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이스가 공개한 시즌그리팅 이미지

트와이스가 공개한 시즌그리팅 이미지 ⓒ TWICE JAPAN OFFICIAL 트위터

 
오는 11월 5일 국내 컴백을 앞둔 걸그룹 트와이스가 지난 10일 일본 시즌그리팅 발매 소식을 공개했다. '시즌 그리팅'이란 연말경 발매하는 일종의 굿즈(팬클럽 물품) 모음집으로 주로 달력, 다이어리, 포토카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트와이스의 이번 시즌그리팅 콘셉트는 '승무원'이었다.

공개된 이미지에서 승무원 복장을 한 멤버들은 '트와이스 에어라인(TWICE AIRLINES)'이라는 문구 아래 공항 게이트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데, 이번 시즌그리팅에 포함된 모든 상품에 적용되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짧은 치마에 X자 다리 포즈를 강조하는 이미지는 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성 아이돌에 투영된 '제복 판타지'
 
 소녀시대는 지난 2009년 '소원을 말해봐'로 활동할 당시 제복 콘셉트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소녀시대는 지난 2009년 '소원을 말해봐'로 활동할 당시 제복 콘셉트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 SM 엔터테인먼트

 
사실 여성 아이돌의 제복 콘셉트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걸그룹들이 무대나 뮤직비디오의 단골 소재로 '제복'을 선택해 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9년 발표된 소녀시대의 히트곡 '소원을 말해봐'에서는 멤버들이 제복에 핫팬츠를 입고 이른바 '각선미'를 강조하는 춤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도 각양각색의 제복들이 줄지어 등장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콘셉트가 유독 여성 아이돌에게만 집중됐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제복 콘셉트를 선택한 남성 아이돌 그룹도 있었지만 여성 아이돌 그룹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특히 여성 그룹들의 제복은 간호사나 승무원 등 주로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이었으며, 해당 직업인이 실제로 입는 의상보다 몸매를 더 강조하거나 노출이 심하게 '리폼'한 의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승무원 제복은 단연 인기(?)였다. 그룹 AOA의 '단발머리'와 마마무의 '음오아예' 뮤직비디오 등에도 몸매가 드러나게 딱 붙는 제복을 입은 여성 승무원이 등장한다. 
 
승무원도, 아이돌도 당신의 "꽃"이 아니다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 승무원인 유은정씨가 참고인으로 참석, 바른미래당 이상돈 의원의 항공사 부당노동행위 관련 질의에 대한힝공 승무원 복장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 승무원인 유은정씨가 참고인으로 참석, 바른미래당 이상돈 의원의 항공사 부당노동행위 관련 질의에 대한힝공 승무원 복장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실제 여성 승무원들은 복장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했다.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 유은정씨는 "승객들의 짐을 내릴 때 블라우스가 당겨 올라가는 등의 민망한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여성 승무원의 제복이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요 업무를 수행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항공사들은 왜 불편한 복장을 고수할까?
 
이는 아이돌이 여성 승무원의 옷을 입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몸에 딱 붙는 상의와 치마는 '예쁘게' 보이기 위한 선택이다. 안전보다 미관에 더 신경을 쓴 옷은 항공사가, 우리 사회가 여성 승무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설명한다. 

아이돌 그룹의 승무원 콘셉트 역시 제복에 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는 여성 승무원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동시에, 그 이미지를 투영한 여성 아이돌을 성적으로 상품화 할 위험이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결국 아이돌도, 승무원도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보기 좋은 상품으로만 소비될 뿐이다.

한 항공사 회장의 귀국 환영식에서 여성 승무원들이 '꽃 전달'에 동원되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여성 아이돌이 '애교'를 강요받는 상황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승무원도, 아이돌도 누군가를 위한 '꽃'이 아니다. 
 
'바지 교복' 입은 여성 아이돌의 등장
 
 스쿨룩스 모델이 된 그룹 아이즈원은 화보에서 바지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스쿨룩스 모델이 된 그룹 아이즈원은 화보에서 바지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 스쿨룩스

 
여성 아이돌의 제복 콘셉트는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매력적으로 통했고 물론 지금도 상당 부분 유효하다. 그러나 변화하고 있는 지점들도 있다. 10년 전 소녀시대의 콘셉트가 과연 지금에도 아무 불편함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트와이스가 지난 10일 승무원 콘셉트의 티저 사진을 공개한 이후, 여러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10년 전에는 당연하게도 이런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최근 한 교복 브랜드 광고에서 걸그룹 아이즈원은 치마 대신 바지 교복을 입었다. 하의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이토록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짧은 교복치마를 입은 여성 모델에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선학교에서도 '잘록한 허리선' '짧은 치마' 등이 사라진 편안한 교복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파격적인 걸그룹의 바지 교복은 이러한 흐름에 발맞춘 선택으로 보인다.

곳곳에서 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지금이기에, 이번 트와이스의 승무원 콘셉트는 여러모로 아쉽다. 시대 변화와 트렌드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주요 팬층이 남성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일본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와이스의 이번 콘셉트는 과거의 흥행 코드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처음으로 여성 아이돌이 교복 바지를 입고 광고하는 시대의 한 편에는 여전히 승무원 제복으로 소비되는 또 다른 여성 아이돌이 있다. 이 아이러니한 공존의 가운데 누군가는 계속 굿즈를 구매할 것이고, '제복 판타지'는 이름과 대상만 바뀐 채 계속될 것이다. 10년 전 소녀시대가 그랬고, 지금의 트와이스가 그러한 것처럼.
트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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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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