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와 아내 이석순씨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와 아내 이석순씨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가 만든 와인들. 레이블이 없는 것은 실험용이기 때문이다.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가 만든 와인들. 레이블이 없는 것은 실험용이기 때문이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 와인기행] 김천 수도산 와이너리②에서 이어집니다

백승현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실험용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와인을 거의 20종 가까이 시음했다. 리슬링과 같은 외국 품종도 있고, 남향과 같은 한국 품종도 있었다.

그는 직접 재배한 산머루로 와인을 만들지만, 원료가 부족할 때는 수매를 하기도 했다. 문제는 직접 재배한 산머루와 수매한 산머루의 당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는 와인 제조용으로 산머루를 재배하지만, 수매한 것은 와인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직접 재배한 산머루만으로 와인을 만들려고 한다.

와인 제조용은 당도가 높아야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도가 응축될 수 있게 해야한다. 한 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당도는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백 대표는 열매 솎아내기를 하면서 당도를 극대화한단다. 그의 산머루 농장의 수확량이 다른 곳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이유다. 친환경 유기농 재배는 기본이다. 화학비료는 일체 쓰지 않는다.

이렇게 정성들여 산머루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면 무엇 하나. 판로가 없는 것을. 이 고민은 와이너리마다, 와인메이커마다 한다. 와인을 팔아야 다음 해에 와인을 만들 동력을 얻는다. 비용이든, 기운이든. 그에게는 한 가지 걸림돌이 더 있다. 드라이 와인을 고집한다는 것. 와인은 그래도 드라이와인이 최고라는 그의 신념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스위트와인을 선호한다는 것. 이 말은 시장성이 없다는 의미로 풀이가 가능하다.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와인은 스위트 와인판매가 주류를 이룬다. 일부 마니아들은 드라이와인을 찾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 산미가 깃든 달콤한 와인은 단맛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장점도 있다. 
 
와인숙성실에서 와인을 살피고 있는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와인숙성실에서 와인을 살피고 있는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2015년부터 광명동굴에서 시작된 한국와인 붐은 2018년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국와인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말까지만 해도 와인판매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와인메이커들이 많았는데, 2018년 하반기에 만난 와인메이커들은 와인판매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모든 와이너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와인을 많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와인메이커들에게 전해 듣고 있다. 와인 재고가 바닥나 팔 물량이 없다는 이야기도 여러 곳에서 들었다. 일부 와이너리는 설비와 건물 증축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영향 덕분에 한국와인에 관심을 갖는 소믈리에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수도산 와이너리는 이런 상황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백 대표의 설명이다. 백 대표는 크라테 와인을 시음을 하면 인상을 찌푸리면서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분이 상할 때가 많았단다. 그래서 와인행사장에 가면 와인부스를 아내 이석순씨에게 맡겨놓고 백 대표는 행사장 안을 돌아다닌다. 자신이 만든 와인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바늘이 되어, 송곳이 되어 찌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그냥 하릴없이 행사장 안을 떠도는 것은 아니다. 다른 와이너리의 와인들을 시음한다. 특히 대전국제와인페어에 참여했을 때는 외국의 와인들을 시음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와인과 맛과 향을 비교,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와인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했단다. 그 비교분석의 결과에 자신을 가진 것은 '아시아 와인 트로피' 수상으로 확인됐다.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카페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카페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카페 내부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카페 내부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저는 양심을 걸고 좋은 원료로 좋은 와인을 만들려고 해요. 내 대에서 크게 꾀부리려는 생각은 없어요. 돈을 알 벌면 안 벌었지. 와이너리를 내 대에서 성실하게 잘 유지만 시켜주면 나중에 애들이 보고 배워서 바른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해요." 

훗날 자식들이 이어받아 수도산 와이너리를 명품 와이너리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게 그의 목표다. 그러려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 한단다. 그런 그에게 은근한 끈기와 함께 장인정신이 엿볼 수 있다. 그 힘으로 15년 동안 지속해서 와인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장인정신을 고집하는 것도 좋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와인도 만들어야 하는 게 와인메이커의 숙명이 아닐까? 그라면 어떤 와인이든 잘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백 대표는 그런 와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달콤한 맛이 깃든 로제와인과 향이 일품인 산미가 스며있는 화이트와인도 생산한다. 소비자 반응도 좋단다.

이런 그에게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실버메달 수상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좋은 일은 연이어 일어난다. 올해 10월 11일부터 열린 '영동와인축제 와인품평회'에서 대상인 다이아몬드 상을 받았다. 그의 험난하고 외로운 도전이 드디어 빛을 보면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3일, 전화로 대상 수상 소식을 알려온 백 대표는 "와인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좋은 소리를 못 들었는데 대상을 받아서 기쁘다"면서 "열심히 하니 인정을 해주는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수상소식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당연히 아내 이석순씨다. 백 대표는 기뻐하는 아내를 보는 게 좋단다.

"상을 타니 좋아요. 전에는 와인을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좋은 원료로 만든 좋은 와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잖아요. 와인을 대충 만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남편이) 워낙 꼼꼼한 사람이라 무엇을 하든 확실하게 한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석순씨의 말이다. 석순씨는 수도산 와이너리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관리하면서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 석순씨는 김천에서 체험마을 사무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와인시음장을 조성할 때 큰 힘이 되었다. 이런 석순씨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하나 있다. 2011년에 청와대에 편지를 써서 와인을 납품한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에서 나서서 청와대에 와인을 납품을 하게 해주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어서 제가 직접 청와대에 편지를 썼어요. 농민의 땀방울이고 눈물이 와인이니 관심을 갖고 드셔 보시라고. 샘플도 보냈더니 나중에 납품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천시에서 놀라서 어떻게 청와대에 와인을 넣게 되었는지 물어왔단다. 
 
산머루에 대한 설명을 하는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산머루에 대한 설명을 하는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산머루
 산머루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수도산 와이너리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은 역시 크라테 와인의 원료인 산머루가 재배되고 있는 산머루 농장. 백 대표는 5천 평의 산머루 농장에서 매년 5톤 정도의 산머루를 수확한다. 이 가운데 80%가 와인제조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생과와 즙으로 판매한다. 10월은 산머루 수확기다. 백 대표가 알이 많이 달린 송이보다는 알이 적게 달린 송이가 더 당도가 높아 와인제조용으로 좋다고 알려준다.

태풍 콩레이가 쏟아 부은 비 때문에 산머루 수확 시기는 늦춰졌다. 비가 오면 산머루가 습기를 잔뜩 빨아들여 당도가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작황은 나쁘지 않단다. 대신 산돼지, 고라니, 새들과 전쟁을 벌였단다. 그 때문에 농장에 얇은 그물막을 친다. 그렇지 않으면 새 떼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농장 주변을 그물막으로 둘러싼 것은 산돼지와 고라니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해발 500미터가 넘는 산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친환경으로 키운 산머루로 와인을 빚는 생활은 외부인이 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그는 와인 제조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 농사도 같이 짓는다. 매년 고랭지 배추농사를 지어, 절임배추를 파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와인에 완전히 미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잘 익은 산머루.
 잘 익은 산머루.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여기서는 안 하는 게 없어요. 벼농사, 배추, 무, 옥수수, 고구마 등등. 와인에만 미칠 수도 없고, 농사에만 미칠 수도 없어서 힘들어요. 처자식이 있잖아요. 와인만으로 생활이 안 되니 농사를 지어야 해서요. 와인 만들어야지, 농사일 해야지, 와인 판촉행사 하러 나가야지, 와인 홍보해야지, 머루도 따야지, 와이너리에 오는 손님도 받아야지,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이런 그에게 소원이 있다. 세금을 아주 많이 내고 싶다는 소원. 살다 살다 세금을 많이 내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처음 만난다. 그가 내고 싶은 세금은 1억 원. 그것도 와인을 팔아서. 그 소원은 와인을 많이 팔아서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싶다는 것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그의 소원은 충분히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꼭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태그:#백승현, #수도산와이너리, #크라테와인, #한국와인, #산머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