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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분배는 늘 불평등했다. 그건 곱씹으면 조금 억울하고 속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냥 익숙한 것이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부의 분배에 있어 여전히 불평등한 현재를 과거와 연결시킨다.

피케티는 18세기 후반부터 풍성하게 축적되었던 프랑스의 자료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한 분배 양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그는 현재의 불평등이 부에 있어 상위 계층 10%가 최대 부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소위 '아름다운 시절'로 불려지는 벨 에포크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표지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표지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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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는 성장과 인구 증가의 둔화 속에서 자본의 축적이 강화되어, 현재 선진국 국민소득의 500~600%인 자본/소득 비율이 2100년 경 벨 에포크 시대에 맞먹는 700%에 이를 것이라 예상한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졌던 자본은 꾸준히 회복되어 점차 벨 에포크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자본/소득 비율의 꾸준한 증가는 '자본수익률 > 경제성장율'의 부등식과 맞물리면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부가 어떻게 스스로 증식하며, 그 결과로 불평등해지는지 피케티의 논리는 막힘이 없다. 부의 증식을 나타내는 그래프와 비율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린다. 

파케티의 제안, 글로벌 누진세와 금융 투명성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 양상을 파악하고, 그것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현재에까지 불평등을 내재하는 부의 역사적 동학을 관찰한 후 '부는 모든 이성적 한계와 합리적 정당성을 뛰어 넘어 스스로 성장하고 영속된다', '모든 재산은 부분적으로 정당하나 잠재적으로 과도하다'고 이야기한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해법은 역시나 과세이다. 피케티는 부분적으로 고소득에 역진적인 현재의 과세 체계를 부의 불평등을 감소를 위해 누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 과세를 면하기 위한 부의 도피 방지를 위해 '글로벌'이 필요하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과세는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이다. 피케티는 전세계 부에 매년 누진적으로, 규모에 따라 과중되게, 모든 자산 유형에 예외없이 세금을 부과하기를 주장한다.

이 이상적인 주장에 현실성을 보태는 것은 '금융 투명성'이라는 전제이다. 금융 투명성은 법이 허용만 한다면 현대  인류의 기술이 손쉽게 이루어낼 수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고 있는 제도권의 맹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정직한 신고보다는 자동화된 신고가 21세기에는 적합하다'는 피케티의 문장에는 위트가 가득하다. 만약 금융 투명성이 담보된다면 글로벌 누진세 역시 현실화를 기대할 수도 있다. 과세 자료가 명백하다면 과세에 대한 합의는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세계가 저런 전제와 조세 체계를 합의해낼 수 있을까. 피케티는 글로벌 누진세 제도를 시행한 후, 따르지 않는 국가를 제재하자는 다소 급진적인 제안까지 내놓는다. 그러나 피케티의 어조는 온건하다. 여러 제안의 끝에는 언제나 민주적 합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덧붙임을 잊지 않는다.

'과세는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이다'라는 피케티의 갈파는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통제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드러낸다.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열망을 전복과 혁명을 부르짖는 강력한 호소의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합의와 토론, 논의를 통한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을 기초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한다.

소수의 부자를 적대하기 보다는 다수의 빈자를 생각할 것을 권유하는 그의 어조엔 미래엔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이 야기한 21세기의 첫 위험 신호로 2000년대 초반의 금융 위기를 꼽는다.

그의 관점에서 2007년의 금융 위기는 21세기 자본이 맞이한 첫 위기이며 통제되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 끝없이 증식하는 '21세기 자본'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민주적인 논의를 강조하는 그의 어법엔 평화롭고 안정된 미래 사회에 대한 열망이 깃들어 있다.

사실, 부의 불평등이나 과세로 해결하는 방안, 금융 투명성 등은 늘 말해졌다. 자본의 이동이 일반화된 현대의 과세에 '글로벌'적 성격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도 잠재적으로 인식되던 것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필요를 인식하고 있는데, 쉽게 제도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때문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의미있는 것은 마치 옛이야기처럼 떠돌던 이야기들을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문서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의 지적은 사론으로 떠돌던 이야기들을 공론화하는데 좀더 힘을 준다. 이는 다수의 대중이 인식하고 있던 문제를 수면 위로 뜨게 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돕는다. 피케티의 제안이 그의 바람처럼 민주적으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부의 실체를 감추려는 힘만큼이나 드러내려는 힘이 필요하다.

당장의 현실화가 어렵더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둘지라도, 수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완전히 해결되는 문제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보다 나은 결론을 지향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변화가 야기할 새로운 문제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 매력적인 경제학자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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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를 넘을 시 자본은 스스로를 재생산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상속의 속성에 대하여)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 형상이다', '사회적 국가는 해체가 아닌 현대화가 필요하다', '과세는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문제이다'라고 서술하는, 피케티의 문장은 매력적이다.

이 간명한 정리들은 피케티의 생각을 주저없이 드러낸다. 피케티의 문장은 비난에 몰두하지 않되 에두르지 않는다.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확실하되 예의 바르게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이, 불평하기보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변화를 위한 건의와 논의에 앞서, 덜 싸우며 협력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태도이다.

결말에 이르러 피케티는 경제학이 '정치적이면서 도덕적'일 것을 요구한다. 그의 생각에 경제학은 정치적이었으나 도덕적이지 못했다. 피케티는 긴 글의 중간중간 경제학자, 특히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불평등한 부의 속성을 방치하거나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에 대한 언급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마치 할 말은 더 많지만 참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심증은 강력하나 물증이 없는, 피케티가 좋아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서 길게 말하지 못하는 모양새이다. 대신 피케티는 부자들은 알아서 자신들의 부를 보호하고 있으니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며 글을 마친다.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기여하는 경제학을 촉구하는 경제학자, 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문학 작품을 인용해 부와 관련한 18, 19세기의 현실을 통해 21세기 자본이 나아갈 길을 파악해 내려는 시도도 흥미롭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등을 통해 당시 자본의 실상을 현대와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은 경제학 용어와 수식보다 쉽게 피케티의 의도를 파악하게 해준다. 경제학과 문학의 접목은 피케티의 바람처럼 경제학을 보다 정치적이면서 도덕적이게 변모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로도 회자되는 벨 에포크 시대는 그리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었다. 이후의 혼란과 대비되어 낭만적으로 회상되는 평화와 풍요는 모두가 누리던 것이 아니었다. 도래할 미래를 진정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인류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을 수정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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