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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마 아미의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 책겉표지 모리야마 아미의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 상추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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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벌을 키운다, 그것도 시골 고등학교에서?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습니까? 들판에 나가 벌통을 들여다보고 꿀이 얼마만큼 모이는지 관찰해 보고 말이죠. 여왕벌은 어떻게 다른 벌들을 주도하는지, 또 말벌의 침략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 세세한 행동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재밌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겠죠? 시골 고등학교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죠. 도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환경적인 면에서 뒤처져 있다고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학원이다, 과외다 나름대로 시간에 쫓기는 도시 고등학교 녀석들을 따라잡으려면 눈에 불을 켜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획일화된 과정보다 참신한 과정을 택하는 학생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꿀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합니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 무리 속에 일벌 수가 늘어나는데, 벌집이 비좁아지면 여왕벌은 다음번 여왕이 될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알이 깨어나기 직전, 일벌 무리 절반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이것이 꿀벌의 '무리 나누기', 즉 분봉입니다. 양봉가는 이 무리를 붙잡아 앉혀 벌통 수를 늘리는 것이지요.(25쪽)
 
모리야마 아미의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일본의 해발 967미터에 자리 잡고 있는 '후지미 고등학교 양봉부' 학생들의 관찰 일기라고 할 수 있죠. 학교 수업 시간 이외의 '특별활동' 시간과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학교 근처의 들판에서 양봉을 해 나간 과정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양봉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3년째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으니,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 번식기는 봄부터 여름까지이고, 무리는 여왕벌 일벌 수벌 세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 여왕벌은 한 마리뿐이다. 무리의 10퍼센트 정도가 수벌, 나머지 90퍼센트가 암벌인 일벌이다.
● 일벌은 4주 남짓 사는데 무리를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지만 알은 낳지 않고 죽는다.
● 반면 수벌의 일은 생식이라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독침도 없다. 일벌한테 꿀을 받아먹고 산다.(67쪽)
 
여태껏 생각조차 못했던 꿀벌을 만나면서, 양봉부 부원들이 서로 공부하고 나눈 과정들을 정리한 게 이 책의 내용입니다. 벌을 치기 시작할 때만 해도 벌벌 떨던 부원들이 6개월 사이에 양봉 활동에 푹 빠져들고 만 것이었죠.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양봉부 부원들의 학교 생활은 온통 꿀벌 일색이지 않을까요? 등교하자마자 벌들한테 인사부터 하고, 점심에는 벌통이 보이는 곳에 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고, 또 수업이 끝나면 꿀벌을 관찰하면서 일기를 쓰고 말이죠.
 
배역을 정한 뒤 몇 번이고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연극 제목은 〈꿀벌 씨 극장〉입니다. 첫 공연은 근처 유치원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방에 모여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소개를 마치자 치하루와 하루미가 맡은 꿀벌 두 마리가 무대에 등장했습니다.(69쪽)
 
양봉부 학생들은 연극을 만들어서 아이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꿀벌은 인간의 적이 아니고, 온순한 생명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연극을 만든 겁니다. 그 연극은 초창기 부원들뿐만 아니라, 그 다음해의 부원들도, 그리고 그 다음의 부원들도, 똑같이 이어받는 귀중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연극 발표도 중요하지만, 그 부원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 발표도 있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벌써 66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농업 클럽 전국대회'에 출전해 발표하는 게 그것입니다. 양봉부 부원들은 그 일이 무모하다는 걸 알았지만,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부원들은 꿀벌에 대해 무엇을 발표할지 아이디어를 짜고 질문지와 답지를 만들었습니다. 또 발표자를 선정하고, 팀웍을 다져나갔습니다.
 
"후지미 고등학교 양봉부는 나가노 현 최초로 연구 과제 발표 최우수상과 더불어 문부과학장관상도 받았습니다. 최우수 학교로 선정된 팀은 무대에서 다시 한 번 발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DVD로 수록됩니다. 작년, 농업 클럽 전국 대회 도전을 결정한 양봉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역대 최우수 학교 DVD를 보고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니터 너머로 동경하던 세계, 작년에는 단 한 걸음이 부족해 닿지 못했던 꿈의 무대. 결국 양봉부는 그 무대에 서고 말았습니다."(263쪽)
 
양봉부를 만든 지 3년 만에 그렇게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맛보게 된 겁니다. 그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요? 물론 그런 성취욕 때문에 양봉부 부원들이 모두 졸업과 동시에 똑같은 길을 걷게 된 건 아닙니다.  

이 책에 나오는 '치하루'는 신슈대학을 졸업하고 지역식품회사에 들어갔고, '하루미'는 영양사 자격을 얻어 지역의 관련기업에서 일하고, '도네가와'는 프랑스 요리사가 되고자 수업 중입니다. 또 '고우미'는 관광분야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그쪽 분야의 일을 찾는 중이고, '우에노'만 꿀벌과 함께 꽃을 따라다니는 '이동 양봉'을 지금도 한다고 하죠.

어떤가요? 우리나라 시골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꿈들을 펼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책 뒷표지에 윤구병 선생이 그런 말을 한 게 실려 있는데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한국 의성에 컬링부가 있다면, 일본 나가노에는 양봉부가 있다."

수능위주의 획일화된 우리나라의 교육풍토를 바꾸는 길은 바로 그런 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요? 풋풋한 열일곱살에 꿀벌을 키우면서 배우는 '협력생활', 그것만 깨우쳐도 인생의 절반 이상은 배우고도 남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 후지미 고등학교 양봉부 이야기

모리야마 아미 지음, 정영희 옮김, 상추쌈(2018)


태그:#꿀벌, #후지미 고등학교 양봉부, #꿀벌이 복지에 이바히자는 활동, #허니비 컬리지, #꿀벌 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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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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