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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산정에서 본 고흥 외나로도항구. 섬의 산정에 가을국화의 하나인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쑥섬"의 산정에서 본 고흥 외나로도항구. 섬의 산정에 가을국화의 하나인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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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이쁜 게 아닙니다. 싹을 틔우고, 새싹이 조금씩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데요? 꽃망울을 머금었을 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아요. 꽃을 하나씩 피울 때도 아름답고요. 다 이뻐요."

지난 10월 9일 '쑥섬'의 정원에서 만난 고채훈(46)씨의 말이다. 고씨는 전라남도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쑥섬' 별정원의 안주인이다. 섬 자체가 정원이고, 꽃밭인 쑥섬은 나로우주센터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쑥섬'의 산정을 꽃밭으로 가꾸고 있는 약사 고채훈 씨. 지난 10월 9일 오후 섬의 정원에서 만났다.
 "쑥섬"의 산정을 꽃밭으로 가꾸고 있는 약사 고채훈 씨. 지난 10월 9일 오후 섬의 정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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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채훈 씨가 섬의 산정에 조성된 정원에 봄꽃 모종을 심고 있다. 지난 10월 9일 한글날 오후다.
 고채훈 씨가 섬의 산정에 조성된 정원에 봄꽃 모종을 심고 있다. 지난 10월 9일 한글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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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만든 건 아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제 만족이죠. 꽃과 함께 사는 일상이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꽃도 내 맘대로 심어요. 내가 심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중심으로요."

고씨가 모종을 심을 때 밑그림을 따로 그리지 않는 이유다. 마음 가는대로, 내키는 자리에다 '마구잡이'로 심는다. "자신은 결코 전문 조경업자가 아니"라는 게 그의 말이다.

"어디에다 뭘 심어도 다 이뻐요. 사방팔방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섬이 기본 배경을 깔아주잖아요. 배경이 워낙 좋아서 별 고민 하지 않고 심어도 다 멋져요. 그렇지 않나요?"

고씨는 꽃밭을 가꾸는 자신의 정성보다 주변의 섬과 바다에 공을 돌렸다. 쑥섬을 찾은 여행객들이 안구를 정화시킬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했다.
  
고채훈 씨가 일하고 있는 고흥 외나로도의 약국. 오른편으로 고 씨가 꽃 모종을 가꾸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고채훈 씨가 일하고 있는 고흥 외나로도의 약국. 오른편으로 고 씨가 꽃 모종을 가꾸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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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채훈 씨가 약국 옆 비닐하우스에서 키우고 있는 봄꽃 모종들. 고 씨는 쉬는 날은 물론 평일에도 틈틈이 모종을 키운다.
 고채훈 씨가 약국 옆 비닐하우스에서 키우고 있는 봄꽃 모종들. 고 씨는 쉬는 날은 물론 평일에도 틈틈이 모종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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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꽃을 심고 가꾸는 것만 고씨의 일이 아니다. 씨앗을 직접 키워 모종도 가꾼다. 그는 봉래면사무소 부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외나로도에 하나뿐인 약국이다. 고씨는 약국 옆에 33㎡ 남짓의 비닐하우스를 두고 틈틈이 모종을 키운다.

"처음엔 모종을 다 사서 심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직접 가꿔요. 90% 정도 그렇게 하고, 새 품종이나 제가 가꿀 수 없는 것만 사서 심어요. 모종을 가꾸는 일도 재밌어요."

고씨는 평일에도 약을 팔고 상담을 하는 것보다 모종을 가꾸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시골약국이어서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아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은 내년 봄에 내다 심을 봄꽃 모종을 키우고 있다.
  
고채훈 씨가 섬의 산정에 조성된 정원에 봄꽃 모종을 심은 뒤 물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오후다.
 고채훈 씨가 섬의 산정에 조성된 정원에 봄꽃 모종을 심은 뒤 물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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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전남민간정원 '쑥섬'의 별정원을 가꾸고 있는 약사 고채훈(오른쪽) 씨와 교사 김상현 씨 부부. 지난해 6월에 만났을 때 모습이다.
 제1호 전남민간정원 "쑥섬"의 별정원을 가꾸고 있는 약사 고채훈(오른쪽) 씨와 교사 김상현 씨 부부. 지난해 6월에 만났을 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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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의 태 자리는 지리산 자락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이다. 고흥백양중학교 국어교사인 김상현(49)씨와 1996년 혼인하면서 외나로도로 들어왔다. 고씨 부부는 전국의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식물에 대해 공부했다. 여유가 생기는 대로 쑥섬의 땅을 조금씩 사들여 꽃과 나무를 심었다. 지난 17년 동안 그랬다.

정성껏 가꾼 꽃이 가뭄에 말라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태풍을 만나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씨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과 휴일, 방학은 물론 평일에도 짬을 내 꽃과 나무를 가꿨다. 섬의 숲길도 정비했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버티지 못했겠죠. 내가 좋아서 하고, 재밌어서 했어요.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행복했고요. 지금도 같습니다. 내가 좋아서, 우리가 좋아해서 하고 있어요. 남에게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에요."
 
꽃 모종을 심던 고채훈 씨가 잠시 서서 쉬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오후다.
 꽃 모종을 심던 고채훈 씨가 잠시 서서 쉬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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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별정원에서 바라본 주변 다도해 풍광. 크고 작은 섬들이 꽃밭의 배경 무대로 자리하고 있다.
 "쑥섬"의 별정원에서 바라본 주변 다도해 풍광. 크고 작은 섬들이 꽃밭의 배경 무대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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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애도의 비밀정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알음알음으로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전라남도의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됐다. 다도해의 섬에 만들어진 천상의 꽃밭이 일반에 공개됐다.

"쑥섬이 우리 국민들의 여행 추세와 맞아떨어진 거죠. 요즘은 수학여행식 관광이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끼리 오붓하게 즐기잖아요. 찾아오신 분들이 차분히 구경하고, 쉬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보람을 느낍니다."

그의 말에서 쑥섬이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쉬는 공간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묻어난다. 
 
쑥섬에서 내려다 본 고흥 외나로도 항구. 여수항을 출발해 거문도로 가던 쾌속선이 잠시 들렀다.
 쑥섬에서 내려다 본 고흥 외나로도 항구. 여수항을 출발해 거문도로 가던 쾌속선이 잠시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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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정원에 세워진 나무 푯말. 꽃밭 사이에 적어놓은 시구나 좋은 글귀를 새겨보는 것도 쑥섬 정원의 색다른 재미다.
 "쑥섬"의 정원에 세워진 나무 푯말. 꽃밭 사이에 적어놓은 시구나 좋은 글귀를 새겨보는 것도 쑥섬 정원의 색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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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화원은 쑥섬의 산등성이(해발 83m) 널따란 평지에서 만난다. 섬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비밀의 정원이다. 꽃밭의 면적은 3300㎡ 남짓. 여기에서 300여 종의 꽃이 철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드넓은 바다와 다도해가 꽃밭의 무대다. 고흥 시산도, 거금도, 소록도와 여수 거문도, 손죽도, 초도가 내려다 보인다. 완도 평일도와 생일도,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도 아스라하다.

정원의 이름도 환희의 언덕, 별정원, 태양정원, 달정원으로 어여쁘다. 꽃을 감상하며 잠시 쉴 만한 나무의자도 군데군데 놓여있다. 꽃밭 사이에 적어놓은 시구나 좋은 글귀를 새겨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외나로도항에서 본 '쑥섬' 전경. 섬의 산정에 넓은 꽃밭이 있지만, 섬의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외나로도항에서 본 "쑥섬" 전경. 섬의 산정에 넓은 꽃밭이 있지만, 섬의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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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마을 돌담에 핀 코스모스. 오래된 돌담과 어우러진 코스모스가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쑥섬"의 마을 돌담에 핀 코스모스. 오래된 돌담과 어우러진 코스모스가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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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로도항에서 배를 타고 5분도 안 걸리려 닿는 쑥섬의 면적은 32만6000㎡, 해안선의 길이는 3㎞ 가량 된다. 주민등록상 인구가 30여 명이다. 오래 전부터 쑥이 지천이었다고 쑥섬(애도·艾島)으로 이름 붙었다.

쑥섬의 돌담길도 격이 다르다. 수십 년에서 100년 된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뒷산은 귀한 난대수종 수천 그루로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껍질이 얼룩무늬처럼 생겨 '해병대나무'라 불리는 육박나무는 남해안에서도 진귀한 나무다. 남부지방에만 자생하는 푸조나무와 구실잣밤나무도 많다.

산정의 산포바위는 오래 전 섬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던 바위다. 쑥섬에서는 경치 좋은 데서 놀거나 잠시 쉬는 것을 '산포'라 한다.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며 놀았다는 신선대의 풍광도 빼어나다. 동백숲 터널도 애틋하다.
  
'쑥섬'의 꽃밭을 찾아가는 숲길. 보기 드문 난대수종 수천 그루로 숲을 이루고 있다.
 "쑥섬"의 꽃밭을 찾아가는 숲길. 보기 드문 난대수종 수천 그루로 숲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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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채훈, #김상현, #애도, #쑥섬, #전남민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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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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