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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 사진은 2017년 10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 사진은 2017년 10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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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오후 4시 53분]

지난 8일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전북 전주을)이 농협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 내용은 '청년창업농이 영농정착지원금을 명품구입, 외제차량 수리, 가전제품 구입 등 분별력 없이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 의원 측은 청년 영농정착지원금을 받는 전국 1168명의 지원금 카드 사용 내용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전체 사용금액 44억2000여만 원 가운데 농업과 관련된 금액은 12%였다고 한다. 그중 외제차량 서비스센터, 백화점, 가전제품매장, 미용실 등에서 사용된 사실도 함께 알렸다.

SBS가 처음으로 보도한 뒤 수많은 언론은 청년농업인 모두를 일제히 보조금을 횡령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뉘앙스의 보도를 했다. 각 농업신문들도 사설 등을 통해 청년농업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일간지는 귀농지원금 먹튀 문제까지 묶어 거론하면서 청년농업인을 도마에 올리고 있다. 과연 진실은 그러할까.

도마 위에 오른 청년농업인들 

먼저 따져볼 게 있다. 청년창업농과 청년농업인은 다른 개념이다. 청년창업농은 청년농업인지원 정책사업(영농정착지원금)의 수혜대상자이고, 청년농업인은 40대 미만의 젊은 농업인을 통칭한다. 전혀 다른 대상이다.

영농정착지원금은 쉽게 말해 청년창업농이 영농 초기 자금운용에 어려움이 있으니 농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장 3년 동안 월 10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농협 직불카드를 통해 사용하게 해주는, 소위 '착한 사업'이다. 이 지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청년창업농들은 의무교육 160시간을 듣고, 경영장부를 기록하면서 다른 직종에는 종사하지 못하고 오롯이 자신의 영농지에서 영농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지원금 부정 사용에 대해서는 의무교육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교육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지원금으로 외제차량을 수리하거나 명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영농정착지원금의 정책 취지 자체는 정부보조금이 아니라, '영농 초기 생활비'라고 봐야 한다.

나는 북한이탈주민 영농정착 지원 업무를 5년 넘게 수행하면서 영농 초기,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많이 봐왔다. 자금이 부족해서 근사한 농장도, 비바람을 피할 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농업을 통해 대한민국에 정착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악착같이 농사를 짓는다. 지역 사회의 텃새도, 주변의 의심스러운 시선도, 서툰 농촌생활도 모두 극복한다. 그렇게 농사를 지어도 당장의 생활비를 장담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가업승계농들은 그나마 부모님의 농사를 물려받거나 가공·마케팅 등 본인의 장점을 살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조금 덜 힘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 창업농들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영농정착에 대한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농촌에는 그런 청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농사는 하늘과의 계약이라고 부른다. 초기 영농인들은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기는커녕 생활비조차 벌기도 힘들다. 농가소득보다 농외소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게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비록 농사에 서툴지만 농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겠다는 청년창업농들은 최소생계비 성격이 강한 영농정착지원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일부의 부적절한 사용 사례가 전체의 잘못으로 비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청년창업농을 위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가 펼쳐진 17일 오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의 한 논에서 가을 추수가 한창이다.
▲ 추수에 바쁜 가을 논 찬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가 펼쳐진 17일 오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의 한 논에서 가을 추수가 한창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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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정착지원금을 정당하게 사용한 생계형 청년창업농이나 해당 사업과 상관없이 열심히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농업인들이 받은 상처는 크다.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들이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당할 수 있는 게 지역의 정서다. 나는 그 점이 두렵다. 

농림축산식품부는 SBS의 보도가 나간 뒤 해명자료를 통해 "대다수의 청년 농업인들은 의료비, 자녀양육비, 교육비, 농자재구매, 공공요금, 식비 등 지원 취지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백화점 및 면세점 사용 사례 등 일부 지원 취지에 맞지 않게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파악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부적절한 사용을 방지하게 위해 현장점검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영농정착지원금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운천 의원실에게 바란다. 청년창업농들의 성공적인 영농정착에 필요한, 보다 실효성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그 고민을 안고 청년창업농을 만나는 게 더욱 품격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태그:#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금, #귀농귀촌, #정운천, #청년창업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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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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