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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는 2011년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00차 총회를 통해 '가사노동협약'을 채택했다. 협약의 정식 명칭은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협약(Convention on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이다.

협약은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정원사, 요리사 등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기존 노동자와 똑같이 급여와 노동조건, 노동시간 등을 명시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매주 최소한 하루 이상의 휴일을 보장하는 한편, 노조 결성 등 기본권 보장과 산업재해 때 보상절차도 두도록 하고 있다. 가사노동협약은 국제노동계의 마지막 숙제로 꼽혀왔던 과제였다. 

ILO에 따르면 전세계 가사노동자는 약 526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를 합하면 1억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약 30만 명 정도가 가사노동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정부는 가사노동협약의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관련법 개정과 협약의 비준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7년 동안 3명의 대통령을 거쳤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다.

파출부를 배제하는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일을 해서 돈을 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그는 근로자다. 하지만 근로자이면 누구나 적용 받아야 할 근로기준법을 근로자임에도 적용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11조 단서 때문이다.

제11조 단서는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사용인"을 근로기준법에서 배제하고 있다.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은 식구들끼리 운영하는 가족기업이다. 예컨대 아버지는 주방일을 하고 어머니는 카운터를 보고 자녀들은 홀서빙을 하는 식이다. 집안일에 굳이 법이 끼여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가사사용인'은 흔히 말하는 파출부 등을 뜻한다. ILO 가사노동협약이 보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들이다. 한국 정부가 가사노동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가사사용인을 근로기준법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11조를 개정하지 않고는 협약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집안일에 법이 끼여들 필요는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가사사용인에게 근로기준법이 배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국제협약의 비준까지 미루면서.

무작정 상경한 여성들의 일자리

우리나라에서 가사사용인은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근래에는 가사사용인을 파출부 대신 가사도우미라 부르고는 한다. 파출부가 "집안일을 해주는 여자"라는 뜻으로 가사사용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0~70년대에는 파출부보다 더 하대하는 의미를 갖는 '식모'로 불렸다.

1960~70년대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수많은 농촌의 젊음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던 시기였다. 상경한 농촌 여성들은 다들 대규모 공장에 취업하고 싶어 했지만 일자리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때문에 공장에 취업하지 못한 여성들은 버스차장이나 식모를 선택해야 했다. 특히 14~18살 정도의 어린 여성들은 취업이 더더욱 힘들어 식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상경여성을 취재한 르뽀는 이러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봄바람을 타고 무작정상경하는 부녀자들이 많다. 가난한 농촌살림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대열들. 이들의 상경이유는 말할 나위도 없이 취직·구직이 제일 많다. 도시동경에의 막연한 꿈을 안고 무작정 가출, 상경하는 사춘기 처녀도 상당수. 지난 여름 간첩 박원식을 추적하던 경찰이 추풍령 산마루 경북 금릉군 봉산면 광천동 일대의 주민동향을 조사했을 때 속칭 동목마을 27가구는 열한 명의 처녀가 돈벌이를 하러 도시행, 열일곱 살이 넘는 처녀는 단 두 명뿐이었다. 속칭 곤천마을은 처녀 열세 명이 모두 외지로 나가 처녀 없는 마을이 돼버렸고, 주민들도 "도시에서의 식모살이가 답답한 산골생활보다야 낫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부러워하더라는 것.

출퇴근 시간도, 휴일도 없는 식모

당시 식모는 오늘 날 가사도우미와 달리 집에서 기숙을 하며 가사노동을 했다. 때문에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이 일해야 했고 정기기적인 휴일 또한 주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식모살이를 했던 윤정용은 그의 수기에서 식모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말로 듣던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 ··· 밥을 실컷 먹여 준다더니 내게 돌아오는 밥은 언제나 간에 기별도 오지 않았고, 자기네는 전부 방에서 먹는데 나만 부엌에 혼자 앉아 덜덜 떨면서 먹어야 했다. 내게 약속한 옷은커녕 입고 간 옷이 다 절을 때까지 헌 옷 한 벌 물려주는 게 없었다. ··· 밥에는 열두시나 되어야 겨우 바닥에 등을 붙이게 될까 한데 새벽 다섯 시가 되기가 무섭게 깨워댔다. 그때부터 다시 밤 열두 시가 될 때까지 청소하고 아기 기저귀 빨고 설거지하거 나머지는 하루 종일 아기를 돌봐야 했다.

식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해야 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식모처럼 정해진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식모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것은 가정 내에서 노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 보다 더 큰 이유는 식모를 노동자로 보지 않고 주인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일을 시키는, 일종의 하녀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8년 발간된 직업사전에는 식모를 '하녀'로 정의면서 "개인 가정에서 집안을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 제공하고 설거지를 하고 기타의 가사 업무를 수행한다. 가사의 먼지를 털고 닦으며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유리창을 닦는다. 침구를 정리하고 음식물을 장만하여 조리한다. 식기를 씻고 의류 등의 세탁물을 세탁하고 수선하며 다림질한다. 전화를 받거나 손님이나 외래인이 오면 문을 여닫거나 애완동물을 관리하며 식료품 및 일상용품을 구입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식모를 소재로 만들어진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영화는 제목 자체가 '하녀'였다.

이제 파출부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할 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이들이지만 가사도우미는 식모, 심지어 하녀라 불리며 노동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해왔다. 법률까지도 가사사용인은 고용주와 인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굳이 법률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배제해왔다.

과거 식모는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 배운 것 없이 무작정 상경한 젊은 여성들의 일자리였다. 가사도우미라 불리는 오늘 날 역시 그 지위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언제나 노동자로서 권익을 침해당할 위험에 노출된 약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국가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법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겠냐는 태도로 그들을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다.

하지만 하녀가 식모로, 식모가 파출부로 그리고 파출부가 가사도우미로 불리게 된 오늘 날, 아직까지 그들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근로기준법 제11조를 개정하고 가사사용인을 근로기준법의 테두리 내로 끌어와야 한다. ILO마저 마지막 숙제였던 가사사용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데, 한국이 끝까지 그들을 하녀로 남겨놓을 수는 없다.

참고문헌
김원. 2006. 여공 1970 그녀들의 반 역사. 이매진
동아일보. 1972. 3. 27. 弊習 (7) 食母살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식모, #근로기준법, #파출부, #가사사용인, #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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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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