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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임시 거처로 삼은 집은 한옥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한옥 대수선의 역사로 볼 때 임시 거처로 삼은 이 집은 거의 원조에 가깝다.

이 집의 주인이 아마도 1930년대 지어졌을 것이 분명한, 거의 쓰러져 가던 이 집을 사서 새로 고쳐 지은 것이 2010년이니 벌써 8년쯤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내 주변에 한옥에서 산다거나, 다 쓰러져 가는 집을 고쳐서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커녕 엄두조차 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경복궁 옆 서촌 골목에 지금은 이렇게 수선한 한옥이 많지만, 이 집이 고쳐질 때만 해도 매우 드문 풍경이었다. (원본 사진에서 주소 등을 지우고 좌우를 잘라냈다.)
 경복궁 옆 서촌 골목에 지금은 이렇게 수선한 한옥이 많지만, 이 집이 고쳐질 때만 해도 매우 드문 풍경이었다. (원본 사진에서 주소 등을 지우고 좌우를 잘라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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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집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가 이 집을 고쳐 살면서 어떤 꿈과 계획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그가 한옥을 고친 뒤 이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오래된 한옥을 이렇게 고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여러 사람이 하게 되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내가 '서촌 성주'라 부르는 남자

2010년, 완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가 오래된 한옥을 고쳐 살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무척 기발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8년쯤 후에 내가 한옥을 고쳐 짓게 되고, 잠시이긴 하지만 이 집에 머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동안 나는 이 집의 주인을 '서촌 성주'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당시 내 눈에 이 집은 한 채의 아담한 성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침범 당하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확보한 그는 그래서 '성주'였다.

경복궁 옆 서촌에 이 집을 고쳐 짓고 사는 그의 일상은 그림 같았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한옥에 들어앉아 지내는 일상은 그대로 그냥 그림이었다. 홀로 있을 때도 그림 같지만, 이 집을 무대로, 배경으로 그를 둘러싼 주위의 예술가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칠 때도 그림 같았을 것이다.  

집은 사람의 지속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단독주택은 더 그렇고, 한옥은 더 그렇다. 밤낮으로 일하러 다니는 그가 한옥을 세심히 살피며 사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언젠가부터 세입자에게 이 집을 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 세입자가 나가고 다음 세입자가 정해질 때까지 비어 있는 그 타이밍에, 임시 거처가 필요한 내가 들어가 머물게 되었다.
 
8년쯤 전에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런 곳에서 산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8년쯤 전에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런 곳에서 산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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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주인은 가급적 전통의 방식을 고수했고, 일체의 군더더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니 그 고집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집의 주인은 가급적 전통의 방식을 고수했고, 일체의 군더더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니 그 고집의 진가가 드러난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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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열고 8년여 만에 들어와본 이 집은 놀라울 정도로 여전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이 집만 비껴가지는 않았을 터. 이 집에도 세월은 내려앉아 있었다. 온통 새것으로 반짝거리던 집은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 바람과 비와 눈과 더불어 사는 동안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이 집에 쌓인 시간의 흔적은 오래 되어 보일지언정 낡고 허름해 보이지 않았다. 곱게 나이든 초로의 신사 같은 느낌이었다. 마루의 색은 변하고 귀퉁이는 닳기도 했지만 나무에는 사람의 기척이 쌓여 반들반들 윤이 나 있었다. 문살에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 앉았으나 창호지만 바꾸면 방금 세수를 마친 말간 얼굴이 되었다. 

나무와 흙, 종이로 만들어진 공간은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았다. 나는 여전히 한결같은, 아니 이전보다 더 깊은 분위기를 품고 있는 이 집을 둘러보며 나의 집에 장차 내려앉을 시간을 떠올렸다. 지금 한창 지어지고 있는 나의 집 역시 그럴 것이다. 지금도 좋고,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좋을 것이다. 나는 서촌의 임시 거처에서 지내는 날들이 한옥살이의 예행 연습처럼도 여겨졌다.
 
세월의 더께가 집 곳곳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오래된 것이 곧 쇠락은 아니다. 나무에 시간이 더해지니 그 자체로 멋스럽다.
 세월의 더께가 집 곳곳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오래된 것이 곧 쇠락은 아니다. 나무에 시간이 더해지니 그 자체로 멋스럽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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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갈라지고 쪼개질지언정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무는 갈라지고 쪼개질지언정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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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이 어떻게 사나 싶더니, 필요가 없더라

그러나 낭만은 낭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사 후 가장 먼저 맞닥뜨린 건 바로 주차난이었다. 이 집은 좁긴 했지만 대문 바로 앞에 차를 세울 공간이 있긴 했다. 그런데 이 공간에 사유지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고, 여기에 차를 세우려면 자동차 한쪽 바퀴가 그 땅에 걸쳐질 수밖에 없었다. 

구구한 사정이야 생략하고, 결국 우리는 몸은 서울에 있으나 차는 살던 아파트 단지에 당분간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서울 주택가의 주차 문제는 훨씬 심각했다. 아파트 단지에 차를 세워놓고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앞으로 차 없이 어찌 지내나, 걱정이 컸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 막상 살아보니 차가 없어도 거의 불편함이 없었다. 광화문 한복판 대중교통의 편리함은 경이로웠다. 그동안은 집 가까이에는 편의점밖에 없어서 장을 보려면 대형마트에 차를 끌고 다녀야 했다. 신도시 안의 다른 동네에 가는 것도 차 없이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서울 시내 어디든 지하철과 버스 한두 번만 갈아타면 쉽게 갈 수 있었고, 대형마트까지는 아니어도 편의점보다는 큰 슈퍼마켓도 가까이에 있어 일상적인 장보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없으면 큰일 날 것 같던 자동차가 오히려 짐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웃들과의 관계 역시 매우 생경했다. 이사 오기 전 살던 아파트에서 7~8년을 살았지만, 이웃이라고 할 만한 관계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골목길을 오가다보니 자주 만나는 얼굴이 있게 마련이고, 주차 문제로 도움을 받은 어르신과는 며칠 지나지 않아 친근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도 되었다. 

인사를 주고 받지는 않아도, 우리가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 동네분들이 대충 다 아는 눈치였다. 나는 상대방을 모르는데 상대방은 내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골목길을 품고 사는 '이웃'과의 일상을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 근처 사는 청년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도때도 없이 들고 났다. 처음에는 한밤중, 새벽 가리지 않고 들리는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거슬렸는데, 그의 들고나는 것에도 일종의 규칙이란 게 있고, 그 규칙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이후에는 차차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몇 시쯤 되었나보다, 가늠할 정도로 익숙해지기도 했다. 

이 집 벽과 저 집 담이 거의 붙어 있는 탓에 밥상에 숟가락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오늘 저녁에는 어떤 메뉴가 밥상에 올라가는지 냄새로 짐작할 수 있게도 되었다. 서울 한복판으로 이사를 왔는데, 오히려 어릴 적 살던 마을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울 대표 명소 중 한 곳이다보니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가려고 슬리퍼 끌고 머리 질끈 묶고 나가다가 멋지게 차려 입은 커플이 사진 찍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란 일도 있다. 어느 주말 점심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은 밥 먹으러 가는 식당 앞에 기나긴 줄이 늘어선 걸 보며 여기가 어디라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주민도 아니고, 여행자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경계에서 살아본 서촌은, 골목을 나누며 사는 일상은 여러모로 매우 즐거웠다. 
 
한지 도배를 새로 한 날. 이제 막 세수를 마친 것처럼 말간 얼굴이다.
 한지 도배를 새로 한 날. 이제 막 세수를 마친 것처럼 말간 얼굴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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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담은 옆집과의 경계선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한옥의 담은 옆집과의 경계선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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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의 디테일. 오래된 기와를 그대로 얹어 사람이 하나하나 쌓고 이어 완성한 것.
 담장의 디테일. 오래된 기와를 그대로 얹어 사람이 하나하나 쌓고 이어 완성한 것.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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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년쯤 전의 한옥 현장. 어지럽고 복잡한 현장에서 아름다운 한옥이 완성된다. 투박한 손끝에서 집이 만들어진다.
 지금으로부터 8년쯤 전의 한옥 현장. 어지럽고 복잡한 현장에서 아름다운 한옥이 완성된다. 투박한 손끝에서 집이 만들어진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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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어진 이 집도 2018년 지어지는 나의 집도 사람이 손으로 짓는다. 한옥은 사람이 짓는 집이다.
 2010년 지어진 이 집도 2018년 지어지는 나의 집도 사람이 손으로 짓는다. 한옥은 사람이 짓는 집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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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시 거처를 마련해줌으로써 우리의 말 못할 어려움을 해결해준 것은 물론이고, 서촌에서의 일상을 누리게 해준 이 집 주인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 집 주인은 나와 저자와 편집자로 만났다가 이제는 친구인지, 저자인지, 우리가 어떻게 만난, 어떤 사이인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나의 남편과는 호형호제하며 지낸다.

2008년 그의 첫 책을 만들 때만 해도 30대의 푸른 청춘이었다. 그와 때로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며칠에 한 번씩 만나며 지냈다. 그 사이 그도 나도 청춘의 푸른 시절을 지나왔다. 처음 만날 때 서로 갖췄던 예의는 그대로지만 쌓인 시간만큼 그는 우리 곁에 바짝 다가 선 느낌이다. 

나와 남편이 한옥을 처음 보러 온 날, 계약하는 날,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날에 우리는 늘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때마다 그는 애정을 담아 먼저 고쳐본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기꺼이 나눠줬다. 

한옥대수선의 동반자  
 
지난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이 쪽마루에 앉아 각별한 즐거움을 누렸다.
 지난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이 쪽마루에 앉아 각별한 즐거움을 누렸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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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마루에 앉아 담장을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생김새를 살피느라 한나절이 훌쩍 흘러가기도 했다. 아름다움의 효용이란 이런 것.
 쪽마루에 앉아 담장을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생김새를 살피느라 한나절이 훌쩍 흘러가기도 했다. 아름다움의 효용이란 이런 것.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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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집이 그저 수많은 집 중 한 채로, 나 혼자만의 경험으로 그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집 한 채를 지으며 내가 보게 될 풍경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도 동참을 권했다. 8년쯤 전 누구도 엄두를 못 냈던 한옥을 고쳐 살았던 경험을 가진 그야말로 적임자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임시 거처로 삼은 집의 주인이자, 사진으로 '작은한옥수선기'를 기록하고 있는 사진가 황우섭이 바로 그다.  
  
늦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3주 남짓 머무는 동안 임시 거처로 삼은 이 집 쪽마루에 나와 있는 날이 많았다. 바람이 통하고, 햇살이 들이치는 그 마당이 주는 안온함을 마음껏 누렸다. 방도 아닌, 마당도 아닌, 바깥도 아닌, 내부도 아닌 그 중간지대의 공간에서 나와 남편은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때로는 집주인과 더불어 셋이서 서촌에서 유명하다는 스콘을 잔뜩 사다 먹기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한겨울에 이렇게 나와 앉아 있다가 얼어죽겠다'고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한겨울 쨍한 추위 틈으로 따뜻한 햇살을 쬐며 우리집 마루에 앉아 가만히 마당에 쌓인 눈을 바라볼 날을 기대했다.

인연이 만들어준 모든 날이 그저 귀하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혜화1117, #도시형한옥, #황우섭, #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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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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