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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유승
 
"안녕하세요? 오늘 이 자리는 아름다운 꿈, 함께하는 기적을 이뤄가는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와 세상을 향한 마음의 울림을 간직하고 바다를 건너 온 '하음앙상블'의 교류연주회장입니다.

두 단체 모두 음악치료에서 시작되었고, 중증 장애인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는 문화복지를 넘어 새로운 일자리모델로까지 성장한 단체이고, '하음앙상블'은 걸음마를 떼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면서 우리도 뭔가 손에 잡히는 게 없을까 하고 기웃거리는 차이가 있다는 정도가 아니겠는지요? 자, 그럼 사단법인 하음 대표이사의 초대의 글을 인용하면서 오늘 교류의 장을 열어볼까합니다."


"소리와 소리가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맺어 앙상블을 이루는 이 자리가, 더 없이 아름다운 자리이기를 바랍니다. 더 없이 소중한 자리이기를 바랍니다."

시작이다. 조금은 긴장도 되지만 그런대로 무난히 오프닝 멘트를 한 듯하다. 내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오늘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와 '하음앙상블'의 교류연주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가? 

광명시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와 교류연주가 성사되었을 때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보다 6년 정도 먼저 창단해서 그 수준이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보다 이미 새로운 일자리모델로까지 성장한 단체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하음앙상블'은 아직 도내 장애인식개선사업 연주활동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수준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벌써 200회의 연주를 넘어섰지만 우리는 50여회에 그쳐 있다. 정말이지 많은 것을 배워올 수 있는 환상의 기회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우리 발달장애 아이들이 먼 길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벌써부터 눈치를 채고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극복을 해야 하기에 데리고 가야만 한다.

서울에서 음대를 다니는 아이도 두 명이 있었고 고등학생도 몇 명 되지만 모두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다니는 아이들도 문제가 되었다. 추석연휴가 끝나는 날 바로 이어지는 행사라서 회사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우리 부모들의 동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부모가 무슨 관계가 있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아들이 가는 곳에는 늘 보호자가 함께 하게 된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친구들이라 부모들이 대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 또한 주장하게 된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왜 장애인의 권리행사를 부모가 대신하느냐고, 당신들이 왜 나서느냐고.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들의 문제행동에는 부모를 탓한다. 우리는 늘 부산한 공간에 있으면서 외롭다. 악기는 직접 가지고 타야만 했다. 첼로같이 큰 악기는 아예 좌석 하나를 더 예약해야 한다. 안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일 텐데 어떻게 행사를 치렀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자 큰 문제없이 견뎌준 우리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어떤 친구는 손에 땀이 흥건했다. 평소 같으면 소리도 지르고 했을 텐데 단체행사라는 것을 의식하는 듯 잘 참아주었다. 

버스가 나와 있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예술의 전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이야기하고 꿈꾸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꿈의 무대였다. 언젠가 이 예술의 전당의 무대에 올라 가슴 속에 꽁꽁 저미어 두었던 소리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면서 세상과 앙상블을 이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꿈을 꾸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떡갈비를 점심으로 먹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듯했다. 음식이 맛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예술의 전당이라는 품격에 맞는 메뉴로 우리 모두를 대접하는 느낌이 와서 참으로 좋았다.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메뉴 때문에 고심하던 사무국장의 정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문득 같이 못 온 단원들과 부모들이 떠올랐다. 이 소중한 공간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말로는 전할 수 없을 터였다.

예술의 전당 맞은 편 쪽에는 마치 먹거리 골목처럼 음악하고 관계된 많은 가게나 학원, 그리고 레슨실이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미래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었다. 우리가 찾는 곳도 '드림위드 앙상블(Dream with Ensemble)' 연습실이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에 오르니 누구보다도 단원 부모님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이 참으로 따뜻해서 연습실 바닥에 편안하게 앉아 버렸다.

'드림위드앙상블'은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 클라리넷 연주팀이다. 매일 아침 1시간 동안 기본연습을 시작해서 종일 혹독한 연습으로, 장애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넘어, 타인과의 다름을 자신만의 특별함으로 연결해 '앙상블의 예술'을 이루어 냈다고 한다. 2015년 사회적 협동조합, 전문예술법인으로 인가를 받은 '드림위드앙상블'은 2016 뉴욕TV필름페스티벌 금상, 2016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ABU 퍼스펙티브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멀리 제주도에서 찾아 간 우리를 위하여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연주해 주었다. 단지 연습임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하는 이들이나 듣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누구 하나 흐트러짐 없이 그들의 선물을 받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선율에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감동이 그 공간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하나는 '연습'만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였다. 장차 아이들의 경제적 자립도, 또한 그들의 자존심도, 그래서 그들에게 가는 행복도 우리 '하음앙상블'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리 부모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 또 한 가지였다. 우리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갈 수 있는 행복의 정도를 우리 부모의 평가절하로 줄이거나 없앨 수는 없다. 아이들보다 먼저 꿈꾸고 많은 욕심을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함께 간 부모님들의 눈빛에서 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보았다. 

'드림위드앙상블'에서 나온 우리는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처음에 김용철 기획이사의 제안에,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을 간다고?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서울까지 가서 그 흔한 놀이동산에 가는 것하고는 다른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작품'이었다. 대성공이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희한하게 LG 트윈스 펜이 많은 우리 부모들이었고, 마침 그 날은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중요한 경기였다. 우리는 LG 트윈스 마케팅부서에 연락을 했다. 40장의 무료티켓을 제공하고 3회 브레이크 타임 때 뭔가를 하기로 했다.

"제주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음앙상블, 잠실구장을 찾다."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띄워주기로 했다. 마침 친형제 같이 지내는 윤성형과 은석형이 섭섭하다며 아이들의 LG 트윈스 야구 모자를 20개나 사서 우리를 찾아 주었다. 작은 돈이 아니었을 텐데 고맙고 미안했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두 형도 우리 하음앙상블 식구가 된 것이다. LG 트윈스 야구 모자를 쓴 녀석들이 치어리더를 따라서 흉내를 내는가 싶더니 제법 응원을 제대로 한다. 역시 음악을 하는 아이들이라서 우리 어른들보다 적응이 빨랐다. 난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 치킨을 먹는 것을 보면서 조르거나, 재미없으니까 빨리 가자고 보챌 줄 알았는데, 야구장 분위기에 완전히 젖어들었고 오히려 일부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슬슬 갔으면 했다. 

LG가 9-1로 승리를 했다. 우리를 도와주셨던 LG트윈스 마케팅 고동현 리더에게서 문자가 왔다. 

"단원들의 기가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나 봅니다^^ 기분 좋은 관람이셨길 바라며 내일 연주회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시길 빕니다."

참으로 고마웠다. 무료티켓을 공급해줘서가 아니다. 한 번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어서였다. 이럴 때마다 우리 장애인 가족은 큰 힘을 얻는다. 우리 부모들만 아이들을 키우는 줄 알았는데, 함께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고무되어 따뜻한 마음으로 숙소로 왔다.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든 부모들이 한 방으로 모여 맥주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상기된 얼굴로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의 느낌과 의지를 말하는데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진다.

"연습만이 살 길임을 알았어요."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의 일자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표를 비롯한 이사진들이 꽤 뛰어다니는 듯싶었다. 아이들이 연주를 직업으로 한다?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하지만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오늘 만난 '드림위드앙상블'만 해도 우리의 꿈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도 오로지 연주를 위해 '출근'할 수 있다.

드디어 교류연주날이다.

호텔에서의 아침은 부산하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려 든 시간에 식사를 할 수밖에 없어서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희한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다. 평소 같으면 짜증을 내곤 했을 텐데 전혀 불만을 안 나타낸다. 아하! 이 친구들이 '여행'을 피부로 느끼는구나! 이런 것이야말로 여행에서 얻는 값진 경험이 아니겠는가?

아침식사를 하고 교류연주 장소인 광명시 장애인 종합복지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부모님들과 직원들이 나와서 환대를 해주셔서 오히려 적응이 안 되어 당황했다. 교류연주를 할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자기들만의 악기를 들고 행사장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연주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그분들에게 우리도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장소가 광명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초대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손님이 된 느낌이었다. 그것도 시작부터 끝까지 귀빈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사회를 맡은 나부터 실수 없이 잘 해야 한다.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단을 운영하고 있는 광명장애인 종합복지관 관장이신 김수은 성삼의 베로니카 수녀님의 인사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아름다운 꿈, 함께 하는 기적'을 진솔하게 풀어내려 가신다. 행사 시작 전에 교류협약서에 서명을 하실 때 만났을 때와 무대에 올랐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는 차분함으로 행사의 서막을 열어 주셨다. 

드디어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단이 신봉주 지휘자와 함께 입장을 했다. '다소니'란 말의 뜻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말이라고 설명하면서 소개를 했다. 

먼저, '거룩하신 권능의 주'와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를 연주하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가사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하늘은 파랗고
마음으로 꿈꾸면 정말로
이루어지는 곳이지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새들이 날아다녀요
그러니 왜 왜 나라고 날 수 없겠어요?

무지개 너머에 귀여운 파랑새들이
행복에 잠겨 날아다니는데
왜 왜 나라고 날 수 
없겠어요?(Why oh why can't I)


마치 우리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두 곡이 끝나자 지휘자 선생님이 연주하는 아이에게 오더니 귓속말로 뭔가 이야기를 하고 갔다.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지휘자를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다시 연주가 이어졌다. '비발디 바이올린 콘체르토 1, 3악장'과 '카르멘 스위트'였다. 그런데 지휘자 선생님이 다시 연주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의자에 걸쳐져 있는 단원의 자켓을 치워주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관객 모두를 환상의 공간으로 몰아놓는 훌륭한 연주와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행동.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휘자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결코 우리 아이들이 장애라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연주하는 아이들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그렇게 사회자인 내 마음을 전했다.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런데 다음 곡을 소개하는데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고맙게도 우리 부지휘자 선생님이 급히 오더니 바로 잡아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당황했을 상황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주회장의 분위기는 벌써 가족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단은 마지막으로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과 '베토벤 바이러스'를 우리에게 선물하고서는 내려갔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도, 제주도에서 올라온 우리 부모님들도, 이들의 훌륭한 연주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자인 내가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단체 간의 교류협약식을 거행하였다. 

이제 두 단체는, 각 기관의 장애인 문화예술 관련 상호 업무교류 및 공동이행을 하고, 오케스트라단 활동을 위한 상호협력을 하며,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전문인력의 상호교류를 하게 되고, 각 기관을 위한 연주 기부 및 연주 관람 기회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하음앙상블의 대표인 송수연 단장의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우물 밖을 떠난 적도 없었고, 특별히 친구도 없었던 저희를 위한 제주 메세나 협회의 지원은,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와 교류연주를 통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벅찬 이름인 여러분과 음악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저희 '하음앙상블'은 언제까지나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를 기억하겠습니다." 

단장의 인사가 끝나자 홍상기 지휘자 선생님을 선두로 우리 하음앙상블이 입장을 했고, 다소니 식구들과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맞아주었다. 베토벤 교향곡 '합창' 가운데 마지막 악장인 'Ode to joy(환희의 송가)'와 '아리랑'에 이어, 겨울왕국의 주제곡 'Let it go'와 '크시코스의 우편마차' 연주가 있었다. 관객들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박수를 치면서 우리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광명시까지 와서 제법 큰 무대에 올라 큰 문제행동 없이 연주를 하는 우리 '하음앙상블' 단원들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무렵 연주는 벌써 마지막 두 곡을 남겨 놓고 있었고, 나도 사회로서의 내 역할을 끝낼 때가 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와 같이 장애는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들 때문에 음악을 알기도 합니다. 아이들로 인해서 많은 곳을 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와 함께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만남'과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두 곡이 연주되는 동안 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그런데 다 끝난 줄 알았던 연주회장이 흥청대고 있었다. 앵콜곡인 '사랑으로'를 연주했는데도 관객들의 "앵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휘자 선생님이 분위기에 맞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연주해주자 관객들은 일어서서 춤을 추기도 하면서 연주회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관객들이 너무 고마워서였을까? 시나리오에도 없이 지휘자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난 내 역할도 다 안하고 내려와 버린 느낌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두 오케스트라의 교류연주회장이 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이 날의 흥청거림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다음의 교류연주회는 오늘처럼 축제 분위기일지, 아니면 한층 커져버린 연주솜씨를 뽐내느라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이 될지, 정말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궁금해졌다.

연주회가 끝나고 대표이사는 광명복지관 식구들과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를 찾아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연주회장을 찾아준 광명시민들과 광명 장애인 종합 복지관 가족들에게도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우리 식구들 뒤로도 많은 분들이 찾아 주었다. 가족친지들과 부모님 친구들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연주회장 자리를 메꿔주었고, 색소폰 재환군의 백석예술대학 선생님이랑 5중주 학부모님들, 도우미겸 선생님 역할을 하는 황선생님도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난 재환이가 어떻게 서울에서 혼자 학교를 다닐까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1박2일을 함께 하는 황선생님을 보니 다 풀렸다. 단장님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겠지만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석형이 어제에 이어 거기까지 와줘서 내게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연주회장을 나와 우리가 마련한 점심 만찬 자리로 이동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악기별로 나누어 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꿈꾸고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시선들이 따뜻하게 교차되고 있어서 너무도 보기가 좋았다. 중앙 식탁에는 집행부와 지휘자 선생님들이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늘의 '다소니 챔버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부모들이 어떻게 힘을 실었고, 지휘자 선생님들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어떻게 도왔는가를 이야기 했다. 그리고 우리를 격려했다.

'하음앙상블'의 내일이 분명히 긍정적으로 펼쳐질 것임을 자신했다. 아! 우리는 또 하나의 부채를 떠안았다. '할 수 있다!'는데 못하거나 안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김없이 사무국장의 정성어린 선택인 함박스테이크가 점심메뉴로 식탁에 올려 졌고 다들 행복한 점심을 먹었지만 누구하나 먼저 일어서서 가는 사람이 없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교류연주라는 것이 이렇듯 서로를 친숙하게 만드는 하나로 묶어 놓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다음에는 제주도에서 또 만나자는 대표이사의 인사에 모두들 못 이기는 듯 일어섰다. 그리고도 서로의 손을 못 놓는다. '다음'이 분명히 있어야 될 것이라는 다짐이 생겨났다.

관장수녀님을 비롯한 복지관 식구들, 그리고 다소니 단원들과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모두들 상기된 얼굴이었고, 그 한 쪽에는 새로운 각오로 거듭 나겠노라는 다짐도 보이는 듯 했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인인 우리 아이들이 비장애인에게 한 발 다가서 '함께 가는 내일'에는 장애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교류연주였다.

명절 전 날, 내년 사업계획을 가지고 도청을 찾았을 때, '발달장애와 음악'이라는 함수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난감해 하던 담당자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일반적으로 발달장애를 위한 지원은 주간보호시설이라든가..."

그러자 다시 대표이사께서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한다.

"발달장애 가운데 자폐성장애가 많은데, 자폐(自閉)라는 병이 스스로를 닫아 성을 쌓아버리는 거잖아요? 이 성(城)이 난공불락의 성이거든요. 그런데 보통 시설이라고 하면 우리 아이들을 어떤 공간에 있게 하는 건데, 이 공간 역시 또 다른 성이잖아요? 성 위에 또 다른 성을 쌓아 마치 우리 아이들을 가두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네요. 우리 아이들이 사람들을 찾아 연주를 한다는 것은 그 반대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20여 명의 단원들이 각자 다른 악기로 연주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에게서 '나도 할 수 있다!'며 힘을 얻고,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사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우리를 받아 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던 담당 직원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좋은 기획입니다. 어렵겠지만 저희도 회의를 해서 지원할 방도를 연구해 보겠습니다. 열심히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 문턱이 높은 줄로만 알았던 곳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힘을 실어주는구나 싶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행복했다. 김포공항에서 승현이가 단장에게 물었다. 

"단장님! 우리 일본 교류연주 언제 가요?"

'빵!' 터져버린 우리는 이제 해외를 꿈꾼다. 우리의 또 다른 꿈을 위한 새로운 기회, 그 꿈이 이루어질 사회를 만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허유승씨는 사단법인 하음 장애인식개선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발달장애인오케스트라, #하음앙상블, #다소니챔버오케스트라, #교류연주회, #장애인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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