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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가진 이는 가진 대로, 집이 없는 이는 없는 대로 '집'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벗어나려 해도 오르는 전세와 월세가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집과 나의 관계를 감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투자 가치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복잡한 수식을 더하기 시작하면,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집 없이 가볍게 사는 게 편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집은 집 이상이며 때로는 삶보다 크게 여겨지지만, 정작 집과 내가 어떻게 만나고 관계 맺는지 살펴보는 시선은 한없이 부족하니, 오늘은 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눠보려고 한다.

 모든 집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세계를 품는다 
       
최초의 집 - 열네 명이 기억하는첫 번째 집의 풍경 / 신지혜 / 유어마인드
 최초의 집 - 열네 명이 기억하는첫 번째 집의 풍경 / 신지혜 / 유어마인드
ⓒ 유어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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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아빠가 지은 집에서 태어나 아파트와 다가구, 다세대 주택, 연립주택, 원룸,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집을 두루 경험했다. 지금 살고 있는 열두 번째 집은 46년 된 연립주택으로, 밝고 여유롭고 따뜻하다. 나는 늘 집이 사람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생활을 바꾸는지 궁금해했다"

아빠가 지은 집에서 태어나 벌써 열두 번째 집에서 살고 있는 저자 신지혜는 그간 살았던 열한 채의 집 이야기로 책을 냈었다. 그 안에는 당신의 '최초의 집'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엽서를 담았는데, 정말 자신이 살았던 첫 번째 집에 대한 사연을 보내준 이들이 있었고, 그렇게 이야기가 모여 열네 명의 '최초의 집' 이야기를 묶은 책 『최초의 집』이 탄생했다. 

농촌주택, 도시 단독주택, 상가주택, 다가구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등 주택의 형식을 분류하는 이름만 들어도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집'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슷비슷한 아파트에 살면서 잊고 지낸 집의 요소요소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층집 베란다가 유독 넓어 마당처럼 활용한 모습이라든지, 주인집이 방 한 칸과 일부 공간을 떼어 세를 놓은 터라 원래 있던 문을 없애지 못하고 냉장고로 막아놓은 모습 등을 통해 자연스레 나의 '최초의 집'이 어디였고 어땠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렇듯 집에는 사연이 있다. 지나고 나면 잊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공간을 떠올리면 다시금 기억들이 살아난다. 재미난 건 평생 한집에 살아온 이들에게도 변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구성원의 상황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면서 집도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거 문화가 대부분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생겨난 세대 차도 확인할 수 있는데, 평생 고층 아파트에서 살아온 어떤 이는 독립하고 얻은 첫 집이 4층이라 땅에 박혀 있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고 말한다. 아파트에는 추억이 없다고 말한 이가 누구인지 찾아 이 사연을 들려줘야지 싶다. 작가의 말마따나 '모든 집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세계'다.

따로 또 같이 사는 데 적정한 거리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 아파트 관리소장의 각양각색 주민 관찰기 / 김미중 / 메디치미디어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 아파트 관리소장의 각양각색 주민 관찰기 / 김미중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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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나러 왔다는 승강기 관리업체 사장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얼어붙은 듯 한동안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하긴 커트 머리에 남방셔츠, 청바지, 단화 차림에 이제 막 서른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관리소장이라 대답하고 나섰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아파트 관리소장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연상되던 때였으니 말이다."

아파트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경비원과 관리소장이다. 아파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들을 찾아 상황을 전달하고 해결한다. 주민 각각이 서로 소통하지 않다 보니 이들이 주민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상황이 늘 이렇게 평화로운 건 아니다. 맡은 역할이 이렇다 보니 모든 문제에 응답해야 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해결하려는 척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애쓰다 보면 주민들의 역성을 듣기 일쑤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소리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각각의 목소리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으나, 그들의 목소리가 모이는 곳에서 들어보면, 분명 자기도 같은 일을 벌이면서 다른 이가 그런 일을 벌였을 때만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거나, 공동 주거라는 전제를 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인데 단독 주택에서 홀로 사는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무려 20년 동안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며 앞선 이야기를 몸으로 겪었다. 화가 나고 답답할 만도 한데, 그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씩 들려준다.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떤 이야기 앞에서는 얼굴이 붉어지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모여 살아서 편한 점은 누리고 싶지만, 모여 살기에 불편한 점은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을 들켰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살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생각하면 결코 가깝지 않은 아파트 이웃과의 거리. 함께 사는 데 필요한 적정 거리를 고민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 아파트 관리소장의 각양각색 주민 관찰기

김미중 지음, 메디치미디어(2018)


최초의 집 - 열네 명이 기억하는 첫 번째 집의 풍경

신지혜 지음, 유어마인드(2018)


태그:#집,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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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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