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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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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유일한 와이너리인 수도산 와이너리의 백승현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2017년) 9월, 제주에서였다. 그때, 제주의 히든클리프 호텔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와인 페어'가 열렸다.

우리나라 와인 판매시장은 수입와인이 주류를 이룬다. 한국와인은 존재감이 거의 없을 뿐더러 판매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와인 판매는 국내 와인판매의 3~4% 정도로 추정되는데, 일부에서는 그 정도조차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한국와인은 수입와인과 비교 당하면서 폄하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광명동굴에서 한국와인 판매를 시작한 뒤부터였다. 한국와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고, 판매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한국와인과 한국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평소 한국와인에 관심을 갖고 있던 최정원 소믈리에가 자신이 근무하던 제주 히든클리프 호텔에서 국내 호텔 최초로 '한국와인 페어'를 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14개의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가 수도산 와이너리였다.

그때 처음 백승현 대표와 아내 이석순씨를 만났다. 그 전에는 그 어떤 와인행사에서도 백승현 대표를 만난 적이 없어서 수도산 와이너리가 양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 와이너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백 대표는 김천에서 2004년부터 와인을 만든 내공이 있는 와인메이커였다. 제주에서 처음 만난 이후, 와인축제 행사장이나 한국와인생산협회 총회 등에서 그를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초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와인 맛이 범상치 않더라니.  
 
백승현 대표가 만든 크라테 와인
 백승현 대표가 만든 크라테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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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직접 재배한 산머루로 만든 크라테 와인은 상당히 깊은 맛을 지닌 잘 만든 와인이었다. 은근한 매력을 지닌 크라테 와인처럼 백 대표 또한 만나면 만날수록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수도산 와이너리를 방문, 그가 만든 와인들을 시음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가 나누고 싶어졌다.

수도산 와이너리 방문 일정을 잡은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8월 31일부터 대전에서 열렸던 '2018 대전국제와인페어'였다. 백 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고,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도 크라테 와인을 출품, 실버메달을 받았다. '아시아 와인 트로피'는 세계 3대 와인품평회 가운데 하나로 전 세계의 와인들이 출품된다. 여기서 상을 받았다는 것은 와인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행사장에서 만난 백 대표는 수도산 와이너리에서 10월 6일에 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렸다. 호기심이 생겼다. 수도산 와이너리가 궁금했고, 그곳에서 열리는 음악회도 궁금했다. 그래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음악회에 맞춰 10월 5일~6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음악회 전날 백 대표와 와이너리를 심층 취재하고, 다음날 느긋하게 음악회를 즐길 작정이었다. 
 
수도산 와이너리
 수도산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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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기대가 컸던 '수도산 와이너리 음악회'는 때맞춰 한반도를 방문한 태풍 콩레이 때문에 취소됐다.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콩레이는 10월 5일에 김천 일대에 엄청난 폭우를 쏟아낸 뒤, 다음 날 오후에 조용히 물러났다.

경상북도 김천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KTX 광명역에서 KTX를 타면 김천구미역까지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 이렇게 가까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왔을 텐데, 하는 생각은 김천구미역으로 마중 나온 백승현 대표의 트럭을 타고 수도산 와이너리로 향하면서 바뀌었다.

수도산 와이너리가 있는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는 김천시내에서 4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이어져 마치 산이 굽이쳐 흐르는 강원도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백 대표가 전에는 가는 길이 딱 하나밖에 없었으나, 셋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길이 험해서 겨울에는 눈이 오면 꼼짝도 못해요. 미끄러지거든요.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김천이 이렇게까지 두메산골이었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더니 백승현 대표가 말했다.

"여기가 백씨 집성촌이에요.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서 피난을 왔을 정도니 얼마나 산골이었겠어요. 그 때부터 주욱 백씨들이 모여서 살았어요."

백 대표는 수원 백씨니 수원에서 왔나, 하면서 웃는다. 와이너리가 깊은 산골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 자연 풍광이 빼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발 500미터 되는 높은 곳에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다. 그래서 수도산 와이너리가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을 폭우가 쏟아지는 산길을 달리느라 심하게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했다. 
 
수도산 와이너리
 수도산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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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시음장 내부.
 와인시음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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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와이너리는 와인제조공장, 와인시음장, 와인카페, 와인저장고 등을 갖춘 제법 규모가 있는 와이너리였다. 소규모 농가형 와이너리를 생각했다가 예상 외로 큰 규모를 보고 놀랐다. 이런 시설을 갖춘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게 백 대표의 귀띔이다. 특히 와인시음장은 작년에 새롭게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새롭게 단장한 와인시음장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몇 해 전, 백 대표의 아버지가 소를 10마리를 키웠다. 사육두수를 늘이려고 축사를 지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와인시음장이다. 하지만 소들은 축사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쏟아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모조리 묻혀 버렸다고 한다. 주인을 잃은 축사는 3년 가까이 비어 있었다. 그걸 백 대표가 와인시음장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태풍 콩레이가 몰고 온 폭우가 쏟아내는 거친 빗소리를 들으며, 백 대표와 마주앉아 그가 만든 와인을 마시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의 와인제조 역사는 예상대로 쉽지 않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2017년에 한국와인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초짜에 가까운 와인메이커인 줄 알았던 백승현 대표는 2004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농가형 와이너리들은 와인 제조 역사가 길어야 10년 안팎인데 비하면, 수도산 와이너리의 역사는 긴 편에 속한다.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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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왜 시작했나?

"서울에서 있다가 2001년에 귀농했어요. 직장생활이 적성에 안 맞아서 못 하겠더라고요. 7남매의 막내인데, 농사지으면서 속 편하게 살자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그렇게 시작된 귀향이, 귀농이 그를 와인의 길로 이끌었다. 인생이란 언제 어떤 변수가 작용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모른다. 그 역시 그랬다.

[대한민국 와인기행] 김천 수도산 와이너리②로 이어집니다.

태그:#백승현, #김천, #수도산와이너리, #크라테와인, #한국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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