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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소품을 들고나온 국회의원들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매스컴의 조명을 받기도 하고,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소품 쇼를 벌인 의원은 차기 총선에서 낙선한다'는 속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있고, '그런 속설이 있기는 하지만, 항상 그랬던 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있었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고양이를 놓고 대전동물원 푸마 사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고양이를 놓고 대전동물원 푸마 사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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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품 쇼'의 선두 주자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그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총리실 국정감사에 벵갈 고양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지난 9월 동물원을 탈출한 퓨마를 조기에 사살한 목적이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띄우려는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데리고 나온 것은 퓨마를 닮은 고양이였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의 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손잡이 없는 맷돌을 들고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차단 시도가 어처구니없다'는 말을 하고자 위함이었다. 영화 <베테랑>에서 개차반 같은 재벌 자제로 등장하는 조태오(유아인 분)의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그걸 어이라고 해요. 맷돌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지면 ······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아예 소품을 몸에 걸치고 나온 의원들도 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의 문화재청 등에 대한 감사에서 한복을 입고 나왔다. 같은 위원회의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태권도복을 입고 등장했다.
 
한복 차림의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왼쪽)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및 소관기관 국정감사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인사하고 있다. 2018.10.16
 한복 차림의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왼쪽)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및 소관기관 국정감사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인사하고 있다. 2018.10.1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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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태권도복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태권도 공인 9단인 이 의원은 국감 시작 전 "지난 3월 본회의에서 의결한 '태권도 국기 지정법'이 이날부터 시행돼 그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문화계 산하기관 국정감사임에도 도복을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 이동섭 의원, 국감장에 태권도복 입고 등장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태권도복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태권도 공인 9단인 이 의원은 국감 시작 전 "지난 3월 본회의에서 의결한 "태권도 국기 지정법"이 이날부터 시행돼 그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문화계 산하기관 국정감사임에도 도복을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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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같은 곳에서 뜻밖의 서적이나 물건을 들고나와 질문을 퍼부으면, 발제자가 잠시 동안이라도 위축되기 쉽다. 상대방이 발표문을 다 파악하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발표자를 혼내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나온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제3자들의 눈에도 질문자가 대단히 많은 준비를 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그런 소품에 대한 정보는 질문자만이 갖고 있으므로, 처음 접하는 발제자는 그저 구경하는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끝나고 확인해 보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길을 끄는 소품이 발제자를 자극해, 다음 세미나 때 질문자가 역공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현장에서는 질문자가 우세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품은 질문자가 기선을 잡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텔레비전 들고 나온 국회의원... 당황한 KBS 사장 

21년 전인 1997년 10월 14일이었다.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의 KBS 국감장에 나온 홍두표 KBS 사장도 갑작스런 소품의 등장 앞에서 일단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살펴보고 시정하겠다'는 수준의 대답밖에는 내놓을 게 없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국민회의 최재승 의원이 텔레비전을 들고 나왔다. 그가 보여준 영상 자료는 한·일 양국의 TV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KBS가 방송 중인 일부 프로그램이 일본 TV를 표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인 KBS도 일본 방송의 표절에 앞장서고 있어 낯뜨겁다"며 그는 홍 사장을 공격했다. 1997년 10월 15일 자 <동아일보>는 최 의원의 비판을 이렇게 소개했다.
 
"최 의원의 질의에 따르면, KBS <가족오락관>의 한 코너  '고요 속의 외침'은 입 모양을 보고 단어를 맞춘다는 점에서 일본 NTV <매지컬 두뇌파워>의  '매지컬립'과 흡사하며, <퍼즐 특급열차>의  '역전 낱말퀴즈'도 후지 TV의 <평성교육회>와 비슷한 화면 구성을 보이고 있다.

또 KBS의 <특종 웃음대결>은 일본의 <TV 아사히 투고>의 사회자 및 심사위원 위치, TV 화면 속에 출연자의 얼굴이 비치는 작은 화면을 두는 것 등이 똑같이 운영되고 있다."
 
텔레비전을 소품으로 활용하는 최 의원 앞에서 홍 사장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시정하겠다는 말로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홍두표 KBS 사장은 이에 대해  '프로그램의 포맷은 국제적으로 비슷할 때가 많아 중복이 불가피하다'며  '그러나 내용에 대한 표절은 없도록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1992년 제14대 총선 때 전북 익산에서 당선된 최 의원은 1997년 국감 당시 재선 의원이었다. 차기 총선인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그는 3선에 성공했다. '국감 쇼 하면 낙선하기 쉽다'는 오늘날의 속설이 당시의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구가 아니라 전국구(비례대표) 당선이었다. 지역구로 출마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다.

그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로 출마했다. 이때는 25.5% 득표에 그쳐 2위로 낙선했다. 당선자는 74.5%를 얻은 열린우리당 한병도 후보였다.
 
1967년의 공보부 국정감사.
 1967년의 공보부 국정감사.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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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최재승 의원은 별다른 반격을 받지 않았지만, 1989년의 권노갑 의원은 거센 반격을 받았다. 평화민주당(평민당) 소속으로 1988년 제13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에 입성한 그는 1989년 10월 6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감사에서 소품을 들고 나왔다가 호된 경험을 치렀다.

그날 권 의원은 '국방부가 시중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물건을 구입해 국고를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할 목적으로 그는 불도저용 오일펌프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시중에서 19만 원에 살 수 있는 오일펌프를 국방부가 49만 9천 원에 구입했다는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식의 예산 낭비가 많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오일펌프를 들고 나간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대로 끝났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국방부의 예산 낭비가 부각되는 선에서 문제가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소품 II'를 제시한 게 화근이 됐다. 두 번째 소품은 오일펌프 구매 영수증이었다. 실제로 19만 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준비한 소품이었다.

권 의원의 공격은 국방부를 자극했다. 6월항쟁 2년 뒤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군부 출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였다. 국방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날부터 반격에 착수했다. 즉각 조사단을 꾸린 뒤, 권 의원의 오일펌프 구입 경위에 대한 확인 작업에 나섰다.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권 의원이 도리어 공격을 받는 양상이 벌어졌다.

'불도저용 오일펌프' 때문에 역공 받은 권노갑
 
권노갑 전 의원(왼쪽).
 권노갑 전 의원(왼쪽).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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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조사 결과, '소품 II'는 변조물이었다. 원래의 영수증에 있었던 '중고'라는 글자가 지워진 변조물이었다. 권 의원이 국감장에서 보여준 '소품 I'이 신품이 아니라 중고였던 것이다. 19만 원에 구입한 중고 물품을 국감장에서 내놓고는 '19만 원에 살 수도 있는 신품 오일모터를 국방부가 49만 9천 원에 구입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국방부는 판매업체 사장의 진술을 확보한 뒤 맹공을 가했다. 영수증에 적힌 '중고'라는 글자가 지워졌다는 점, 중고 오일펌프에 페인트를 덧칠해 새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권 의원 측은 '의원이 오일펌프 구입을 지시한 것은 맞지만, 중고품 구입과 영수증 변조는 보좌관의 소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보좌관 2명을 고발하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했다.

사실, 권 의원의 주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국방부가 예산을 낭비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고를 신품으로 소개해 국감장에 내놓은 게 밝혀짐에 따라, '국고 낭비'에서 '가짜 소품'으로 초점이 바뀌고 권 의원이 역공을 받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소품 없이 그냥 말로 했다면, 국방부가 반격을 가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소품 때문에 호된 경험을 하긴 했지만, 권노갑 의원은 다음 총선을 무사히 통과했다. 평민당이 민주당으로 바뀌 뒤인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최재승 의원처럼 전국구 당선이 아니었다. 목포 지역구에서 82.0% 득표율을 기록해 7.1%에 그친 민주자유당(민자당) 배종덕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평민당 텃밭에서 출마했기에 낙선되기도 힘들었겠지만, 오늘날의 소품 낙선 속설이 당시의 그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태그:#국정감사,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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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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