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민이 선출하지도,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은 관료들이 정보를 독점한 채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를 크게 위배한다.
 시민이 선출하지도,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은 관료들이 정보를 독점한 채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를 크게 위배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세금도둑 잡아라' 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예산 감시 운동이라는 표현보다 정체성이 선명하고 친근하고 매력적이다. 시민정치, 시민정부, 플랫폼 정부의 정체성을 '세금도둑 잡아라'처럼 표현하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봤다. 일단 '시민이 결재하자'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결재는 사전적으로 '결정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허가하거나 승인함'이라고 풀이되는데, 누가 상관이고 누가 부하일까? 누가 결재의 권한을 가져야 할까?

단순히 비교하면 관료정부는 관료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시민정부는 시민이 결정권을 가진다. 최종 결재 서명을 관료나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 한다. 광화문 1번가, 행복 1번가, 시민총회 할아버지를 거친다 해도 결정을 관료들이 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세련된 관료통치 체제에 살게 된다. 시민은 여전히 주권자가 아니라 민원인이다. 시민이 선출하지도,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은 관료들이 정보를 독점한 채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를 크게 위배한다.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치며 선출된 단체장들은 이제 대부분 시민들과 소통하는 여러 장치를 갖게 되었다. 원탁회의류가 한창 유행했고, 광화문 1번가 류가 또 인기를 타고 있다. 그리고 여러 도시에서 온라인플랫폼 개발이 한창이다. 그러나 아직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디사이드 마드리드'(Decide Madrid)라는 온라인 플랫폼처럼 의제와 예산의 결정권을 시민이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없다. 한국에서는 과감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내놓는 단체장이 아직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불가능하다고만 하지 말고

'시민이 결재하자', '시민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상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만약 설명해야 한다면 왜 그래서는 안 되는지를 말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도시가 너무 커서, 국가가 너무 커서, 시민들이 너무 많아서 자주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대표들을 뽑아 결정권을 잠시 위임해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다보니 위임하고 대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위임받은 이들은 시민들에게 묻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결정권을 남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대의제의 현실이고 폐해다.

지금이라도 권력을 쪼개서 마을마다 결정할 일을 늘리고, 온라인 투표를 잘 활용하면 위임한 범위를 계속 줄여갈 수 있다. 시민들이 직접 결재하는 일의 범위를 계속 늘려갈 수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대의해야 할 일들은 정확히 시민들의 뜻을 물어 대신 결정권을 쓸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사례나 모델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얼마든지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다.

남은 문제는 누가 이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이다. 단체장이나 의원들 중 얼마나 동의하고 적극적일지는 알 수 없다. 경험상 관료들은 반대하고 방해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결국 시민운동, 시민정치운동의 몫이다. 뜻 있는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판을 만들 수밖에 없다. 

결정권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시민들의 역량을 만들고, 시민이 결정권을 갖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만들어야 한다. '시민이 결재하자'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연대해야 한다. 단체장과 의원들이 더 많이 당선되도록 선거운동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 일을 하는 조직부터 회원과 시민이 결재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가능해진다.

태그:#예산, #세금도둑잡아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