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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권의 문학평론집을 낸 숭실대학교 이경재 교수.
 최근 2권의 문학평론집을 낸 숭실대학교 이경재 교수.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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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한국 문단을 떠도는 우스개(?)가 하나 있다. "문학평론가는 3D 직종이다"라는 것.

문학평론가는 시 또는 소설을 읽고 그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사회학적 의미를 해석하고, 문장의 구조와 문체를 분석하며, 다른 작품들과의 연관성 등을 탐구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고, 관련된 해당 학문을 오래 공부했기에 이른바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왜 "문학평론가는 3D 직종"이라는 말이 생겨난 걸까? 이는 '명함만 가진 문학평론가'가 아닌 '좋은 문학평론가'가 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의 우회적 표현이 아닐까.

수많은 대학에서 문학입문서로 사용되는 책을 쓴 80대 초반의 한 문학평론가는 밤 9시 뉴스만 끝나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왜냐?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소설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문학평론가가 이와 같지는 않다. 그러나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 문학평론가 대부분은 독서량이 최소 수천 권에 이른다는 게 잘 알려진 사실.

그러니, '3D 직종'이라는 농담 섞인 진담 속에는 책 읽기의 힘겨움과 텍스트 분석의 어려움, 거기에 글쓰기의 고통까지 문학평론가가 감당해야 할 작업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담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소명출판)와 <한국 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역락)를 연이어 출간한 숭실대학교 이경재 교수는 '좋은 문학평론가'의 길을 걷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이 2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읽고 분석한 장편과 중·단편만도 족히 100편은 넘어 보인다. 근대문학 작가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신인 작가까지 독서의 폭 또한 넓다.

이번 책을 쓰기 전에도 이미 여러 권의 문학평론집과 다수의 논문을 상재·발표한 바 있는 이경재는 올해 '김환태 평론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기도 했다.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를 가을의 길목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가 들려준 문학과 삶, 평론가라는 존재와 꿈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내는 일이란, 내게 ..."
 
이경재 평론집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
 이경재 평론집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
ⓒ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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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2권의 문학평론집을 출간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다. 출간에 따른 소회가 있을 듯한데.
"책을 낸다는 것은 분명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책을 내는 일은 지난 시간의 삶과 문학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정리는 자부심보다는 자괴감을,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이번에도 비슷한 감정이다."  

 -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어떤 뜻에서 정한 제목인가.
"촛불은 누구나 알듯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광화문을 환하게 비춘 그 촛불을 의미한다. 나에게 촛불은 개인의 고유한 율동과 공동체의 보편적 대의가 어우러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오랜 동안 내 문학의 주제가 개인과 공동체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촛불은 그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으로 읽혔다.

등대는 연구년으로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외국에 머물면서 매혹되었던 등대를 말한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서서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불빛을 보내는 등대가 왠지 별다른 독자도 없는 '나'의 글쓰기처럼 느껴졌다. 두 개의 불빛이 이번 평론집을 쓰는 내내 나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 위의 책 서문에서 '문학은 사회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문장을 인용한다.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문학은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걸까.
"사르트르가 말한 영구혁명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명제가 생각난다. 참된 문학은 결코 안주하지 않는 정신이다. 그렇기에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한 권력으로부터 늘 경원시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 원로에서부터 신진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세계에 접근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듯하다. '넓은 프리즘' 속 작가들을 해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것은 아무래도 당대 작가들을 주로 다루는 비평과 최소 한 세대 이전 작가들을 주로 다루는 문학연구를 병행하는 나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가능하면 한국문학사라는 거시적 시야를 전제로 개별 작가나 작품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럴 때만이 개별 작가나 작품의 고유성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로와 중진 그리고 신진은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일종의 거울이 아닐까."

천재 작가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에게 눈길...

- 한국문학의 중추가 30~40대로 바뀔 시기가 됐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뚝심 있게 자기 세계를 밀고 나가는 작가에게 신뢰가 간다. 천재를 타고난 작가도 당연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여 자기 세계를 조금씩 밀고 나가는 작가에게 더욱 큰 눈길이 간다. 특정인을 거명하고 싶지는 않다."

- <한국 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주요한 것 중 하나가 '공동체'인 듯하다. 이전에는 '공간'을 통해 문학작품 해석을 시도했던 바 있다. 공동체는 어떤 차원에서 '문학의 키워드'가 될 수 있는가.
"문학은 정치와 관련해 한 사회의 가장 민감한 자의식인 동시에 강력한 매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그 수많은 곡절로 인하여 문학에 더욱 강력한 정치적 기능을 요청하였다.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천으로서의 공동체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이 한국 문학에서 공동체에 대한 탐구를 지속시킨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와 달리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는 이광수, 한설야, 임화, 김동리 등이다. 단순히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적'(혹은 후배로서) 이들의 문학에 관심을 둔 이유가 있을 텐데.
"늘 비평가와 연구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진리 탐구에 헌신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진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는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또한 제기되고 있지만, 연구자는 그럼에도 진리는 존재한다는 입장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라는 주제와 관련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문학사적 대상들을 다루어 본 것이다."

- 남과 북의 작가들이 쓴 '황진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분석했다.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건가.
"김탁환이나 전경린처럼 남한 작가들이 그린 황진이는 나르시시즘적 모습을 보일 정도로 개인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북한 작가 홍석중의 황진이는 개인보다는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집단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과 기생이라는 이중 억압에 맞서 독특한 삶의 길을 걸어간 황진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것 자체가 상징계적 효력의 약화라는 200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남북이 공유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경재 평론집 <한국 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
 이경재 평론집 <한국 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
ⓒ 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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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집필... 공동체 그리워하며 글 써

- 위에 언급된 2권의 책 모두 연구년 때 미국에서 틀거리를 잡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글을 쓸 때와 이국에서 쓸 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공동체를 강조하는 정서이고, 여러 가지 사회생활을 하는 나로서도 여러 단체에 엮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그리워하곤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개인이나 개성을 강조하는 인식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것은 개인이나 개성이 미국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공동체 특히 내가 속한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새롭게 성찰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서의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거리만큼 상상으로서의 공동체에는 더욱 강박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의 존엄과 공동체의 대의에 대한 평소의 관심이 더욱 예민해진 시간들이었다."

- 올해 '김환태 평론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그간의 작업이 인정받고, 격려되는 것인데 어떤가.
"얼마 전부터 평론을 한다는 것이, 아무 청중도 없는 무대에서 혼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겸연쩍은 일이고, 한때는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의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수상자가 됐다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그다지 곱지도 않는 내 노래를 듣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은 더 무대에 서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기위안을 해본다. 나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 향후 몇 년 동안 예정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 더불어 조금은 멀리 봐서 70세의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은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베트남전을 다룬 소설을 연구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연구는 한국의 베트남전 소설만을 연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국제전으로서 최소한 베트남전을 다룬 베트남 소설, 미국 소설과의 비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이광수의 소설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연구를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문학으로 사회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70세쯤에는 문학과는 다른 차원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싶다.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여러 평론에서 주장한 문제의식을 직접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문학평론가는 사이에 선 존재"

- 우문일 수 있다. 현답을 부탁한다. 문학평론가란 무엇인가.
"문학평론가란 '사이에 선 존재'라고 생각한다. 작품과 작품의 사이, 작품과 작가의 사이, 작품과 이론의 사이, 작가와 독자의 사이 등등. 사이에 서서 둘을 연결해주고, 때로는 양쪽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사이에 서기 위해서는 결코 일정한 도그마에 안주해서 그것을 방패처럼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늘 방황하고 노력하는 존재가 문학평론가가 아닐까?"

- 마지막 질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공적인 존재로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노동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이 현실화 되는 최대한의 작업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 문학의 개인과 공동체

이경재 지음, 역락(2018)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

이경재 지음, 소명출판(2018)


태그:#이경재,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 #한국 현대 문학의 개인과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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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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