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녀의 페이스북 사진을 보고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주부' 따위의 가십 기사를 본적이 있는가? 영화< 서치(searching)>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구글 검색(search)으로 실종된 딸을 발견한 아빠'가 되겠다. 올해 초 개최된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번 작품은 만장일치로 '관객상 Best of NEXT'를 수상하며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왜 훌륭한가?  

참신한 기법

 
    영화 <서치>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중요한 인간적 감정과 관계라고 생각한다.

영화 <서치> 포스터 ⓒ 소니 픽처스

 
<서치>는 한 가족의 단란한 삶과 갑작스러운 딸의 실종, 그리고 이를 추리해 나가는 모든 과정을 OS 운영체제와 모바일 그리고 페이스북, 구글, 유트브, 실시간뉴스, 페이스타임, CCTV 등 실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익숙한 화면으로 구성한 영화이다. 101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제한된 모니터 화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연출된다.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와 타자 속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메시지 내용들은 주인공 '데이빗'의 시선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극중 인물들의 감정이나 심리 상태 등도 놓치지 않고 스릴감 넘치게 표현해냈다. 기존에도 PC 화면을 스크린에 구현해내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러닝타임 전체를 꽉 채우는 방식을 고수한 작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인문학적 접근: 디지털 스펙터클 사회와 시놉티콘의 세계

<서치>는 '바라봄'과 '바라보여짐'이 서로 거부감 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스펙터클'과 '감시'가 융합된 세상을 묘사한다. 스펙터클(spectacle)은 '쇼'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온 프랑스어이다. 영화에는 유트브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생활을 올리고, 자극적인 개인방송으로 조회수를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이를 신조어로 퍼블리즌(Publizen)이라고 한다. 퍼블리즌은 Publicity(공개)와 Citizen(시민)을 결합한 말로, 인터넷에 자신의 끼와 생각을 일반인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디지털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개인이 '쇼'라는 가상의 이미지를 제공하며 익명의 '구경꾼'들을 통해 인기몰이를 한다.
 
요새는 유트브 조회수로 얻은 광고수익으로 돈을 벌고 유명세를 얻은 크리에이터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정보사회는 세계 자본주의 변화의 한 측면이다. 물자 중심의 이전과 달리, '정보'를 주요 자원으로 하는 이 사회에서 핵심은 정보 혁명이라고 하는 생산성 혁명이다. 쌍방향소통의 무한 커뮤니케이션은 '콘텐츠 생산자'라는 질적으로 다른 미디어 이용자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자신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무분별한 사생활 노출, 인간소외 심화, 가짜 뉴스, 악성 댓글 등 영화에서 또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놉티콘(synoticon)은 무엇인가? '서로 동시에 감시한다'라는 뜻을 가진 시놉티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7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인 파놉티콘에서 유래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파놉티콘은 pan(모두)와 opticon(본다)를 합성한 말로 죄수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설계하였다.
 
이 감옥은 중앙의 원형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중앙 감시탑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또 중앙의 감시탑은 늘 어둡게 하고, 죄수의 방은 밝게 해서 중앙에서 감시하는 감시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죄수들은 알 수 없다. 시선의 불평등이 일어나는 이런 구조는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결국은 죄수들이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을 통하여 "근대의 모든 시설이 파놉티콘을 모형으로 한 것이라면, 결국 근대사회의 이상은 곧 감옥인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푸코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한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하는 파놉티콘 체제로 보았다.
 
정보사회 이전을 파놉티콘 사회로 규정할 수 있다면, 지금의 디지털 사회는 시놉티콘 사회로 규정할 수 있다. 모든 곳에서 내 행동을 감시하는 CCTV나 휴대전화의 위치 추적 장치, 빅데이터(Big Data)에 실시간으로 저장되는 인터넷 뱅킹, 인터넷 쇼핑, 검색기록, 실시간 채팅, SNS 등의 개인 정보는 '감시'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과 동시에, 우리는 이를 '자발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아날로그적 감시와 구별되는 것은 중앙이 뚜렷하지 않은 탈중심화 현상이다. 판옵티콘의 중앙 감시탑의 역할이 네트워크의 그물망으로 분산된 형태가 바로 시놉티콘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서치>는 이러한 시놉티콘의 세계를 묘사한다. 마고의 실종사건 담당 형사 '로즈메리'로부터 전화가 오자마자 데이빗은 구글 검색을 통해 로즈메리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형사의 권력은 '공권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권력자'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는 대중이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는 알 수 없었던 딸에 대해 가상세계의 플랫폼들이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디지털 스펙터클 사회와 시놉티콘의 세계를 서사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디테일에서 그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통: "내 아이라고 다 알 순 없어요"

영화의 도입 부분엔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단란한 일상이 컴퓨터 동영상 화면을 통해 보여진다. 한 행복한 가정의 서사가 모두 동영상 파일에 기록되어 있다. 아내가 암으로 죽자 딸과 둘만 남겨진 데이빗은 시간이 약이라며 엄마 이야기를 피하는 아빠이다. 스마트폰이나 SNS를 통해 딸과 수시로 연락하는 다정한 아빠이지만 정작 마고의 내면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아빠였던 게 '실종'을 통해 드러난다. <서치>는 딸의 '실종'을 찾는 스릴러임과 동시에 '소통'을 찾는 가족영화 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참신·철학·재미·의미를 갖춘 놀라운 영화 <서치>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 <소피스트>에 중복 개제 하였습니다.
서치 존조 시놉티콘 스펙터클 아니쉬차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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