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람들에게 나라 이름이 무엇인지는 물어봐야겠지? 실례합니다. 아주머니, 여기가 뉴질랜드인가요,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인가요?"

"어쩌면 그런 것을 묻는 나를 아주 멍청한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러니 절대 물어보지 말아야지. 아마 어딘가에 나라 이름이 적혀있을 거야."

강둑 위에서 언니와 지루하게 놀고 있던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보며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하얀 토끼를 발견하게 된다. 그 토끼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고 그 뒤를 쫓던 앨리스는 커다란 굴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순간, 바닥이 꺼지게 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굴속으로 떨어지게 된 앨리스는 언제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에 도착하게 될 지가 궁금해졌다. 도착하면 자신이 생각한 그 나라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바보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어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아이는 커서 질문하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큰사진보기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관련사진보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이야기다.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이상한 나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물어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앨리스. 아직 어린 나이라 바보처럼 보이는 게 싫어, 어떤 질문도 하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사실 그녀도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주변 사람들을 아주 귀찮게 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점점 커갈수록 발달되는 인지능력으로 인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들에도 관심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마구 던진다. 어른들 눈에는 궁금할 것 하나 없고 당연하게만 보이는 것들이지만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 천지다.

하지만 그렇게 질문을 잘 던지던 아이는 청소년기를 거치게 될 때쯤 주위 눈치를 슬슬 보게 되고 입은 점점 무거워진다. 궁금한 게 있어도 잘 묻지 않는다. 가끔 스스로 알아내려고 하지만 중요하지 않거나 몰라도 되는 것들이라 생각되면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바쁜 사회 생활에 적응하게 될 때면 '질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지고, 해서는 안 될 말처럼 여겨지게 된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우리는 질문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어릴 적엔 그렇게도 '왜? 왜?'를 외치며 마구 질문을 퍼부었던 그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왜 우리는 자랄수록 질문을 안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못하는 것일까. 그만큼 아는 것이 많아져서? 혹은 조직의 앞날에 방해되는 행위라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원인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질문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나만 몰라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마지막 네 번째는 자신이 잘 안다는 착각 속에 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만 모를 거라는 불안
 
첫 번째,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질문은 저자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좌지우지되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저자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날 때마다 그 문제에 대한 어떤 의문이나 질문조차 가질 수 없었다.

특히 가장의 기본 역할을 잊은 채 기분에 따라 휘둘리는 집안 분위기가 너무 싫어 개선해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그에 대한 지적이나 질문 자체는 가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어린 것이 뭘 아냐는 식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저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떤 의문이나 질문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고 그런 습관은 학교생활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버지처럼 위압적이고 권위적이었던 당시 선생님 앞에서 나는 자신 있게 손들고 질문할 수 없었다. 물론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나 학습 분위기가 질문보다는 진도를 빼기 바빴다는 시대적 배경도 한몫 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되는 질문 본능은 쥐도 새도 모르게 묻혀버렸다.

두 번째,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에도 질문이 없을 수 있다. 저자는 첫 책 출간 후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글쓰기와 책 출간에 관한 강의였는데 끝나기 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열성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한두 사람을 제외하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종료 후 다른 참석자에게 글 쓰고 책 내는데 관심이 있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 사람은 막연히 궁금해서 참석했다고 한다. 물론 내 강의가 부족했거나 그분이 용기가 없어서 질문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면 끝나고 따로 저자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저자가 보기엔 그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관심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왔을 것이고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몰랐기에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나만 몰라 바보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질문하지 않는 경우다. 질문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로 떠오르는 불안감으로, 속으로 할까 말까 고민하며 갈등만 한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끝나버릴 경우,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 후회로 다가온다.

다행히 요즘엔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궁금한 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막상 손을 들고 용기 내보면 알게 된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하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나의 질문은 용기가 2% 부족한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 자신이 아는 것은 극히 일부이고 모르는 것은 지천에 널렸다. 차라리 모르는 걸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과감히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자신에게 더 솔직한 것 아닐까?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위한 약간의 용기일 것이다.

가짜 지식과 진짜 지식을 구별하는 법

네 번째, 자신이 잘 안다고 착각 속에 사는 경우에도 거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실제 우리가 어떤 사실이나 지식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착각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능력을 메타 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강준만 작가가 쓴 <재미있는 영어인문학 이야기 3편>에는 인지심리학자들이 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수는 없는 지식이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는 지식이다. 두 번째 지식만 진짜 지식이며 내가 쓸 수 있는 지식이다."

문제는 내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것은 오직 질문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질문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고 그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창의력도 기를 수 있다.

아이를 잘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파처럼 상대방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설파한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이라는 대화법을 통해 상대방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답변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먼저 자신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결국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다' 말로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고 지혜를 추구했다.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가득 찬 앨리스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를 물어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대사는 어찌 보면 치기 어린 결심일지 모른다. 하지만 앨리스의 나이를 거쳐 성인이 된 우리는 아직도 그 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거기에는 분명 효율을 중시하고 결과만 따지는 조직문화와 어떤 혼란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한몫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물어봐야 할 그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최소한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 정도는 꼭 해봐야 되지 않을까?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나와 당신을 향한 마지막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