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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올해 초, 아르헨티나에 한참 불볕더위가 기승일 때였다. 그때 기자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입성하게 된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현지 영어교사의 길. 관련 자격증 코스를 시작한 뒤에도 본인이 비원어민이라 뒤처질 거라는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들이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로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목표한 바에 전념한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코스를 무사히 마쳐 자격증을 손에 넣었지만 그와 동시에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취업 준비생 신분이 되고 마는데...)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취준생 신분이 되었다. 이 즈음의 나는 우울에 잔뜩 물 먹인 솜과 같았다. 아무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한들 나의 현지 취직 가능 여부는 아직 미지수였기 때문인데.

나는 실은, 이런 인생의 불확실함도 롤러코스터처럼 즐길 줄 안다고 나름 자부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눈에 띄게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는 그렇게 '쿨'해지기 힘들었다. 갑자기 이곳,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 길바닥의 돌멩이만 툭툭 치며 궁리를 하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독서 어플에 받아놓은 가이드북을 잠시 훑어보았다. 나는 이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로 정했다!' 

나는 근교 도시 라 플라타(La Plata)로 향하기로 했다. 그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현지에 지낸 지 한 두어 달 되는지라 이름 정도 아는 수준이다. 그래서 기차에 몸을 실은 뒤 휴대폰에 코를 박고 필요한 정보를 재빨리 습득했다. 

라 플라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두어 시간 떨어진 무역항이 있는 도시다. 인구가 65만 명쯤 된다고 하니 우리의 '미니 광역시'쯤으로 쳐도 되겠다. 그리고 나를 조금 충격에 빠지게 한 사실은 그곳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주도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나라의 수도인 도시의 이름인 동시에 그 도시가 속한 주의 이름이라는 것도 몰랐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나라의 두 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는 셈이다. 또 이 도시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여럿 배출한 유명 대학들이 위치해 교육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작은 배낭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왔지만 얼마간 머물 현금도 있었고, 휴대폰의 배터리도 충분했다. 강렬한 햇살이 마음에 걸렸지만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대신했다. 까맣게 탄 피부는 이미 칠레에서부터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실제로 몇몇 현지인이 내가 볼리비아나 페루 출신이 아닌지 묻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버스, 지하철 그리고 기차를 각각 1번씩, 도심의 모든 대중교통을 한 번씩 이용해줘야 했다. 그렇게 약 2시 간 뒤, 나는 다른 도시에 있었다. 그리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내 옆통수를 쥐어짜던 두통도 가셔 있었다. 

그 도시에 대한 첫인상은 '여백의 미'였다. 방학이나 휴가철도 아닌데 도시 자체가 텅 빈 느낌이다. 종종 보이는 현지인들은 여유로워 보였고 도통 붐비는 곳이 없어 풍경 사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볼거리도 거의 다 10여 블록 이내인 시티 센터에 집중되어 있어 더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고딕 양식의 라 플라타(La Plata) 성당은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고딕 양식의 라 플라타(La Plata) 성당은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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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플라타 성당 뒤로 보이는 건물도 꽤나 고풍스러워 보인다
 라 플라타 성당 뒤로 보이는 건물도 꽤나 고풍스러워 보인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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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플라타 성당 (Cathedral de la Plata)은 1885년에 처음 지어졌다. 1995년에 완공되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지역의 랜드 마크나 다름없는 라 플라타 당일치기 여행의 필수 코스!
 
숲속의 거리(Paseo del Bosque)는 거리 혹은 길이라는 말보다 공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사진처럼 작은 호수를 끼고 있다.
 숲속의 거리(Paseo del Bosque)는 거리 혹은 길이라는 말보다 공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사진처럼 작은 호수를 끼고 있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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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케 공원 (Paseo del Bosque). 바쁜 도심에서 벗어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군과 작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패들 보트를 타는 것도 괜찮다. 시간이 남는다면 근처에 동물원(Jardín Zoológico)와 마틴 피에로 야외극장(Teatro Martín Fierro)를 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라 플라타 박물관. 관람에 흥미가 없다면 이렇게 앞계단에 앉아 뜨거운 해를 피하는 것도 좋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라 플라타 박물관. 관람에 흥미가 없다면 이렇게 앞계단에 앉아 뜨거운 해를 피하는 것도 좋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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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플라타 박물관 (Museo de la Plata)에서는 저명한 탐험가 모레노(Francisco P Moreno)에 의해 발견된 수많은 자연사적 수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예약하면 영어로 된 가이드 투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도 저도 그저 그렇다 싶다면 그 앞에서 그냥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박물관의 웅장한 자태는 서양권 대학 그것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니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는 것을 잊지 말자. 그 다음 현지인들처럼 계단에 앉아 뜨거운 햇살을 피하면 여느 카페 부럽지 않을 테다. 

이 외에도 까사 쿠루쳇(Casa Curutchet)이라는 유명한 외국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지은 건물이 한 채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바로 문을 닫은 후였다. 영화에까지 출연한 집이니 오고 가는 길에 한번 들러도 좋겠다. 가기 전에 꼭 개장시간을 확인하자.

이날은 즉흥적으로 계획한 것치고 나름 성공적인 '혼여'(혼자 여행)를 했다고 보아도 되겠다. 라 플라타는 콧바람을 쐬기에 꽤 괜찮은 곳이나 단기 여행객들에게는 생략해도 그만인 곳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의 시간이 넉넉하다면 수도가 있는 주의 주도를 방문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4월, 라 플라타에서 가을을 맞으면서.

태그:#남미, #아르헨티나, #당일치기, #여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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