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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 반쯤 일어나서 멍하니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알바 지원 문자를 밤늦게 보내서 일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식품 업체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아홉시까지 올 수 있느냐는 말에 시간 맞춰 갈 수 있다고 대답한 후 재빨리 씻고 집을 나섰다.

10개월 정도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건강까지 악화된 나는 무기력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다시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교재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심한 거부감 때문에 한 페이지도 보기가 어려웠다. 문제집이 아닌 소설책도 보기가 힘들었다. 불안했고, 가슴이 지속적으로 죄어오는 신체적 증상이 생겼다.

우울증이 의심되서 가까운 지역심리센터의 임상심리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문제를 누군가에게 꺼내어놓은 것 그리고 "그동안 충분히 열심히 해오셨고 잘 해 오셨어요. 누구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상황인데 정말 잘 해 오셨어요"라는 그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뻔한 말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낼수는 없었던 그 말을 나는 누구에게라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대단한 일 말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떠올렸다. 우울증에 걸린 퇴직자들이 봉사활동을 한 후 증상이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도 생각났다. 집에만 있으면 지금의 상황이 되풀이될 것 같았다. 무게를 얹어 더욱 견고해지는 아치형 건물처럼 내겐 새로운 압력이 필요했다.

단기알바를 해보기로 했다. 구직 사이트를 한참 동안 검색하면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기엔 나이가 꽤 많다는 것과 내가 할 만한 알바가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업체는 20세에서 30세 사이의 알바를 원했고 가시뼈 두부살의 허약한 34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알바신청 문자를 보내기 전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일하기를 무서워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일이 힘들까 봐 주저한 것도 있었지만 내가 진짜로 두려웠던 건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 어린 애들과 일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저 나이에 왜 알바를 하고 있지? 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라든가 '나이도 있는데 왜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지 않지?'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어린 애들과 같이 일하면 나이 먹고 단기알바를 하는 스스로에게 열등감을 느낄 것 같았다. 업주가 나에게 쏟아낼지 모를 무신경한 말들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방구석에 혼자 앉아 부정적인 생각을 곱씹는 것보단 바깥으로 나와 몸을 써서 일하고 세상과 맞부딛치는 편이 훨씬 낫다. 오랫동안 되풀이해온 부정적인 생각에는 관성이 있다. 혼자서 갇힌 공간에 계속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매일 생활하는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접하는 새로운 장소와 타인들은 정신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자신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내게 알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알바를 하면 된다. 삶의 문제에는 낡은 통념이 아니라 본인의 주관으로 답해야 한다. 34살에 일용직 노동을 하는 건 오답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선 적절한 행동일 수 있다.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만화 '리얼'에서 노미야가 했던 말처럼 인생의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다.

비록 지금 하는 일이 일당 63000원의 일용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골인지점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의 소중한 일부다. 지금이 있기에 먼 훗날의 성취가 있다. '별볼일 없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길은 연결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을 나는 믿고 싶다.
 
아주머니들이 대형포장된 생선을 작은 봉지에 나누어 담고 반장아저씨가 컨베이어 벨트를 맡고 나는 물건을 박스에 담고 테이프를 붙여 팔레트에 쌓았다.
 아주머니들이 대형포장된 생선을 작은 봉지에 나누어 담고 반장아저씨가 컨베이어 벨트를 맡고 나는 물건을 박스에 담고 테이프를 붙여 팔레트에 쌓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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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일한 곳은 산업단지의 식품가공업체였는데 대형마트 자회사 중 하나였다. 작업공간으로 들어가니 아주머니들이 음악에 맞추어 국민체조를 하고 있었고 나는 멋쩍게 나만의 체조를 했다. 농산물, 청과, 수산물등 상품별로 몇 개의 근무조가 편성돼 있었다.

나는 냉동된 수산식품을 포장하게 됐다. 냉동식품을 포장하는 곳이라 실내에 냉장고 모터팬 소리가 울렸고 공기가 서늘했다. 작업반장인 아저씨 한 명, 아주머니 4명, 알바생인 내가 함께 일했다.

작업장의 넓이는 스무평 정도였다. 중간에 직사각형의 큼직한 탁자가 놓여 있었고 탁자 바로 옆에 소형컨베이어 벨트 기계가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대형포장된 생선을 작은 봉지에 나누어 담고 반장아저씨가 컨베이어 벨트를 맡고 나는 물건을 박스에 담고 테이프를 붙여 팔레트에 쌓았다.

작업은 기계의 속도로 진행되었다. 김공장에서도 느꼈지만 기계는 인간이 최대한으로 노력해야 도달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추어져 있다. 작업속도와 목표생산량을 결정한 건 어떤 인간일 테지만 그 사람은 김이나 냉동식품을 포장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생각을 작업반장에게 말할 정도로 눈치없는 사람은 아니다. 꼴랑 하루 일한 걸로는 이 작업에 대해 오래 일한 사람들만큼 알 수 없겠지만 그저 내가 한 일과 느낀 점을 적어보려 한다.

박스에 비닐포장된 명태포 13개를 넣으면서 동시에 유통기한이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했다. 한번에 5개를 잡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세번의 동작으로 박스를 가득 채울 수 있도록 3,5,5를 계속 속으로 되뇌며 작업했다. 박스 하나의 무게는 4.5키로다. 박스를 테이핑하고 팔레트에 8개를 질서정연하게 쌓으면 1층이 완성된다. 

박스를 7단으로 쌓고 네 개를 더 얹어 60개를 쌓으면 반장 아저씨가 손기중기로 냉동창고에 가져다 놓는다. 나는 그 사이에 바닥에 새 팔레트를 깔고 물건을 담을 박스를 내 옆으로 가져오고 박스마다 유통기한과 제조사가 표시된 스티커를 붙였다. 식품을 포장하는 일이라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깨끗하게 손을 씻었다.

일하는 내내 작업속도가 지나치게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초라도 지체되면 내 옆 박스에 명태포가 가득 쌓였다. 가득 쌓인 명태포는 나를 불안하고 조급하게 했다. 에덤 스미스는 국부론에 작업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분업이란 개념을 명시했다. 분업을 한 지 수백년 이래로 나처럼 작업속도가 느린 사람은 늘 다른 동료들의 근심거리였다. 에덤 스미스를 데려와 빈 박스를 가져오게 하고 "이봐, 에덤! 빨리빨리!" 하며 다그치고 싶었다.

가끔씩 테이핑 기계안으로 테이프가 말려들어가거나 테이프를 어긋나게 붙이면 작업속도는 한없이 느려졌다. 박스에 테이핑을 할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붙여야 했다. 고맙게도 같이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내가 지체될 때마다 도와주셨다.

아주머니는 빛의 속도로 포장을 하면서도 박스 한가운데로 깔끔하게 테이핑을 했다. 이곳의 작업속도는 너무 빠르고 각자가 맡은 일에서 지체되면 전체 속도가 느려지기에 어떤 알바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게으름도 피울 만한 환경에서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골프를 칠 때는 어깨에서 힘을 빼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요시오카 일문의 검객 80명과 싸울 때 거푸 심호흡을 하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유지했다. 몸이 긴장되고 다급해 질 때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힘을 빼고 작업을 이어갔다.

신기하게도 몸에 힘을 뺄수록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척추와 관절 상태가 나빴고 어떻게든 이 몸으로 작업이 끝나는 5시까지 버텨야 했다. 오전과 오후에 각각 10분씩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화장실 옆 어두운 복도의 벤치에 모로 누워 쉬었다.

점심은 회사에 있는 이층의 식당에서 먹었다. 식당으로 가는 복도에서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사무직 직원들을 보았다. 나는 앉아서 업무를 보는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점심을 먹은 후에도 어두운 복도 벤치에 시체처럼 기대 있었다.

작업이 재게되고 오후 2시쯤 되자 몸에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 한 지점에 지속적인 불편함이 느껴졌고 명태포를 들어올리려고 숙일 때마다 우측 허리가 아팠다. 박스를 펼쳤다 다시 접을 때마다 양쪽 팔의 묵직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따금씩 테이프 작업에서 실수를 하면 마음이 다급해졌다. 코팅장갑에 붙은 테이프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컨베이어 벨트는 끊임없이 명태포를 쏟아냈다.

힘을 빼기 위해 하던 심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나는 오래달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헉헉거렸다. 몸 상태가 너무 나빠져 작업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당일치기노동조차 해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가장 무서웠던 건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었다.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흘렀다. 정말 많은 명태포를 포장했음에도, 박스를 트레이 바닥부터 내 키만큼 쌓아올리는 걸 수차례나 반복했음에도 시계바늘은 믿을 수 없을만큼 조금만 움직여 있었다. 이 작업은 마치 내 인생 같았다. 기계의 속도를 따라잡기위해 필사적으로 쫒아가지만 나는 조금씩 뒤로 처진다. 탁자 모퉁이의 명태포처럼 나는 인생 밖으로 밀리고 밀려난다.

리듬감 있게 제품을 담고 틈이 생기지 않게 박스를 배로 누른 채 테이프를 붙인다. 스티커가 겉으로 보이도록 박스를 트레이에 쌓고 일하기 편하도록 내 바로 옆에 빈박스를 옮겨 놓는다. 아저씨가 냉동고에 간 사이에 새 트레이를 깔아놓고 높게 쌓인 빈 박스에 차례대로 스티커를 붙인다. 테이핑 실수에 대비해 여분의 테이핑 기계를 곧바로 쓸 수 있게 만져둔다.

건너편 아주머니에게 박스를 넘겨준다. 몸이 아프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막바지에 이르자 나는 작업에 정신없이 몰두하고 있었다. 추운 작업장 온도에도 불구하고 몸에선 땀이 났다. 겨울의 노동수용소에서 내복이 땀에 젖도록 신명나게 벽돌담을 쌓아올리는 이반 데니소비치가 생각났다. 물론 이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아닌 나의 하루다.

당일치기 알바인 내게 고된 일이 주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가 서툴고 느려서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맡은 작업은 분명 더 많이 움직이고 힘을 써야했다. 무거운 걸 반복적으로 들어올리는 건 내 몫이었다. 매일 일하시는 분들은 덜 고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분들이 하는 일은 숙련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쉬는 시간엔 떡과 차를 권하셨고 틈틈이 쉬라고 말해주셨다. 그분들은 유능했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스티커를 붙이든 박스를 적재하든 유통기한을 인쇄하든 그분들은 작업 공정의 어떤 일도 허투로 하지 않았다.

힘들 때는 시간이 더디게 가지만 모든 일엔 끝이 있다. 10월 9일의 러시아산 명태포 포장 작업이 끝나고 청소시간이 되었다. 아주머니들은 밀대걸래로 작업장 바닥을 닦았다. 아저씨는 내게 명태포 박스와 쓰레기가 가득 실린 대차를 분리수거장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길게 이어진 하역장과 내리막 통로를 지나면 분리수거장이 있다.

내 앞에 대차를 놓고 뒷걸음질로 내리막을 한 발 한 발 내려오는데 대차의 압력이 예상 외로 커서 헛웃음이 났다. 발을 헛딛으면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시지프스가 가파른 산으로 무거운 바위를 올리는 걸 괴로워하는 게 '무의미' 때문일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가 걱정하는 건 돌덩이가 자기를 깔아뭉개는 것이다.

그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위를 밀어올린다. 시지프스는 밤낮없이 돌을 굴리니까 아마 야근수당과 위험수당을 받을 것이다.

태그:#단기알바, #냉동식품포장, #공무원시험,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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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어!"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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