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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처가 나고 병이 생기면 의사를 찾고 약을 먹는다. 새로운 치료법을 조사하기도 하며 많은 건강식품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이 가지게 된 '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병이 커지기 전에 켜켜이 새겨져 온 흉터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찾아본 적이 있는가? 사회에서? 또는 내 주변의 환경에서?
 
시민건강연구소 씀 / 출판사:낮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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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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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란 한 사람의 아픔을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상업적, 문화적, 경제적, 환경적, 정치적 문제들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살아가며 일하고 나이 드는 매일의 환경, 이 생활 환경을 결정짓는 힘들이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시민과 소통하고 대중의 관점에서 전문 지식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시민건강연구소라는 데가 있다. 이곳에서 최근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라는 책을 통해 당신의 건강을 결정하는 수많은 원인들, 특히 예방의학에서 자주 쓰이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특히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소개하고 있다. 건강한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힘에 대한 건조하고도 냉정한 그들의 분석을 곱씹어 본다면 결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직업, 사회, 환경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언제부터인지 주변 사람들이 자주 한숨을 푹푹 쉬는 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쉴 때 내가 얼마나 소진되었나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무기력함과 냉소주의, 특히 우울함이나 불안, 심지어 공황장애가 온다면 당신은 만성적 소진상태에 해당한다. 

위스콘신 대학 장릭신 교수팀이 소진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 연구한 결과, 자신의 일자리가 불안정 하다고 느끼는 노동자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소진 상태를 호소했다고 한다. 소득 불평등이 심한 국가의 응답자일수록 소진 상태를 많이 경험했다.

열악한 근로환경, 불안한 고용상태를 박차고 나가도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는 쉴 수 있을까? 그나마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 방식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하긴 어렵지 않을까.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면 그나마 행복한 상황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돈이 곧 건강이기도 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에 균열을 내는 연구 결과가 있다.

책에서는 나쁜 일자리로 재취업하는 것이 양질의 일자리에 재취업하는 것보다 많게는 1.5배~2배 이상으로 '이항상성 부하 위험'(혈압, 혈당, 콩팥기능, 콜레스테롤 등의 생체 지표가 반영된 스트레스 점수)이 높다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정리하자면, 나쁜 일자리는 건강을 더더욱 나쁘게 하며, 실업 상태일 때보다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실업 그 자체가 주는 금전적, 심리적 어려움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 일자리나 덥석 받으면 안 된다고 조언하기 꺼려진다고 이야기한다. 대신에, 불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나쁜 일자리라도 감지덕지하라면서 노동자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분명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못을 박는다.

이렇듯 소진사회, 나쁜 일자리에 사람을 떠미는 사회는 우리를 다양한 유형의 질병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구의역 사고의 김군처럼 컵라면을 먹지도 못한 채 죽음으로 떠밀릴 수 있다.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문화, 건강할까?       

차별, 문화, 사회정의의 문제 또한 건강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퀴어 퍼레이드를 기획할 때마다 '혐오세력'들은 맞불집회, 혐오 발언, 협박으로 사방을 에워싸곤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러모로 성소수자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은 성소수자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 높은 수준의 반동성애 편견으로 인해 구조적 낙인이 심한 지역에 거주하는 성소수자의 사망률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성소수자들에 비해 3배 이상 높았고, 평균 수명이 12년 정도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동성애 편견이 높은 사람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하첸블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성애자들의 반동성애 편견점수가 1점 올라갈 때마다 차별을 행하는 '가해 집단'의 사망 위험이 2.9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 정체성은 개인적 지향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문제다.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수록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로 '정치행동'이 우리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소개한다.

이제는 계절에 상관없이 미세먼지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이 되었다. 많은 이들의 스마트폰에는 매일의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앱이 필수 옵션으로 깔려 있다. 미세먼지는 호흡기에 안 좋을 뿐만 아니라, 뇌졸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자살률 또한 높인다는 국내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우리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공기청정기를 사거나, 마스크를 매일 착용하거나. 신선한 바람을 마시는 행복을 박탈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최선의 방법이다.  

끝까지 불평등하게 만드는 미세먼지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반응도 소득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중국의 한 연구 결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를 구입했고, 미세먼지 수치가 증가할수록 구매율은 더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저소득 집단에서는 구매량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미세먼지 문제를 두고 개인 수준의 대책에만 치중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키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발전소, 물건을 배송하는 화물차량, 이를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화학물질과 전기 등... 사회 전체적으로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그 피해는 다시 '불평등'하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환경정의와 건강은 국가와 집단의 정치적 해결이 아니고서는 풀 수 없는 매듭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위에서 소개된 사례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소개된다. 성소수자와 이성애자 학생들의 연합체 조직, 스스로 무의식적 편견까지 성찰할 수 있는 평가프로그램, 보건의료 예비 전문가들의 소수인종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 진료 과정에서 의사가 '건강의 사회적 요인'을 묻는 액션 플랜인 CLEAR 지침 등. 개인이, 집단이, 국가가 노력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들이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결정요인을 파악하고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돕는 CLEAR 지침
 의사가 환자의 건강결정요인을 파악하고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돕는 CLEAR 지침
ⓒ McGil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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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심이 없는 의료는 결국 '회전문 의료'에 머물 수밖에 없다." 

환자가 치료를 받고 병원 문을 나선다고 해도 근본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다시 의료인을 찾게 되며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의미다. 당신의 아픔, 또는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의사가 알아야 하고, 이웃이 알아야 하고, 국가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 우리 몸에 새겨진 불평등의 흔적들

시민건강연구소 지음, 낮은산(2018)


태그:#건강, #몸은사회를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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