반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의미가 된다"고 단언했다. 밴드의 10년을 총 정리하는 5집 앨범은 오는 11월 발매될 예정이다.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연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연하고 있다. ⓒ 권우성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은 지난 9월부터 문화 공간 '모텔룸'에서 장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공연은 초소극장, 초밀착형을 추구한다. 30명의 관객만이 자리하고, 앰프와 스피커는 설치되지 않는다. 헤드폰이 있어야 밴드의 연주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고막 라이브'다. 밴드 활동을 마무리하는 방식도 비범한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헤어짐의 아쉬움에 슬퍼만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선 이들이 벌일 로큰롤 파티를 마저 즐길 때다.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 양평이형 하세가와 요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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